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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개혁이것이과제다>5.법학교육 현주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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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수업엔 꼬박 들어갔지만 법대 4년동안 뭘 배웠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학기내내 다수설.소수설.통설등 많은 법이론을 배우게 되지만 교재의 절반도 못 끝내는 과목이 태반이었습니다.
언론에선 고시학원이 문제라고 지적하지만 오히려 그곳에서 법학에 대한 포괄적인 교육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지난해 사법시험에 합격한 李모(27.S대법대졸)씨가 돌아본「법대 4년」은 법학교육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법대생이면 누구나「합격만 하면 신분상승과 함께 평생이 보장되는」사법시험에 매달리게 마련이고,그러자면 법과대학은 과목별 단기완성에다 족집게강의를 하는 고시학원보다 못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서울관악구신림동 고시촌에는 10여개 고시학원이 몰려드는 법대생들로 성업중이고 S대법대등에선 재학생중 절반이상이 고시학원에 다니고 있을 정도다.
『입학동기생 1백60명중 10%정도가 아예 고시원에서「먹고 자며」고시학원에 다닌다』는 Y대법대 3년 李모(22)군의 말처럼 고시학원 근처에서 생활하거나 고시학원 특강을 놓치지 않기 위해 수업을 빼먹는 경우도 점점 늘어간다.
현행 사법시험제도로 빚어진 법학교육의 파행은 고시원을 사시사철 법대생들로 북적거리게 만드는데 그치지 않는다.
교육과정 자체가 사법시험 위주로 짜여져 헌법.형법.민법총칙및소송법등 시험과목은 당연히 전공필수인 반면 법조인으로서의 소양을 키우는데 필수적인 과목마저도 고시와 관련이 없으면 학생들로부터 외면당하기 일쑤다.선택과목 교수들마저『폐강 이 되지 않으려면 학점을 후하게 준다는 소문이 나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한양대법대는 날로 늘어나는 환경 관련 분쟁에 대처할 수 있는법률지식을 가르치기 위해 몇해전부터 환경법강좌를 신설했으나 번번이 폐강하고 말았다.
환경법을 전공한 강사를 초빙하기도 힘들었지만 사법시험과목이 아니라는 이유로 학생들이 거들떠보지 않아 강의개설에 필요한 최저 수강인원조차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들이 이처럼 4년내내 고시에 매달려 봤자 정작 재학중 합격하는 숫자는 전국에서 10명이 채 안된다.非법대 출신과 졸업생까지 합해 사법시험 최종 합격자수가 3백명 미만임을 감안하면 전국 70여 법과대학에서 매년 배출하는 법대생 7천여명중 4%정도만이 합격하는 셈이다.
대부분의 법대교수들은『졸업생중 96%가 기업체.금융계등 다른진로를 모색할 수 밖에 없는데도 법대가 사법시험과목 중심으로 법학교육을 하는 것은 일종의 직무유기』라고 실토한다.
법대교수중 변호사자격을 갖고 있거나 법조에서의 실무경험이 있는 교수가 전국을 통틀어 열명이 채 안되는 교육여건도 문제다.
그러다 보니 판.검사나 변호사등 법조인들은『대학때 배운 것으로 실제 해결할 수 있는 법률문제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고백한다. 소장도 쓸줄 모르면서 소송법을 가르치는 오늘의 법학교육 현실을 꼬집는 말이다.
『학생들은「보석」을 무죄석방과 같은 것인줄 알고 있더군요.
보석은 재판부가 피고인에게 불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도록 허가해준 것에 불과한데 말이죠.』 지난 학기 모대학에서 형사소송법강의를 맡았던 한 변호사의 경험담도 따지고보면 법대교육이 얼마나 이론에만 치우쳐 있는지를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 학제二元化 의견 ……○ 결국 지금의 법과대학은 시험에 합격하는 극소수에 대해서도,또 몇번 고배를 마신끝에 시험을 포기하는 절대다수에 대해서도 모두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게 공통된 지적이다.
파행으로 치닫는 법학교육을 바로 세우는 것은 무엇보다 현행 사법시험제도의 개선과 직접 관련이 있다.
서울대법대 권오승(權五乘)교수는『사법시험제도 개편과 연계해 법대학제를 바꿔 법률전문가를 양성하는 6년제 법과대학과 정부.
기업.사회단체등에서 활동하는데 필요한 실제적인 법률지식을 가르치는 4년제 법과대학으로 이원화해야 한다』는 의견 을 내놓았다. 학제개편 이전이라도 환경법.조세법.지방자치법.지적재산권법.
특허법등 사회변화를 따라갈 다양한 과목을 많이 개설해 법학교육을 보다 살아있는 교육으로 만들자는 의견도 강하게 제시된다.
이석연(李石淵)변호사는『실무위주의 교육프로그램을 많이 개발하고 최근 판례를 많이 소개하는 한편 판.검사.변호사등 법조인을강사로 초빙해 사례 중심의 강좌를 맡기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제안했다.
〈李相列기자〉 ◇도움말 주신분▲權五乘서울대법대교수▲許慶 연세대법대교수▲梁建 한양대법대교수▲權誠 서울고법부장판사▲李石淵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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