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는 지금… :::서툰 사람들 & 늘근 도둑 이야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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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타주까지 배포된 도둑이 집주인 손목 하나 밧줄로 묶지 못해 끙끙댄다. 평생을 형무소에서 지낸 두 늙은 도둑은 개 짖는 소리만 들려도 몸 낮추기에 급급하다. 서툴고 어수룩한 도둑들이 모처럼 대학로에 연극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연극의 대중화를 위해 기획된 ‘연극열전2’의 오프닝 작품 ‘서툰 사람들’(장진 연출)과 뒤를 이은 ‘늘근도둑 이야기’(김지훈 연출)가 그것. 지난달 7일 개막한 ‘서툰 사람들’은 1월 말까지 전석이 매진될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늘근도둑 이야기’는 한 티켓 예매 사이트에서 1월 연극 부문 예매율 1위를 기록했다. 두 연극은 도둑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 외에 충무로와 대학로의 간판 감독과 배우들이 호흡을 맞춘 작품이란 점에서도 닮았다.


장진式 유머… 100분간 배 아프게 웃다

■서툰 사람들= 두터운 마니아층을 이끌고 있는 영화감독 장진의 3년 만의 대학로 복귀작이다. 대본은 장 감독이 군 제대 직전에 완성한 것으로 직접 연출까지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 많은 도둑 장덕배와 엉뚱한 집주인 유화이의 유쾌 발랄한 하룻밤 이야기가 기둥 줄거리다.

퇴근 후 맥주를 빨대로 빨아 마시며 멜로드라마에 빠져 지내는 여교사 유화이. 문을 잠글 필요가 없을 정도로 허름한 그녀의 독신자 아파트에 도둑 장덕배가 들어온다. 검은 옷에 복면을 하고 칼까지 든 험악한 분위기지만, 금세 들통 나는 그의 정체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화이의 손목을 밧줄로 묶기에 앞서 수첩을 꺼내들어 방법을 확인하는가 하면, 다음날 집주인의 점심값이 걱정돼 훔치려던 현금의 일부를 지갑에 다시 넣어주는 ‘친절’도 베푼다.
화이 또한 만만찮다. 제대로 된 가전제품 하나 없는 자기 집에 들어온 도둑이 불쌍해서 비상금도 털어가라고 일러준다. 처음엔 ‘상징적’으로 겁먹더니 점점 도둑을 친오빠 대하듯 한다. 옥신각신 하던 두 사람은 서로에게 서서히 호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장진식(式) 유머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상황과 대사가 100분 내내 웃음을 선사한다. 살짝 비튼 상황과 작은 반전이 관객의 허를 찌르며 독특한 재미를 준다. 순발력 넘치는 대사는 흘려듣기 아깝다. 그러나 무대 조명이 꺼진 뒤 웃음 뒤에 남는 것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다.
도둑질에 서툰 덕배와 사랑에 서툰 화이, 한밤중에 자살소동을 벌이는 기러기 아빠 김추락, 세상의 틈바구니에서 소심하게 살아가는 세일즈맨 서팔호, 아파트 하나 분양 받기 위해 딸(화이)과 세대를 분리해 따로 사는 유달수. 등장인물 모두 누군가와 ‘소통’을 기다리는 우리 모습이다.
3월 16일까지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 류승룡·강성진(장덕배 역), 장영남·한채영(유화이 역), 김원해·이상훈(김추락·서팔호·유달수 역) 출연 / 일반 3만5000원, 학생 2만5000원.
 


두 도둑의 너스레와 능청스런 연기

■늘근도둑 이야기= 깜깜한 무대에 손전등 불빛이 흔들린다. 작고 가느다란 목소리가 뒤따라 무대에 오른다. 잔뜩 겁에 질린 두 늙은 도둑이 ‘작업’을 시작한다. 형무소에서 오랜 세월을 살았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몸은 얼어있다.
새 대통령 취임 특사로 감옥에서 풀려나온 후 갈 곳도, 먹을 것도 없이 거리를 헤매다 이들이 숨어든 곳은 ‘그 분(사회 고위층)’의 미술관.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권위를 자랑하는 그 분의 미술관에는 세계적인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작품의 가치를 전혀 모르는 두 도둑은 금고만을 찾는다. 미술품 금고를 수억 원의 돈이 들어있는 진짜 금고로 착각한 이들은 ‘개도 잠든다’는 새벽 2시를 기다린다. 무료함을 달래려 서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입담이 걸출하다.

