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명분 없는 김현철과 박지원의 출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씨가 총선에 출마하려 한다. 현철씨는 YS의 고향인 거제, 박씨는 DJ의 고향인 목포에서 각각 한나라당과 대통합민주신당의 공천을 받으려 한다. 두 사람은 지난해 2월과 12월 사면·복권됐으니 형식논리상 피선거권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들에게는 과연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할 도덕적 자격이 있는가. 개혁 공천을 한다면서 비리 전과자를 공천할 수 있는 것인가. 이들이 공천을 받는다면 유권자는 어떤 명분으로 이들을 찍어야 하는가.

현철씨는 1997년 비리 혐의로 감옥에 갔다. 현직 대통령의 아들로서는 처음이었다. 그는 한보 등 여러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았다. 한보는 부도가 났으며 삼미·해태·기아 등 여러 대기업의 부도가 줄을 이었다. 외국 투자가들이 급히 돈을 빼는 등 여러 사태가 겹치면서 한국은 외환위기에 빠졌다. YS의 최대 실정이자 한국전쟁 이후 국민의 최대 시련이었다. 현철씨는 2006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다시 구속됐다.

현철씨는 DJ의 차남 홍업씨의 선례를 의식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홍업씨도 DJ의 재직 중 뇌물수수 혐의로 사법 처리됐다. 그러나 그는 사면·복권을 받아 지난해 4월 민주당 공천으로 재·보선에 출마했다. DJ의 출생지 하의도가 있는 무안-신안이었다. 여론의 화살이 쏟아졌지만 그는 당선됐다. 한나라당이 이런 사례를 따라가선 안 된다. 당규에 따르면 부정·비리에 연루된 사람은 공천 부적격이다. YS가 이명박 당선인을 도왔다 해서 그 아들에게 ‘보은(報恩) 공천’을 한다면 공천 작업 전체가 한순간에 매도될 수 있다.

 박씨는 대기업에서 돈을 받고, 대북 송금에서 관련법을 어기고 직권을 남용했다는 유죄판결을 받았다. 사면을 받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적 계산에서 DJ를 배려한 것이었다. 현철씨와 박씨, YS와 DJ, 한나라당과 신당 그리고 유권자 모두 정도(正道)가 무엇인지 숙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