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가 지켜야 할 최후의 매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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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호 36면

크리스마스이브에 남친에게 실연당해 보이는 게 없었던 삼순이도, 남장을 한 탓에 어쩔 수 없이 드나들었던 고은찬도, 판촉의 목적으로 화장지를 들이밀며 “고객님, 힘내세요”라고 외칠 필요도 없는 평범한 여자들은 남자 화장실에서 벌어지는 풍경이 어떤지 잘 모른다. 물론 ‘남성용’ 변기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안다. 그래서 볼일을 본 후, 다음 사람을 위해 꼭 물을 내리는 게 상식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 외에는 정말 모르기 때문에(몰라도 되는 것 말고) ‘신사의 매너’라는 점에 입각해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남자들은 볼일을 보고 변기를 마주한 상태에서 바지 지퍼를 완전히 올리지 못할까? 바지에 붙은 지퍼가 ‘머~리 어깨 무릎 발’까지 이어질 만큼 길거나, 잠금장치가 정교해서 고도의 숙련된 집중력과 시간을 요하는 것도 아닌데 왜 꼭 지퍼를 올리면서 몸을 돌릴까? 문이나 가리개 없이 오픈된 화장실인 경우, 바지 지퍼에 손이 가 있는 남자를 보는 일은 정말 민망하다. 생전 다시 볼 일 없는 남자라면 ‘그러려니’ 눈살 찌푸리며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빈번히 얼굴 부딪치며 인사해야 하는 사내 인물이라면 곤란할 따름이다. 더 심한 건, 뭐가 그리 바쁜 건지 지퍼를 올리면서 화장실을 나서는 모습이다. 그런 남자라면 최고급 캐시미어 수트에 에르메스 넥타이를 맸다 한들 신사로 보이겠는가. 그는 그냥 볼썽사나운 ‘아저씨’일 뿐이다.

두 번째 의문점을 얘기하자면, 화장실을 다녀온 남자들의 손이 너무 보송보송하다. 즉, 손을 씻었다는 정황이 느껴질 만한 촉촉함이 보이지 않는다. 티슈 타월로 물방울 하나 남김없이 꼼꼼하게 물기를 닦았다면 OK.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상상하기 싫다. 이쯤에서 당부하고 싶은 점 하나 언급하자면, 손을 씻을 때 개수대 수도꼭지의 물방울이 수트에 튀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 이 역시 쓸데없는 상상이 나래를 펴기 때문이다.

마지막 이야기는 의문점인 동시에 답이 필요 없는 부탁의 말이다. 고급 호텔이나 번듯한 빌딩에서는 절대 벌어지지 않을 상황이지만, 시내 곳곳에서 충분히 마주칠 수 있는 경우라서 꼭 짚고 넘어가련다. 술집이나 레스토랑 등등의 장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녀 공용화장실 말이다. 좌식 변기 하나뿐인 화장실이라면 당연히 사용 후, 변기의 중간 뚜껑을 덮어주고 나오는 게 센스 있는 남자의 매너다.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이 남자라도, 속치마까지 걷힌 변기의 모습은 아름답지 못하다.

여자들을 위한 공간이 따로 있는 경우라면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주기 바란다. 노크까지 해서 안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라고까지는 말 못하겠다. 하지만 여자가 그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그녀가 나올 때까지 화장실 문 밖에서 기다려주는 게 예의다. 왜? 찰나이지만 그녀가 화장실 밖으로 나올 때까지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혹시 아는 사람?’이라고 마음 졸일 긴장감과 쑥스러움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의란 게 어느 한쪽의 의무만은 아니다. 그래서 여자 화장실에서 비롯돼 남자들의 눈에 목격되는 꼴사나운 풍경도 분명 있을 터. 이번 기회에는 여성이 바라는 남자의 화장실 매너를 말하는 것뿐이니 분기탱천하지 말기 바란다. 그리고 해우소(解憂所) 앞에서 까탈 부리는 여자들의 이런저런 상상력을 ‘변태성향의 오버’라고 곡해하지도 말기를…. 사진 중앙 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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