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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14년차 노사연·이무송 부부의 '사랑과 전쟁' Real Tal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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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중앙 10년 넘게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다 보면 저렇게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두 사람은 죽이 잘 맞았다. 대놓고 ‘싸울 만큼 싸워 봤다’며 말할 수 있는 여유마저 생긴 노사연·이무송 부부. 이래서 부부의 연은 따로 있다고 하는 모양이다. 취재_박진영 기자 사진_임효진 기자 장소협조_젠 하이드 어웨이(02-541-1461)


더없이 편안해 뵈는 두 사람이 극과 극의 성격으로 한때 죽을 듯이 싸웠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제는 지난 세월들에 대한 얘기를 추억 삼아 농담 삼아 가감 없이 털어놓을 수 있게 됐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갔다. 돌아보면 모두 땅이 굳어지기 위한 과정이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는 도종환 시인의 말처럼 숱한 비바람에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며 굳건한 믿음과 애정이라는 아름다운 꽃을 피워 낸 노사연·이무송 부부. 음악이라는 공통의 코드가 있었고, 더없이 사랑스러운 아들 동헌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5년 만의 부부 합작 앨범,
노래하는 무대가 가장 행복하죠

노사연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연예인 중 한 명이다. TV와 라디오를 넘나들며 감각 탁월한 방송 진행자로 섭외 영순위 리스트에 올라 있고, 각종 프로그램 고정 게스트로 양념 역할 톡톡히 하며 시청률 견인차 노릇을 하고 있다. 멀티플레이어로 활동해 온 지 벌써 15년도 넘은 터라 새삼 그녀의 원래 자리가 어디냐를 놓고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지만, 새로 음반을 내놨다는 소식은 그녀가 ‘만남’이라는 국민가요를 부른 대한민국 대표 여자 가수라는 사실을 새삼 상기시켰다.

결혼 후 두 번째 내놓는 음반. 올해 정확히 데뷔 30주년이 되는데도 5년 만에 내놓은 이번이 여덟 번째 음반이라니 그동안 팬들이 얼마나 목을 빼고 앨범을 기다렸을지 짐작되는 부분이다. 타이틀곡 ‘사랑’을 비롯해 신곡은 세 곡. 여기에 국민 애창 가요로 손꼽히는 ‘만남’과 ‘님 그림자’‘이 마음 다시 여기에’를 한데 모았고, ‘화장을 고치고’‘동행’ 등 원곡보다 더 멋있게 부를 수 있는 애창곡까지 종합선물세트로 엮었다. 말하자면 컴필레이션 음반인 셈. 남편 이무송이 프로듀싱을 한 부부의 공동 작품이다.

새 음반을 내기까지 왜 그렇게 오래 걸렸나요?

(노사연) “완벽주의는 아닌데 앨범을 쉽게 내는 편이 못 돼요. 오랜만에 내다 보니 첫 앨범 내는 것처럼 떨려요. 아기를 출산하는 엄마의 마음이랄까. 요즘은 음악을 편하게 찍어 낸다는 느낌이 들어요. 하나의 기호식품 같은 인스턴트 음악 말이에요. 이런 얘길 하면 나이 들었다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에겐 그런 게 익숙하지 않더라고요. 제대로 형식과 절차를 밟아 만드는 걸 좋아하고 그러다 보니 세월이 훌쩍 가죠.”

이전 앨범은 7년 만에 냈다니, 이번엔 비교적 빠른 편이네요

(노사연) “그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어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느라 시간을 많이 뺏겼잖아요. 이번엔 가요계 침체가 원인이기도 했어요. 요즘엔 너무 불황이라 웬만하지 않고서는 음반 제작비 자체가 고스란히 빚으로 남는 현실이에요. 5년 동안 스스로 조급해하지 않았어요. 좋은 곡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자, 했죠. 그동안 받은 곡만 해도 30~40곡인데 그중에 추려서 낸 거예요.”

