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없으면 차관들과 일할 것 통일부도 협상용 절대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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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에서 통과 안 시켜주면 차관들과 일해야겠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23일 저녁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한나라당 원내대표단과 행정자치위원들을 만나 이같이 말했다. 현행 18부 4처를 13부 2처로 줄이는 정부조직 개편안 처리가 지연돼 조각(組閣)이 지연될 수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 당선인은 “국회에서 통과가 안 되면 새 정부 출범 때부터 힘을 받기 어렵다. 원안 그대로 통과시켜달라”고 이들을 격려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이 당선인은 또 “설 전까지 데드라인으로 해서 처리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때까지도 잘 안 되면 설 전에라도 내가 눈물로 호소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이 당선인은 지난 주 중 원내대표단을 만나서도 “장관이 없으면 국장이랑 일하겠다”는 취지로 말한 적이 있다.

 이 당선인은 현재 청와대·구여권·관료에게 삼각 포위된 상황이다. 청와대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구여권은 “효율적 정부를 위해 노력했다”면서도 부처 통폐합엔 사실상 반대한다. 관료들도 조직적으로 저항 논리와 반대 세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로선 첫 도전인 셈이다. 적당히 타협할까, 아니면 밀어붙일까.

 2월 중순께까지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새 정부 출범일인 같은 달 25일 조각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출범 이후에도 처리되지 않으면 현행법에 따라 18부 4처 체제의 인선을 해야 한다.

‘차관·국장과 일하겠다’는 취지의 당선인 발언은 “적당히 타협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주변 인사들은 전했다. 조각이 지연되는 한이 있어도 실제 원안 통과를 원한다는 의미다. 김형오 인수위 부위원장은 “이 당선인은 결정할 때까지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지만 일단 결심한 이후엔 단호하다”고 말했다. 이 당선인이 “통일부도 협상용이라고 말하는 모양인데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당선인이 반대 논리를 터무니없다고 여긴다”는 전언도 있다. 그가 “(구여권이) 정부 축소는 잘했다면서 통일부·과기부·정통부·여성부·해양부를 다 살려내라고 하면 아예 정부를 축소하지 말라는 얘기 아니냐”고 황당해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개적인 비판은 피하고 있다. 원내 1당인 대통합민주신당뿐 아니라 4석 정당인 국민중심당까지 찾아갔던 당선인은 앞으로도 설득 여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참모들은 “구여권 의원들도 직접 설득하라”고 조언한다.

 이 당선인 진영에선 4·9 총선이 임박한 상황에서 “대통령만 덜렁 있는 정부가 출범하는 상황을 구여권도 원치 않을 것”이란 기대감도 있다. 1998년 원내 1당(295석 중 162석)이던 한나라당이 총리 인준 문제를 물고 늘어졌다가 그해 6·4 재·보선에서 참패한 경험을 구여권도 유념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하지만 그해 23개 부처 중 7개 부처를 줄이려던 김대중 당선인의 계획이 한나라당과의 협상 과정에서 해양부가 살아나면서 6개 부처만 통폐합되는 수준으로 축소된 일도 있었다.

한 인수위원은 ‘협상 과정에서 한두 부처가 살아날 수 있는가’란 질문에 “이 당선인이 OK 한다고 말 못하겠다. 의지가 워낙 강하다”고 말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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