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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며생각하며>18.승리부대 근무22년 金順錫 주임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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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젊었을 때 보다 근시(近視)는 더 심해져 좀 먼 곳은 졸보기안경도수를 더 올려 써야 볼수있게 되어가는 한편 신문을 읽는다든지,좀 가까운 것을 보려면 반대로 돋보기 도수를 해가 갈수록더 세게 바꿔야 하게 되어 간다.내 시력의 이 런 모순되는 이중적(二重的)발전으로 말미암아 알게 된 것이 있다.어떤 눈에는멂과 가까움이 둘 다 매우 희미하다는 사실,그리고 각기 반대되는 광학적 특성을 갖는 안경을 끼면 이 상반되는 희미함을 둘 다 제법 또렷하게 보아 낼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나는 군대라는 말에선 노자(老子)가「兵은 상서롭지 못한 도구다(兵 不祥之器)」라고 한 것을 무엇보다 먼저 떠 올리곤 했다.故 함석헌(咸錫憲)씨가 군사적인 권력을 정죄(定罪)하기 위해이를 자주 인용했는데 아마도 그의 글을 읽고 영 향을 받은 사람이 나만은 아니리라.이 말은 평화의 이상적 원경(遠景)을 그린 말이다.그리고 멀리서보면 볼수록 이 말의 내용은 너무도 아름답고 진실되다.이 말이 간절하게 느껴지는 때가 내가 강력한 졸보기 안경을 쓰고 있을 때라는 사실 을 깨닫기 시작한 최근이다. 중부 전선 최전방을 지키고 있는 「승리부대」의 부대주임원사 김순석(金順錫)씨를 만나러 가면서 나는 근시 안경을 벗고 대신 돋보기 안경을 꺼내 내 마음의 눈에 끼웠다.국민 개병제(皆兵制)에 따라 뽑힌 우리네 군인들이 자칫 자기들의 마음 속으로부터 빠져 나가려는 군인의 임무를 새겨 붙잡아 두려고 쉴새 없이 불러대는 군가가 있다.『산봉우리에 해가 뜨고 해가 질 적에/부모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돋보기 안경을 끼면 이군가를 부르는 「나」들의 정당성과 이런 「 나」들이 있기에 이사람들의 부모형제들이 이룰 수 있는 단잠이 보인다.평화의 현실적인 근거리 모습은 바로 이것이다.
이 부대는 대성산(大成山)너머로 북한군 제46사단(사단장 김명환)과 제25사단(사단장 김세출)을 반반씩 마주 하고 있다.
승리부대라는 이름은 6.25때 빛나는 전승을 하도 많이 올리고있는 것에 감탄한 나머지 이승만(李承晩)대통령이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부대』라며 직접 붙여주었다고 이 부대 민심(民心)참모가 자랑한다.부대 연병장 통제대에는 「大成山 異常無」라고 커다랗게 씌어있다.
원사라는 계급은 하사관의 우두머리다.김순석 원사는 해방둥이로올해 쉰한살.군대는 스물두살 나던 해인 66년에 입대했다.그가입대후 공수부대 특공대원으로 7년간 근무했다는 사실은 현재의 그의 얼굴을 보아서는 알아낼 수가 없다.「안케 전투의 영웅」으로 72년 신문 지면을 우렁차게 장식했던 사람이라고는 더구나 믿어지지 않는다.한 사람의 순박하고 자상한,그래서 잔소리 깨나할 것 같아 보이는 완벽한 산촌 초로(初老)의 얼굴을 그는 지금 가지고 있다.그가 월남전에 자원했던 것은 경제적 동기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결혼해서 아내가 첫 아이를 낳은지 얼마 안지나서였는데 살림형편이 어려웠어요.그 당시는 하사관 봉급이 너무 적었어요.월남에 가면 2중 봉급을 받았습니다.살기가 나아질 것 같아서 지원했지요.간지 한달도 안되어 그 유명한 안케 전투를 치렀지요.특수부대 훈련을 잘 받아두었던 덕에 그 치열했던 전투에서도 부상하나 입지 않았어요.그때 저는 기갑연대 특공대 선임하사였습니다.고립된 아군 27명을 포위망을 뚫고 들어가 구해 나온 일로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청와대로 가 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제 고향이 안동군 용산면인데요,거기서도 저를 위해 굉장한 환영행사를 베풀어 주었습니다.고등학교 졸업후 입대하기 전까지 저는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습니다.』 이 사람은 직업군인이다.직업이라는 것은 첫째로 자신과 가족을 먹여 살리는 소득의 원천이다.둘째로 그 소득에 대한 대가로 자신의 전문 분야에 제공하는 봉사다.그가 말하는 2중 봉급이란 본봉에 추가해서받았던 전투수당을 의미한다.이 사람은 월남전에서의 특공대 전투를 농사 짓는 마음으로 그저 충직하게만 수행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에게 있어서 전쟁영웅이란 것이 농사꾼과 같은 것일 수도 있다.그가 지닌 산촌 사람 얼굴이야 말로 안케 전투때 지녔을 전쟁 영웅의 얼굴과 같은 것이란 말인가.이런 생각을 하면서 도대체 부대 주임 원사가 하는 일은 무엇이냐고 물어 보았다. 『한 마디로 우리 부대 모든 사병의 어머니 노릇입니다.지휘관과 사병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합니다.지휘관은 아버지 역할을하지요.군대 안에서도 생활이 있습니다.훈련이나 전투 속에서도 사람에게는 따뜻한 생활이 필요합니다.오늘도 우리 사병들은 모두교육 훈련에 나가 있습니다.저를 비롯한 하사관들은 이 사람들이교육에서 막사로 돌아오면 따뜻하게 쉴 수 있게 필요한 준비를 합니다.그들의 생활을 돌보고 부대의 살림을 꾸려나가지요.훈련장에도 따라 나가 거기서도 어머니 노릇을 합니다.이런 역할을 맡아서 하고 있는 하사관들을 지휘하는 것도 주임 원사가 하는 일입니다.』 金원사는 1년 동안의 월남전 복무를 마치고 곧바로 승리부대에 부임했다.그가 이 부대에서 근무한지 올해로 스물 두해째다.사병들에게는 어머니 노릇을 하지만 다른 하사관들에겐 아무래도 시어머니 노릇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이 사람에게 는어머니 노릇도,시어머니 노릇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전투를농사짓듯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일단 들게 되니까 이 사람은 무엇을 하든,또 남이 옆에서 볼 때는 얼마나 덜 세련되어 보이든농사짓는 식으로 그저 척척 해낼 수 있어 왔을 것이라는 생각이든다.사병은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국토방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징집된 非직업 군인이다.지금 육군에서 사병의 복무 기간은 26개월이다.제대하기 전에 병장 계급장까지 단다.이들은 제대 날짜 를 손 꼽아 하루하루 세어 가면서군대 생활을 하는 젊은이들이다.金원사는 이들이 겨우 군인 노릇을 할만하게 훈련시켜 키워 놓으면 제대하고 만다고 아쉬워한다.