기다린 만큼 만족스러운가요

(노사연) “다른 때보다 편안해요. 솔직히 자기 음반 내고 만족하는 사람은 없죠. 녹음이 다 끝나고 음반이 나온 후에도 자기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 부분 나오면 사람들이 못 듣게 하려고 일부러 크게 얘기하고 그렇죠. 이번에도 몇 군데 있는데, 그래도 80~90%는 만족해요. 그 정도면 성공이죠. 남편이 많이 도와준 덕분이에요.”
부부가 함께 작업하면 장단점이 있을 것 같은데,
다투지 않나요

(이무송) “단점이라면 서로의 음악성이 다른데도 부부라는 이유로 맞춰 가야 할 때, 그러다 보면 불만스러울 때가 있어요. 장점은 너무 많죠.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히 상의하고, 다시 만들고 하는 과정들이 편안해요.”

(노사연) “이번엔 거의 안 다퉜어요. 남편이 자기 곡을 빼고 남의 곡을 디렉팅한 거라 본인 색깔이 많이 빠졌거든요. 이전 음반엔 남편 곡이 많다 보니 오히려 더 충돌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다른 작곡가의 말이라면 오히려 더 잘 들었을 텐데…(웃음).”
신곡을 낼 때마다 ‘만남’이란 곡이 벽이 될 것 같아요

(노사연) “가수로 살면서 그런 곡이 있다는 건 행운이고 영광이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다 좋아해 주니까요. 물론 그 곡을 넘어서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어요. 하지만 난 가수만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난 일찌감치 생각 잘한 것 같아요. 가수만 해서는 안 되는 시대잖아요(웃음). 의도했던 건 아니에요. 그랬다면 곱게 보이지도 않았을 테고, 오래가지도 못했을 거예요. 난 가식이나 포장된 건 언제든 들통 난다고 봐요. 보는 사람들이 더 잘 알거든요. 제가 인정받았던 게 ‘일요일 일요일 밤에’였는데, 그때만 해도 여자 출연자들은 입 가리고 웃는 시대였죠. 근데 내가 완전히 깬 거예요. 일부러 깨려고 그런 게 아니라 웃겨서 감출 수가 없었던 거죠.”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그녀가 주병진과 함께 수영복을 입고 수영장처럼 해놓은 세트 뒤에서 열심히 땅 짚고 헤엄치던 장면이. 당시 국민들은 신선한 그 모습에 포복절도했었다.

우리 부부 이혼에 내기 건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잘살았어요

1994년 3월 결혼하며 연상 연하 커플의 표본이 된 두 사람. 사실 당시 그들의 결혼은 노사연을 희망의 등불로 삼고 살아가던 많은 노처녀들에게 절망감(?)을 안겨 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언제까지나 멋진 싱글로 살아 주며 ‘혼자여도 괜찮아’라는 위로를 줄 것 같던 그녀가 배신을 하고 사랑하는 남자의 아내 자리를 선택해 버린 것이다. 단순히 팬들의 시기와 질투뿐만은 아니었다. 언제나 주위에 사람이 넘쳐나던 노사연이 어느 날 가요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후배 가수 이무송과 결혼한 후 두문불출하자 항간에는 불화설이 나돌았다. 심지어 주위에서는 ‘6개월 내 이혼’에 내기를 거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진짜로 사이가 안 좋았던 건가요?

(이무송) “약간의 음해 작전도 있었어요. 저야 갑자기 등장한 사람이었지만 아내는 팬 층이 두텁고 많았잖아요. 뿐만 아니라 결혼 전에는 사람들 불러 모으는 걸 잘했던 사람이 결혼하고 잘 안 나가니까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많았던 거죠. 노사연이 남편한테 꼼짝 못 하고 산다, 심지어 맞고 산다는 얘기도 있었어요. 그래서 저 부부는 얼마 못 살 거다, 했던 거죠. 어떻게 보면 그런 음해 작전 때문에 보란 듯이 더 잘 살아온 것도 있어요(웃음).”

