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대운하에 드는 몇 가지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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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당선인 측이 밝힌 대운하 구상의 원칙은 두 가지다. 하나는 시간을 갖고 의견을 수렴하며 설득해 나간다는 것, 또 하나는 100% 민자(民資)로 하겠다는 것. 한반도 대운하 자체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양쪽 모두 논리의 타당성이 있어 나 같은 문외한이 끼어들 일은 아니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오히려 당선인 측이 말하는 두 가지 원칙에 대해서다.
 
우선 충분한 시간과 설득 또는 수렴의 문제다. 한반도 대운하는 그저 하나의 규모 큰 토목사업이 아니다. 한반도 남쪽의 가장 큰 두 강을 연결해 세로축을 관통하는 새 물길을 뚫는 일이다. 삼국시대 벽골제·의림지를 만들고, 고려 때 안면도를 끊어내고, 조선시대 청계천을 개착(開鑿)하는 것과는 유가 다른 국토개조 사업이다. 요즘 식으로 말해도, 연결도로를 내고 길에 터널을 뚫거나 교량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좋건 나쁘건 그 영향을 두고두고 끼칠 사업이다. 후보자 시절부터 충분히 검토했다 해도 쉽게 결론낼 수도, 내서도 안 되는 일이란 것이다. 당선인 측은 앞으로 1년 정도 의견을 수렴한다고도, 설득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양쪽은 아주 다르다. 설득은 ‘제 의견’을 남에게 납득시키는 것이지만, 수렴은 ‘남의 여러 의견’을 거두어 모으는 것이다. 몇몇 여론조사에서 보면 대운하 찬성과 반대 의견은 대략 비슷하게 나온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사업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1년은 너무 짧다. 게다가 1년의 설득 기간이란 것도 이미 5대 건설회사에 사업성 검토를 요청하고, 올 상반기 내 특별법 제정 운운하는 걸 보면 내부적 시간표가 짜인 느낌이다. 아니길 바라지만 그렇다면 이는 의견 수렴이 아니다. 자기합리화를 위한 요식행위가 아니냐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민자로 한다는 구상도 의아하다. 제대로 된 기업이 어떤 사업에 참여하려면 단 한 가지 동인(動因)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돈이 돼야 한다. 돈이 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사업 자체가 돈이 되는 경우. 다른 하나는 이 사업을 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피해, 또는 사업 참여로 인한 반대급부를 생각하면 하는 게 나은 경우다. 사업 자체가 돈이 되는 경우라면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골재 판매대금과 향후 운하 운영권으로 이를 벌충할 수 있을까에 대해선 회의적 시각이 대세다. 두 번째의 논리에도 문제가 있다. 이제 막 출범하는 권력으로부터 검토를 의뢰받았다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보면 부담이자 기회다. 과거 경험으로 보면 둘 중 하나다. 안 해서 찍히든지, 해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결과를 내든지 하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문제다. ‘실용’의 새 정부에서 과거의 잘못이 되풀이될 리 없다고 믿는다. 더욱이 스스로 대건설회사 경영을 맡아본 입장에서 그런 무리한 강요를 할 리도 없다.

그렇다면 결국은 대운하 중간중간의 물류 거점 등에 대한 개발권이란 이권이 달라붙을 수밖에 없다. 이 경우 국토개발을 어차피 사적 이익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기업에 맡길 수 있느냐는 문제가 생긴다. 게다가 이익보전 차원에서 개발권이 할양될 경우 도대체 잠재적 이익률을 얼마로 할 거냐, 그럴 때 생기는 정경유착에 대한 쓸데없는 의혹을 어찌할 것이냐 하는 문제에서부터 지역 간의 이해 충돌과 그로 인한 계량키 어려운 사회적 갈등은 어떻게 풀 것이냐의 문제 등 생각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점에서 대운하는 몇 가지 분명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 현재와 같은 40 대 40 정도의 찬반 상황에서, 그것도 정권 초기의 지지도로 인식이 흐려진 상황에서 밀어붙이는 것은 문제다. 일각에서 말하듯 1년 설득, 4년 건설로 임기 내 끝장내겠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그러기엔 사업의 성격이 너무 거창하고, 져야 할 부담이 너무 크다. 시간이 필요하다. 또 하나는 필요성이 확인되고 설득이 끝나 국민적 합의로 추진된다 할 때는 재정사업으로 하자는 거다. 이 당선인 측 말대로 16조원이면 되는 사업이라면 한 해 4조원이다. 연간 250조원의 국가예산으로 볼 때 재정에서 못할 게 없다. 구태여 특혜 의혹까지 사가며 민간에 넘길 이유가 없다. 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할 거면 똑부러지게 하자는 얘기다.

박태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