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흔들리는 마약類 모범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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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필로폰(속칭 히로뽕)을 투약한 20대 청년이 승용차를 몰아 정부종합청사에 돌진한 사건이 지난 16일 일어났다.기사가 되긴했으나 이 사건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여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대부분이 남의 일,어쩌다 생긴 일로 여겨 무심히 지나쳐버렸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만도 하다.공식통계상으로 보면 적어도 아직은 우리나라는 마약류 문제에 있어서는 모범국이다.미국 역대 대통령이취임때마다 한결같이「미국의 공적(公敵)1호는 약물남용」이라고 선언하고 있는데 비하면 우리 사회는 아직은 행복 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냥 이렇게 낙관해도 좋은 것인가.마약류 문제가 일부불량청소년이나 퇴폐적인 연예인등에 국한된 문제이기만 한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본드.부탄가스등의 흡입으로 인한 환각범죄는 폭발적인 증가세에 있다.91년에만 해도 단속된 건수가 1천3백78건이던 것이 93년엔 그 2.4배에 달하는 3천2백82건으로 늘어났다.천연마약사범 적발건수도 90년 1천 2백15건이던 것이 93년엔 2.8배인 3천3백64건으로 폭증했다.본드.부탄가스등의 흡입→대마초→대체마약→필로폰→천연마약등으로 발전하게 마련인 점과 각종 마약류 사용의 폭증추세에 비춰 우리 사회는 이미 위험수위에 도달해 있다.
더구나 우리 사회는 약물중독이 다른 선진국들처럼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는 조건들을 고루 갖추고 있다.극심한 경쟁풍토,소득수준의 향상,소비및 향락풍조,빈부격차,정부나 국민의 마약류 문제에 대한 낙관적인 생각등이 그것이다.이런 상태가 지속되는 한 「아직은 모범국」이란 자부심이 깨어질 날도 멀지 않다.
마약이 사회적 중대문제가 될 요인은 고루 갖췄으면서도 「아직은 모범국」인 이 요행을 계속 지켜야 한다.그러자면 정부는 처벌이 유일한 대책인 현재의 정책을 치료와 사후관리 위주로 바꾸어야 한다.중.고교생의 3%가 본드등의 흡입경험이 있음을 볼때가정에서도「과연 내 아이는…」하는 경각심이 필요하다.무관심이나경시(輕視)풍조야말로 공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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