(노사연) “과거에 사람들이 나를 보는 표정이 다들 안됐다는 표정이었어요. 내가 굉장히 밝고 휘젓고 다니는 스타일인데 결혼 후 기죽은 것처럼 보였대요. 남편에게 맞춰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좀 절제했을 뿐인데요.”

많이 싸웠겠네요

(노사연) “많이 싸웠죠. 싸우고 힘들 때는 정말 살지 말아야겠다, 그만둬야겠다, 했던 순간도 있었어요. 변호사를 찾아가고 싶을 때도 있었는데, 또 그럴 때 보면 그 많은 인간관계 중에 아는 변호사 하나 없는 거예요(웃음). 또 그렇게 마음이 상해 있을 때는 한 기독교 출판사에서 좋은 말씀이 담긴 책들을 집으로 보내오더라고요. 한 여섯 번 정도 왔죠. (그럼 여섯 번 정도 변호사를 찾아가고 싶었단 얘기?) 다행히 제가 상당히 긍정적인 사람이라 그 책을 보면서 다시 마음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노력했어요.”

언제쯤 편안해지던가요?

(노사연) “10년 정도 지나니 극복되더군요. 우리가 서로 좋아서 결혼했는데 살면서 서로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그런 줄 알았다면 결혼 안 했을 텐데, 하고 놀랐던 거예요. 남편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결혼 10주년이었던 2004년에 리마인드 웨딩을 했는데 그때가 딱 전환점이었던 것 같아요. 비 온 뒤 땅이 굳는다잖아요. 싫은데 억지로 산 것도 아니고, 싸운 뒤에도 측은지심이 있어서 잘 때 보면 또 불쌍하고 그렇더라고요(웃음). 재밌을 때는 둘이 또 얼마나 죽이 잘 맞는데요. 웃겨 죽어요, 아주.”

(이무송) “서로 희생을 많이 했죠. 지금은 이무송, 노사연 개인은 없고 ‘우리’만 있어요. 또 다른 하나가 된 거죠. 그래도 가끔 ‘내’가 나오고 ‘노사연’이 나오면 싸우는 거예요. 근데 그게 오래 안 가요.”

요즘 정말 이혼하는 연예인 부부들 너무 많잖아요

(노사연) “연예인 커플 중에 이혼 안 하고 사는 사람들한테 진짜 상 줘야 해요. 서로 잘났다고 생각하는 두 사람이 만나 자신을 죽이고 살아야 하는 게 얼마나 어렵겠어요. 일반인들보다 훨씬 어려울 거예요. 남들 앞에서 포커페이스 해야 할 때는 또 얼마나 많게요. 이상하게 싸우고 나면 꼭 이렇게 인터뷰나 사진 찍을 일이 생기더라니까요. (그럼 설마 오늘도?) 오늘은 진짜 아니에요(웃음).

(이무송) “예전에 싸운 뒤 라디오 생방송을 같이 한 적이 있어요. 제가 ‘날씨 참 좋죠’ 하면 아내가 받아쳐야 하는데 말 안 하고 창밖을 보고 있는 식이었죠. 생방송인데 진짜 복장이 터졌죠. 이제 우리 부부는 위기란 위기는 다 겪어서 더 겪을 위기도 없어요.”

가족들이 다 원하는데
나이 50에 딸 하나 낳아 볼까요?

살면서 어느 부부에게나 위기는 찾아오는 법. 많은 부부가 ‘자식 때문에 산다’고들 하지만, 이들 부부에겐 아들 동헌이의 역할이 진짜 컸다. 엄마 아빠가 싸울 때마다 현명하게도 두 사람 사이를 오가며 중재자 역할을 했던 아들. 나이에 비해 성숙한 아들을 보면 부모 때문에 그렇게 된 것 아닌가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란다. 외국인학교 6학년(중학교 1학년 과정)인 동헌이는 못 하는 게 없는 만능 엔터테이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음악적 재능은 기본, 공부도 잘하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창작 소설까지 쓸 정도로 창의력이 뛰어나 부부는 늘 고민한다고 한다. ‘과연 동헌인 커서 뭐가 될까?’

