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펀드 수수료 싼 줄 알았더니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회사원 김필성(36)씨는 지난해 말 A증권사 홈페이지에서 펀드에 가입했다. 수수료를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최근 집 근처 은행에 들렀다가 똑같은 상품의 안내서를 봤더니 가입 비용이 온라인이나 창구 가입의 차이가 없었다.

 김씨는 펀드를 판 증권사에 “왜 수수료를 안 깎아 주느냐”고 따졌다. 그러나 증권사 직원은 “인터넷으로 가입한다고 다 수수료가 싼 건 아니다” “수수료를 줄이려면 온라인 전용 펀드를 골라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하지만 A사가 온라인으로 파는 상품 200여 개 중 수수료가 싼 온라인 전용 펀드는 40여 개에 불과했다. 그나마 100억원 이상 팔린 것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잘 나가는 상품이 별로 없다는 얘기다.

 2005년 말 22억원에 불과했던 온라인 펀드 판매액은 2년여 만에 6940억원으로 300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구색 갖추기용이란 인상을 준다. 온라인으로 파는 상품 대부분이 이름만 온라인 펀드일 뿐 실제로 창구에서 파는 상품과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무늬만’ 온라인=온라인 펀드는 크게 세 부류다. 하나는 온라인에서만 파는 상품이다. 둘째는 오프라인에서도 팔지만 온라인으로 가입하면 수수료를 깎아 주는 경우다. 이런 펀드는 대개 이름 끝에 ‘Class-E’ 또는 ‘Ce’라는 말이 붙는다. 보통 이 두 종류를 합쳐 온라인 전용이라고 부른다.

 마지막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온·오프 양쪽에서 팔고 수수료도 같은 펀드다. 오프라인에서 인기를 끈 펀드는 대개 이에 속한다. 투자자는 온라인으로 가입하면서도 똑같은 수수료를 내는 경우가 많다. 은행이 인터넷 뱅킹 수수료를 대폭 깎아 주는 것과 비교하면 불합리한 가격구조다.

 ◇판매사 눈치 보는 운용사=인터넷 증권사인 키움증권은 온라인 펀드 판매에 적극적이다. 하지만 이 회사가 인터넷에서 파는 펀드 251개 중 수수료가 싼 온라인 전용은 73개뿐이다. 키움증권 주인 차장은 “전용 펀드를 더 많이 팔고 싶지만 마땅한 상품이 없다”고 말했다. 펀드를 만드는 자산운용사 상당수가 온라인 전용 상품 내놓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이 판매망을 장악한 은행·증권사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온라인 전용 펀드가 많아지면 은행·증권사의 판매 수수료는 그만큼 준다. 한 운용사 간부는 “백화점엔 10만원에 납품하는 물건을 온라인 쇼핑몰에 9만원에 넘기면 백화점이 좋아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다른 운용사 사장은 “인기 펀드를 온라인에서 싸게 팔았다가 대형 은행·증권사에 미운 털이라도 박히면 그날로 판매 실적이 곤두박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수료 할인 폭 늘려야=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주식형 펀드 가입자가 부담하는 총 보수·비용(TER)은 지난해 오프라인이 평균 2.28%, 온라인이 1.78%로 0.5%포인트 차이 난다. 이 정도로도 5년, 10년씩 장기투자를 하면 비용부담이 크게 벌어진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온라인 전용 펀드만 개설하는 온라인 운용사 설립을 검토하는 곳도 있는 것으로 안다”며 “경쟁이 심해지면 수수료도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