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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설특집] 조청 찍은 떡 하나면 온몸에 행복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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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 뭐니 해도 금방 뽑은 떡이 최고다, 엄마 따라 나왔더니 부수입은 따끈한 가래떡.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신일 떡방앗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설이다. 올 설은 더 신난다. 달력에 빨간 날이 죽 이어져 있다. 스키장으로, 남쪽 나라로 놀러 갈 생각에 마음은 진즉 달뜬다. 그러나 꼭 그것뿐일까. 정겹고 아릿한, 우리네 설 풍경을 소설가 성석제씨가 들려준다. 우리네 설엔 가족이 있고, 푸근함이 있고, 흥겨움이 있다. 그 잔잔하고 구수한 재미를 당대의 입담꾼이 속닥속닥 들려준다. 참, 이야기 막판에 유쾌한 반전이 있다. 끝까지 읽어보시라.



 날이 조용히 밝았다. 새벽에 홰를 치던 닭들도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는 듯 좀 조용히 울었다.

우리 집은 작은집이지만 큰집의 가장이 할아버지보다 항렬이 낮기 때문에 집안의 어른 · 아이들은 맨 먼저 할아버지가 계신 사랑방으로 세배를 온다. 그 덕분에 나는 따뜻한 안방 아랫목에서 남보다 오래 이불을 몸에 돌돌 말고 있을 수 있다.

아버지는 촛불에 의지해서 문어를 오리고 생밤을 치고 있다. 차례를 지내려면 아직 두 시간은 남았다. 간혹 깎다가 부스러진 밤이 아버지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눈에 힘을 주어 쳐다보던 보람이 있어서 문어 부스러기를 얻어 씹으면서 밖으로 나온다.

마당에 내리쬐는 햇빛이 환하다. 어제 저녁 무렵 내가 쓸어 놓은 마당이 훤하게 잘생겨서 그런지도 모른다. 마당 쓸고 난 공으로 가래떡을 조청에 찍어 먹을 수 있었다. 조청은 강정 만드는 데 쓰려고 할머니와 내가 아랫방 아궁이에서 번갈아 솥을 저어가면서 만든 것이다. 가래떡은 어머니와 내가 손수레에 쌀을 싣고 읍내 방앗간에 가서 한 나절을 줄 서서 기다린 끝에 빼온 것이다. 하지만 조청 만드는 날과 가래떡 빼는 날을 빼고는 둘 다 좀체 맛을 볼 수가 없었다.

훔쳐 먹으면 되지만 풀방구리 드나드는 생쥐처럼 다락을 드나들다 들키면 사실 좀 창피하다. 아직도 ‘떡보’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것 역시 그렇다. 떡 좋아하는 떡보가 조청 묻은 떡을 물고 다락계단을 타고 내려오다가 견원지간인 작은누나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집안은 물론 동네방네, 학교까지 소문이 날 것은 뻔한 일이다.

설빔으로 입은 새 옷에서 냄새가 난다. 신작로를 달리는 버스의 연통에서 나는 것 같은, 문명의 냄새다. 사랑방 앞 섬돌에 아이들의 신발이 수북하다. 할아버지가 증조할아버지 산소에 갔다가 오는지 뒷짐을 지고 천천히 대문 안으로 들어온다. 할아버지가 내 곁을 지날 때 풀 먹인 두루마기에서 사각, 하는 소리가 난다.

아이들이 모두 일어섰다가 할아버지에게 세배를 한다. 할아버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공부를 잘 하라거나 이제 나이 한 살 더 먹었으니 어른스러워지라고 말씀하신다. 세뱃돈은 없다. 바라지도 않았다. 쓸 데도 없다. 뭘 사려고 하면 읍내까지 가야 하는데 너무 멀다.

강정이 한 접시 나온다. 까마귀발 같은 시커먼 손 수십 개가 모여드니까 금방 바닥이 보인다. 제일 맛없는 콩강정 하나가 내 차지가 된다. 이제 집안의 두 번째 어른이 사시는 곳으로 이동할 차례다.

가는 길에 나와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이지만 항렬로는 나보다 하나 위인 규남이가 나를 꾹꾹 찌르며 이따 자기한테도 세배를 하라고 한다.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제 형을 믿고 하는 수작이다. 내가 그 아저씨, 아니 형의 연애편지를 아랫마을 영애 누나에게 배달해준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무지몽매하고 불쌍한 녀석.

홀로 사시는 셋째 할머니 댁에 들어선다. 작은 마당이 조용하다. 집도 작고 방도 적고 작다. 그 작은 공간은 우리가 들어서면서 대번에 일 년 중 가장 복닥거리고 시끄러운 순간을 맞는다. 할머니는 세배를 받은 뒤에 보답으로 지난가을에 따서 익혀온 홍시, 그리고 손수 만든 유과를 내놓는다. 할머니처럼 깨끗하고 품위 있는 생김새를 하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감상할 겨를이 없다. 삽시간에 거덜을 내버린다.

집으로 돌아와 차례를 지낸다. 제사 지낼 때와는 달리 밥 대신 노란 지단과 고명이 얹힌 떡국이 놓였다. 마루에 들어갈 자리가 부족해 아이들은 마당의 멍석 위에서 절을 한다. 마당에서 절을 하는 건 일 년에 두 번, 추석과 설의 차례 때뿐이다. 차례의 절차는 모두 고요 속에서 진행된다. 가벼운 헛기침과 눈짓· 몸짓을 따라할 뿐 말은 거의 없다.

“철상(撤床)하자.”

할아버지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면서 차례는 끝난다. 안방과 건넌방·사랑방에 두레상이 펴지고 남자 어른들은 사랑방에서, 여자와 아이들은 안방과 건넌방에 앉는다.

“떡국 한 그릇에 한 살씩 먹는단다.” 설날마다 하는 말을 막내 고모가 또 한다. 세 그릇째 손이 간다. 배가 터질 것 같지만 나이 먹는 일을 게을리할 수 없다. 올해 처음으로 내 띠가 되는 해가 돌아왔으니 언제 내 성숙한 정신연령에 어울리게 나이를 먹을지 생각하면 갑갑하다.

마당에서 널을 뛰는 여자들, 윷을 던지는 형과 아저씨들을 뒤로하고 썰매를 어깨에 둘러메고 아무도 없는 얼음판으로 향한다. 들판과 언덕 이곳저곳에서 연이 날고 있다. 훨훨, 큰 새처럼 아래를 굽어보며.

혼자라서 그런지 썰매날이 얼음을 갈고 나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얼음판 맨 안쪽 웅덩이 앞에 썰매와 내가 함께 멈춘다. 물이 나는 곳이라 얼음이 얼지 않았다. 물은 고요하다. 응? 갑자기 물 위로 뭔가 몽글, 하고 솟아올랐다. 몽글몽글 꼬르르. 얼음장 밑에도 뭔가가 살고 자라고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알겠다.

이제 어른이 된다. 오늘 썰매를 웅덩이 밑에 영원히 가라앉히고서, 나는.

글=성석제(소설가),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성석제는 1960년 경북 상주 출생. 시골살이 경험이 담뿍 밴 그의 글은 진솔하고 맛깔 난다. “나는 재미없는 이야기는 안 한다”고 자부할 만큼 당대의 입담꾼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한국일보문학상·동인문학상·현대문학상 등을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 소설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 장편 『왕을 찾아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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