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교체기 … 공무원은 ‘영혼교체’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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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사정위원회는 18일 위원회 휴게실 입구에 ‘기자실’ 문패를 슬그머니 내걸었다. 지난해 10월 서슬 퍼렇던 기자실 통폐합 강행 조치에 따라 기자실 간판을 내린 지 석 달 만이다. 그동안 이 공간은 휴게실로 이용됐다. 새 정부 출범에 앞서 외교부와 국방부가 기자실에 대한 기자들의 출입을 사실상 허용하는 것을 보고 재빠르게 기자실을 복원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이 다가오면서 공무원들의 ‘변신’ 몸부림이 도를 더해 가고 있다. 인수위 관계자는 “정말 영혼 없는 공무원이 많은 모양”이라며 “노 정권에서 많을 것을 누리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과거를 부인하는 공무원을 보면 안쓰럽기까지 하다”고 혀를 찼다.

 ◇“나는 원래 대입 자율주의자”=노동부의 한 고위 간부는 최근 몇몇 기자들에게 저녁식사를 함께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2003년 현 정부 출범 당시 인수위에 들어간 뒤 출세가도를 달려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기자실 문제가 불거졌을 때는 기자들과 개인적으로 만나는 일을 꺼렸다. 그랬던 그가 이날 “나는 원래 고용을 중시해 왔고, 앞으로도 고용 분야를 강화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해 참석자들을 당황케 했다.

 교육부의 한 간부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구성된 이후 기자를 만나 “나는 진작부터 대입 자율주의자였다”며 “부 내에서도 다 안다”고 말했다. 그는 말을 빙빙 돌려가며 자신이 깨끗한 공무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에서 교육부 요직을 거친 인물로 대학규제 정책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했던 인물이다.

 홍보 담당 공무원들의 변명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한 중앙부처 공보관은 “기자실 폐쇄는 내가 하고 싶어한 게 아니라는 걸 잘 알지 않느냐”며 연일 읍소작전을 벌이고 있다. 외교부의 한 국장은 브리핑에 앞서 “나는 원래부터 기자들과 친했다”며 뜬금없는 친분 공세를 펼치기도 했다.

 부처 자체가 자신들의 정책을 부인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이달 초 인수위에 “금산분리 완화에 대해 새 정부와 원칙적으로 의견을 같이한다”고 보고했다. 지난해 8월 취임한 뒤 줄곧 금산분리 원칙을 고수해온 현 위원장을 머쓱하게 만든 것이다. “국가채무가 적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는 입장을 견지해온 기획예산처도 이명박 당선인 임기 내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30% 이하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과잉 충성경쟁=행정자치부는 최근 새 정부 출범 후 매년 1%씩 국가공무원을 감축해 5년간 3만여 명의 공무원을 줄이는 방안을 만들었다가 인수위로부터 “오버하지 말라”는 핀잔을 들었다. 인수위 관계자는 “대대적인 정부조직 개편의 후속조치를 마련하는 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벌써부터 그런 계획을 세우는 게 말이 되느냐”며 “우리는 그런 보고를 받은 적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확실한 눈도장을 찍으려다 되레 싫은 소리만 들은 것이다.

 인수위에 파견됐던 문화부의 한 국장은 언론사 간부 성향 조사를 지시했다가 곧바로 복귀 조치를 당한 일도 있었다. 이후 인수위는 “문화부 국장의 개인적 아이디어였을 뿐”이라며 해명했다. 한성대 이창원(행정학과·한국조직학회장) 교수는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할 공무원들이 스스로 정치의 우산 속으로 들어가려는 행위는 국민 눈에는 양지만 좇는 모습으로 비칠 뿐”이라고 지적했다.

글=박신홍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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