늘 바쁜 엄마를 대신해 동헌이를 키운 건 사실 팔할이 아빠 몫이었다. 그래도 밤에 아이를 데리고 자는 일만큼은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는 노사연.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그때 아이와 나눈 교감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지금은 깨닫는다.

동헌이가 바쁜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진 않았나요

(노사연) “어릴 때 ‘엄마 가지 마’ 하는 걸 몇 번 겪은 후 적응을 했죠. 그땐 매니저만 오면 엄마가 나간다는 걸 눈치 채고 오면 막 때렸어요. 저승사자였죠, 뭐(웃음). 지금은 다 커서 오히려 항상 조심하라며 엄마를 걱정해요. 조금 있으면 사춘기가 올 텐데, 어릴 때부터 심성이 고왔고 우리랑 대화를 많이 했기 때문에 무난하게 넘길 거예요. 아기 때 데리고 잔 게 컸던 것 같아요. 그땐 동헌이 때문에 잠을 설쳐 힘들었는데…. 낳기는 쉬워도 엄마 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세상엔 공짜가 없더라고요.”

남편이 엄마 역할까지 했다던데 서운할 때도 있지 않아요?

(노사연) “가끔은 내가 들어갈 틈이 없다는 생각도 했어요. 내가 너무 바빠서 애를 못 보니까, 어느 순간 아이가 아빠만 좋아하는 걸 보면 내 자리가 어딘가, 싶었죠. 그건 다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았을 때 들었던 생각인데, 돌아보면 바보 같았죠. 아이를 키우는 일이 힘들었을 텐데, 남편이 동헌이를 잘 보살펴줘서 너무 고마워요. 남편은 성격 자체가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우선순위가 아들이었어요. 어느 법관이 죽기 전에 회고하기를, 사회적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아이들과 30분씩 놀아 주지 못했다는 게 제일 후회된다고 했답니다. 남편은 그런 면에서 후회 없는 사람이죠. 난 최선을 다해도 남편을 못 따라가요.”

아이가 있으니 단둘이 보내는 시간은 어려운가요?

(이무송) “그래도 우린 잘하는 편이에요. 아내가 골프 입문한 지 얼마 안 됐는데 틈날 때 1박2일로 골프 여행을 가기도 해요. 동헌이를 동반해서 여행 갈 때가 더 많은데 그럴 땐 아이 위주로 스케줄을 짜느라 다른 건 거의 못 하죠.”

결혼 13주년이 지났는데 이젠 남편과 아내의 역할이 좀 바뀌나요?

(이무송) “제가 사업을 좀 시작했어요. 봄엔 제 앨범도 낼 생각이고요. 그러다 보면 그동안 동헌이에게 쏟았던 만큼 시간을 할애하지 못할 거예요. 지금까진 아내가 금전적으로도 많은 보탬이 됐고, 방송도 바쁘게 했는데 제가 사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이젠 동헌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 줬으면 좋겠어요.”

(노사연) “남편은 내가 방송하는 걸 좋아하면서도 한편 힘들어 보여서 쉬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나 봐요. 우리 부부는 5년 정도 열심히 일하고 그 후엔 아이랑 세계 여행 다니면서 욕심 없이 살고 싶은 게 꿈이에요.”

그 5년 후엔 동헌이 동생이 함께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12kg을 감량한 남편이 70kg대에 접어들면 딸을 낳아 달라고 한다며 하소연하는 노사연. 동헌이도 원하고, 남편도 원하고, 그녀 역시 “내가 못 낳을 줄 아나 봐”라며 아주 싫은 눈치는 아니니 조만간 ‘쉰둥이’ 소식이 들려오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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