‘늘근도둑 이야기’는 1989년 ‘제1회 동숭연극제’ 초청으로 초연된 이후 2003년 동숭아트센터의 ‘生연극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화제를 몰고 다닌 작품이다. 96년엔 명계남의 유명세까지 더해져 대기표까지 만들어야 할 만큼 호응이 컸다.
이 작품의 매력은 시원한 웃음에 있다. 현 사회 현상을 코믹하게 풀어내는 풍자가 극에 생동감을 준다. 초연 당시엔 권력자들의 위선을, 문민정부 시대엔 당시까지 남아있던 권위주의의 잔재를 신랄하게 꼬집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풍자’보다는 ‘웃음’에 무게를 두고 있다. 풍자의 쾌감을 기대했던 관객에겐 다소 싱거울 수 있다.
긴 의자가 전부인 단출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두 도둑의 너스레와 능청스런 연기가 작품을 이끄는 힘이다.
코믹한 리듬을 타며 연신 맞받아치고 호흡하는 두 배우의 즉흥성과 순발력, 그리고 절묘한 앙상블이 코미디 연극의 묘미를 보여준다.
7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화려한 휴가’의 김지훈 감독이 연극 무대에 도전한 첫 작품이다. 이상우 원작. 더 늙은 도둑에 유형관과 박원상, 덜 늙은 도둑에 박철민과 정경호가 더블 캐스팅 됐다. 최덕문과 민성욱이 수사관으로 출연한다.
3월 9일까지 사다리아트센터 동그라미극장 / 일반 3만5000원, 학생 2만5000원.
 
::: 연극열전2
2004년 ‘연극의 흥행 가능성’을 엿보게 했던 ‘연극열전’에 이어 4년 만에 기획된 프로젝트다. 배우 조재현이 프로그래머로 참여해 지난달 7일부터 2009년 1월 4일까지 총 11 작품을 선보인다. 공연문의 02-766-6007

프리미엄 김은정 기자 hapia@joongang.co.kr

독자 170명에게 공연·전시회 입장권 드립니다
중앙일보 프리미엄은 연극 ‘서툰 사람들’(5명)과 ‘늘근도둑 이야기’(10명), 전시 ‘유럽현대미술의 위대한 유산’(50명)과 ‘칸딘스키와 러시아 거장전’(20명)에 독자 85명(1인 2매)을 초대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온라인 이벤트 참조. 원하는 공연이나 전시를 선택해 29일까지 우편(100-110 서울시 중구 서소문동 58-9 중앙빌딩 1층 프리미엄 이벤트 담당자)으로 응모권을 보내거나 프리미엄 사이트(www.jjlife.com)에서 응모하면 됩니다. 당첨자는 30일 온라인에 공지하고 휴대폰 문자로 개별 통보합니다. 문의 1588-3600(내선 4번)

'목소리 마술사' 바비 맥퍼린 내한공연
‘돈 워리, 비 해피(Don’t worry, Be happy)’로 유명한 팝 보컬리스트 바비 맥퍼린이 25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내한공연을 갖는다. 2004년 첫 내한공연 이후 4년 만이다.
맥퍼린은 악기의 도움 없이 4옥타브를 넘나들며 재즈·팝·클래식 등 모든 장르의 음악을 소화해내 ‘목소리의 마술사’로 불린다. 1922년 첼리스트 요요 마와 협연한 음반으로 빌보드 클래시컬 차트에 2년 이상 머문 기록도 갖고 있다. 2000만 장이 넘는 음반 판매, 10차례의 그래미상 수상 등 이력도 화려하다. 이번 공연에서는 첼리스트 송영훈, 바로크 음악 연주 전문단체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 가야금 연주자 고지연과의 협연도 마련된다. 4만~15만원. 문의 GS강남방송 02-586-2722(유유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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