***정년까지 붙박이 사병은 쉴새없이 흘러서 바뀌는 하나의 강물줄기 같은 것이라고 볼수 있겠다.역설적으로 말하면 군인 노릇을 할만하게 훈련시켜 놓자마자 제대하는 것,제대 날짜를 본인들이 손 꼽아 기다리며 병영 생활을 한다는 것이 조금도 전력을약화시키 지 않고 오히려 강화시킬 것이다.그들의 힘은 고여 있는 힘이 아니라 국민적으로 흐르는 힘이다.이 힘은 흐르는 것이기 때문에 징병 대상이 되는 이 나라 모든 젊은이가 차례 차례참가할 수 있는 힘이다.
군대에서 자주 바뀌는 부류는 사병 말고도 또 하나 있다.다름아닌 장교다.사병들은 제대하기 때문에 바뀌고 장교들은 전근하기때문에 바뀐다.군대의 어머니라는 직업 하사관만이 오직 그 부대의 영구적인 붙박이다.이 점에서도 하사관은 가 정으로 치면 주부 비슷하다.살림을 할 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전력(戰力)유지를위한 링커 노릇을 해내야 한다.겉으로 나타나는 인상과는 아주 다르다고 보이는 것이 있다.김순석 원사가「부대의 주인은 하사관이다」는 표어를 실천하는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는 이 운동에서도 실제적이고 소박하다.그리고 무엇보다 진정으로 솔선수범하는 사람이다.
『부대의 살림도구가 고장나면 하사관들이 스스로 고칠수 있도록하나씩 배워나가야 합니다.예를 들면 한겨울 밤중에 갑자기 내무반 난로가 고장났을때 공병이 오기까지 기다리다가는 어떻게 됩니까.물론 사병들 가운데는 사회에서 별 별 재주를 가지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습니다.그러나 너무 이점에 기대고만 있다가 마침 그런 재주가진 사람이 없는 경우에는 야단나지요.저는 좀 늦었습니다만 작년에 1급보일러기사 자격증을 따냈습니다.』 뿐만 아니다.그는 우리나라 육군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오뚝이난로」라고 부르는 석유난로에 자기가 고안해 만든 송풍기를 따로 부착시켜 연소 효율을 배증시켜 놓았다.이 송풍기는 지금 승리부대뿐만 아니라 전 육군에 확산되고 있다 .
『오뚝이 난로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날씨가 그다지 춥지 않으면 난로 한 대에 하루 4ℓ,혹한기에는 7ℓ의 기름이지급되는데 이 난로로는 이 분량을 다 때더라도 난방 효과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 있지요.
또 한가지는 이틀에 한번 꼴로 연통 소제를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온 내무반이 그을음 투성이가 되고 청소하는 사병들은 그것을 들이 마시게 됩니다.그런데 이 송풍기를 부착하니까 겨우내 연통 청소를 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그만큼 연 소가 충실해지므로 기름을 조금 공급해도 방 안은 더 따뜻해졌고요.』 ***이젠 제2의 고향 우리나라에서 지금 가장 구석진 산촌을 꼽으라면 그것은 휴전선 근방일 것이다.김순석 원사는 이런 자기의 삶터를 『공기 좋지요,텃밭도 있지요,닭도 키우지요』라며 아예 오래 전부터 고향으로 삼아 버린듯 하염없이 칭송한다.같은 군인아파 트에 산다는 하사관 한 사람이 내 옆에 섰다가 『저 양반새벽마다 일찍 일어나서 아파트 주변 청소하는 바람에 우린들 늦잠자고 있을 수 있나요』라며 칭찬도 같고 불평도 같은 말을 속삭인다. 김순석 원사는 자기의 전 생애 굽이굽이를 「사나이로 태어 나서 할 일도 많다만/너와 나 나라지키는 영광」에 사는데바치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나는 그와 헤어지는 악수를 나누면서봄은 다가오고 있으나 아직 얼음으로 덮여 있는 이 산 촌과 그것을 배경으로 서 있는 그의 독특한 패션 스타일을 읽어 내고 있었다.이런 해빙기(解氷期)일수록 兵은 불상지기(不祥之器)가 아니다.평화의 영광스러운 주체(主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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