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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유불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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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첫째, 정부조직 개편의 주체에 관한 문제다. 우리 헌법 제96조는 ‘행정 각부의 설치, 조직과 직무범위는 법률로 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조문과 대동소이한 제헌헌법 제75조를 해석하면서 유진오 박사는 “행정 각부의 조직은 국민의 권리의무에 지대한 영향이 있으므로 정부가 임의로 그를 정하지 못하게 하고 국회의 의결을 요하는 법률로써 그를 규정하도록 한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 각국이 채용하는 바로서 패전 전의 일본에서 그것을 천황의 관제대권(官制大權)이라 하여 정부가 임의로 정하던 것과 전연 다르다 할 수 있다”고 하였다. 과거 절대군주시대에 군주 1인의 의사에 전속돼 있었던 행정부의 조직권한을 행정조직법정주의를 채택해 국회의 의사에 종속시키고자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회의 법률로 규정된 행정 각부를 통폐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국회에서 법률로 새로이 정해야 한다. 국회는 정부조직에 관한 확정권한을 부여한 헌법의 취지를 명심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마치 대통령직인수위에 정부조직에 관한 재량권한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항간의 오해는 헌법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둘째, 정부조직 개편의 시기에 관한 문제다. 시작이 반이라고도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정권 인수와 더불어 곧바로 자신의 정책노선에 따라 업무를 개시하고자 하는 충정은 이해되지만, 구정부가 살아 있는 상황에서 전혀 다른 국정운영 철학을 기반으로 한 대대적인 정부개편을 추진하는 것은 저항과 분란을 자초하는 면이 있다. 나아가 신정부는 올해로 환갑을 맞는 대한민국 정부의 바통을 이어받는 것이지, 제로베이스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므로 옛집을 헐고 새집을 짓는 식으로 가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바뀌는 5년마다 정부조직의 골격이 따라서 바뀌기를 되풀이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부의 연속성과 국민생활의 안정을 고려한다면 정부조직 개편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

셋째, 정부조직 개편의 내용에 관한 문제다. 우선 통일부를 폐지하고 외교부와 통합하는 것은 국제관계와 남북관계를 별도로 규정하고 통일을 국가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헌법의 취지와, 종래 남북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가 아닌 관계’로 파악해 온 확립된 학설과 판례에 배치된다. 참고로 우리와 같은 분단국이었던 독일의 경우 동·서독 관계는 외무부와 별도의 부서(연방내독관계부)를 두어 관리했으며, 통일 직후 폐지했으나 동·서독 주민 간의 완전한 통합에 이르기 전의 성급한 결정이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남북관계 및 통일 문제는 국제관계를 다루는 외교부와는 분리해 독립된 부서에서 담당하게 하는 것이 맞다.

다음, 여성가족부를 폐지해 보건복지부와 통합하는 것은 한국의 낙후된 성 차별적 환경과 여성가족 관련 복지정책의 특수성을 간과한 것으로 정책적으로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가인권위원회를 독립기구에서 대통령 소속으로 옮기는 것은-아무리 업무의 독립성을 보장한다 하더라도-권력을 상대로 인권을 옹호하는 것이 주업무인 인권위의 본질과 부합하지 않는다. 인권위원회 설립 당시 국가기구로 할 것인지, 민간기구로 할 것인지 팽팽한 의견대립이 있는 등 장기간에 걸친 무수한 논의 끝에 독립된 국가기구로 하게 된 연혁을 돌아보기 바란다.

앞으로 5년간 대한민국 호를 이끌어 갈 신정부가 닻을 올리기도 전에 비바람을 맞지 않으려면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신정부가 자신의 생각에만 집착하지 말고 국회와 협력해 따뜻한 햇살 아래 아름답게 출범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김선택 고려대 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