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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북카페] ‘수컷사냥’ 보바리 부인의 DNA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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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보바리의 남자 오셀로의 여자

데이비드 바래시·나넬 바래시 지음
박중서 옮김, 사이언스 북스
456쪽, 1만8000원

 “『오셀로』는 성적 질투에 사로잡힌 수컷에 대한 이야기다.”

 이쯤 하면 지은이들은 공격받을 각오를 단단히 하고 쓴 것이 틀림없다. 학창시절 배운 소설 읽기의 다양한 방법에 아예 반기부터 들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들이 내세우고 있는 무기는 ‘인간의 본성’이다. 학습과 문화가 아무리 중요해도 ‘호모 사피엔스’의 본성이 놀라울 정도로 더 보편적이라는 것이다. 동물학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워싱턴대에서 진화심리학 강의를 하고 있는 데이비드 바래시, 그리고 그의 딸이자 생물학과 문학을 전공한 나넬의 주장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진화론자의 연구실로 들어간 문학 작품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지 싶다. 고대 그리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오디세이』, 14세기 영국 초서의 『켄터베리 이야기』, 20세기 헬렌 필딩의 『브리짓 존스의 일기』나 마찬가지다. 그들의 렌즈를 통해 관찰하면 인간은 긴팔원숭이와 고릴라 사이에 위치한 영장류의 한 종에 불과하다. 일부일처제를 따르도록 사회의 규제를 받고 있다고 해도 가장 정조가 굳은 남성의 몸 속에는 열혈 엽색가의 성향이 숨어있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는 ‘딱 걸렸다’는 표현이 맞다.

 오셀로는 베네치아에 위치한 군부대의 사령관이다. 부관 이아고의 술책에 걸려든 오셀로는 젊고 아름다운 부인 데스데모나가 바람을 피운다고 굳게 믿고 질투에 사로잡혀 아내를 죽이고 자살해버린다. 미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오셀로』가 “즉결 재판소에나 어울릴 법한 윤리관과, 진부하기 짝이 없는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고 폄하했다. 그러나 이 책은 버나드 쇼야 말로 수컷 대 수컷의 성적 경쟁에 대해 무지한 인물이라고 받아친다.

 이 연구실에서 열렬한 찬사를 얻은 작가는 제인 오스틴이다. “뛰어난 진화심리학자이자, D H 로렌스보다 훨씬 더 섹시한 작품을 쓴 작가”라고 추켜세웠다. 성선택(‘암수 짝짓기’) 과정에서 칼자루를 쥔 여성의 심리를 기가 막히게 포착했다는 평가다. 돈과 사회적 명성, 좋은 유전자, 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하겠다는 보장을 좇는 여성의 욕망은 시대를 불문하고 ‘번식에 유리한 자원’을 찾는 암컷의 영역으로 분류된다.

 이렇게 보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레트 버틀러도 질투를 못이긴 불안한 수컷에 불과했다. 『보바리 부인』에서 유부녀인 주인공이 애인을 여럿 둔 이유는 그녀의 난소가 좀더 강한 정자를 찾기 위해 활발하게 활동했기 때문일 수 있다.

 『대부』는 유전자들끼리 서로 돌보는 이야기다. 부모·자식 간의 갈등도 놀라울 게 없다. 부모의 유전자 가운데 절반은 결코 부모와 자식간에 공유되지 않기 때문이고, “공유되지 않은 유전자는 상충되는 원칙과 노골적인 갈등을 낳게 마련”이란다.

 남녀·가족 관계 등 인간의 사회적 행위를 종족 번식과 적자생존을 추구하는 진화론의 틀에 맞춰 이해하려는 작업은 이미 많았다. 그래서 다 아는 얘기처럼 여겨질 정도다. 문제는 생물학의 잣대를 문학 작품들에 노골적으로, 거칠게 들이댔다는 것이다. ‘다윈주의 문학평론’이란다. DNA의 이중나선으로 얽혀있는 인간을 이해하고 문학 감상의 폭을 제발 넓혀보라고 간청까지 한다.

 그런데 다 읽고 책장을 덮는 기분이 석연치 못하다. 감동의 추억으로 간직해온 셰익스피어와 오스틴의 작품을 ‘동물의 왕국’ 버전으로 다시 읽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다행히 지은이들은 인간이 ‘동물, 그 이상(플러스 알파)’이라는 점은 인정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책을 읽고서 문득 그리워지는 것은 동물 아닌, 그 ‘플러스 알파’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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