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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IReport] 한국 ‘과기행정 업그레이드’ 일본서 배워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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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그대로 된다면 국가 과학기술행정체제와 국가 연구개발 시스템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국가 연구개발을 총괄하고 지난해 신성장동력의 불을 지피기 위해 연구개발 토털 로드맵까지 만들었던 과학기술부는 사라진다. 40년간의 독점적 과기행정, 3년간의 과기부총리와 과학기술혁신본부체제도 당연히 마감이다. 과학기술부는 교육분야와 산업분야로 분리, 흡수된다.

인수위 측에 따르면 우리 경제 시스템을 지식기반형 경제, 기술혁신형 경제로 탈바꿈하겠다는 이명박 당선인의 의지가 그대로 담겼다고 한다.

신체제에 대해 오피니언 리더들은 두 가지 점을 지적한다. 태생적으로 평등을 원칙으로 하는 교육행정과 수월성을 강조하는 과학행정의 동거, 과학연구와 기술연구의 행정적 분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정부조직은 통합되지만 연구기관, 대학 등 산하기관들에 대한 비전을 명확히 제시해야만 통합에 따른 혼란을 단기간에 최소화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일본의 과학기술 행정체제가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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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7년 전 불황의 긴 터널을 빠져나올 조짐을 보이자 행정개혁 차원에서 대대적인 과학기술 행정체제 개편을 실시했다. ‘새로운 창조와 성장’을 기치로 내걸며 과학기술창조입국을 국가 목표로 세웠다.

대학과 연구기관·산업계·지방·나라가 각각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일체가 되어 이노베이션을 창출하고 촉진하는 환경을 만들고, 그러기 위해선 세계를 리드하는 우수한 인재양성·확보가 급선무라는 인식에서다.
 
이를 위해 국가 연구개발 사업을 주도해 온 과학기술청을 문부성에 흡수시켰고, 통산성을 경제산업성으로 확대 개편했다. 대다수의 연구기관을 독립행정기관으로 떼어내 연구기관 간 경쟁체제를 갖추게 했다.
 
이에 따라 어렵지 않게 역할 분담이 이뤄져 문부과학성은 기초연구와 빅사이언스를 책임지고, 경제산업성은 산업기술연구를 총괄하게 됐다.

문부과학성으로 간 연구소들은 우주, 해양지구, 남극탐사,차세대 수퍼 컴퓨터, 원자력 등 국가가 맡아야 할 이른바 빅사이언스 연구를 전담한다. 또 이화학연구소 같은 대형 종합연구소들은 생명과학, 정보통신, 나노테크 등 기초연구를 선도하고 있다. 이들 고유사업을 제외한 연구에 대한 예산 배분과 평가 및 관리는 독립행정법인인 과학기술진흥기구(JST)가 도맡고 있다.

경제산업성은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16개의 공업시험원 산하 연구소들을 통합한 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가 산업기술연구를 이끌고 있다. 일본 최대의 연구개발 집단이다. 경제산업성의 대외 연구개발 프로젝트 관리는 신에너지·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NEDO)가 맡고 있다. NEDO는 특히 산학연구와 산업현장 인력 양성에 힘을 쏟는다. 3조 엔이 넘는 정부 연구개발 예산은 이 같은 양극체제 아래 집행된다. 이것이 일본형 인재-과학-지식산업 창출의 연결고리 핵심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국가 연구개발사업을 큰 눈으로 보고 실천력을 높여주는 일본 특유의 또 다른 시스템이 있다는 것이다.

총리가 매월 1회 주재하는 종합과학기술회의와 이 회의를 주관하기 위해 설치한 과학기술정책 담당 장관이 그것이다. 종합과학기술회의는 총리를 비롯해 문부과학상·경제산업상·총무상·재무상과 사안에 따라 참석하는 일부 장관급이 멤버고 민간에선 4~5명이 참석하는데 민간 쪽이 40%를 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게 특이하다. 민간의 목소리를 많이 듣겠다는 의미다. 종과회에선 국가 과학기술에 관한 종합전략인 ‘과학기술기본계획’을 짜는데 현재 25조 엔이 투입되는 제3기 기본계획(2006~2010년)이 진행 중이다. 이 회의에선 주요 정책에 대한 예산과 인력 배분 등에 관한 결정도 한다.

과학기술정책 담당 장관은 정책총괄 담당을 두어 종과회를 지원하는 동시에 부처별 조정에도 관여한다. 70여 명의 공무원과 전문가들로 구성된 큰 조직을 거느리고 있다. 한국의 과학기술혁신본부와 같은 형태이나 파워가 훨씬 크다.
 
종합과학기술회의는 이런 점에서 일본 과학기술행정의 사령탑인 셈이다. 일본 경제정책은 행정개혁 이후 종과회와 함께 총리실 내에 설치된 ‘경제재정자문위’가 주도하고 있는데 이 경제재정자문위와 종과위가 서로 거시경제와 미시경제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이렇게 치밀한 행정체제를 갖추고 있지만 그래도 불합리한 중복과 과도한 집중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일본 정부는 올해부터 정부공통연구개발관리시스템(e-Rad)을 문부과학성 산하에 설치, 운영하고 있다. 이는 5년 전 총리실이 한시적으로 만든 IT전략본부가 추진하는 전자정부(e-재팬) 전략의 일환으로 창안된 것이다. 일본 정부는 향후 정부 전체의 업무·시스템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는 생각이다.
 
17일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는 국회에서 한 새해 시정연설에서 활력 있는 경제사회 구축을 강조하며 기술혁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오타 히로코 경제재정상은 “이제 일본은 ‘경제 일류’라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 “10년 뒤를 생각하며 성장력 강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기술 창조입국을 국가 목표로 잡은 일본이 다시 한번 세계를 향해 도전을 선언한 것이다.
 
2월 25일 출범하는 새 정부에 주는 메시지가 크다.

곽재원 경제연구소장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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