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호원정기>4.뉴기니 칼스텐츠峰 上.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마운틴 쿡 등반을 마친 우리 원정대의 다음 목표는 만년설에 덮여 열대림속에 우뚝 솟아있는 뉴기니의 칼스텐츠(4천8백84m)를 오르는 것이었다.
지난해 10월25일 인도네시아 발리를 거쳐 뉴기니의 가장 큰도시 자야푸라에 도착했다.비행기 트랩을 내리자마자 섭씨 35도나 되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우리는 칼스텐츠 등반을 위해 이미 3개월 전부터 인도네시아 정부에 입산 허가신청을 냈다.칼스텐츠 주변은 軍작전 지역으로 군과 경찰로부터 까다로운 입산절차를 받아야 했다.이곳은 인도네시아 정부와 원주민과의 마찰이 잦아 정부에서 군대 를 파견해 통제하고 있었다.
29일 비행기를 타고 「와메나」분지로 날아갔다.이곳을 거쳐 칼스텐츠를 등정할 때 베이스캠프 역할을 할 「일리가」마을까지 비행기로 가야 한다.
우리는 와메나에서 일리가行 전세비행기를 신청했다.그러나 떠나기로 했던 예정일 하루전에 느닷없이 비행기를 이용할 수 없다는연락이 왔다.우리가 타려고 했던 비행기가 정글속에 추락했다는 것이다.와메나에서 일리가까지 걸어가려면 10일 정도 정글을 헤쳐가야 한다.그러나 우리는 아직 남아있는 등반계획 때문에 도보로 갈 수는 없었다.
결국 자야푸라로 다시 돌아가 일리가行 비행기가 있는 「나빌레」로 가야 했다.11월9일 우여곡절 끝에 3천달러에 전세비행기를 빌렸다.비행기 속에서 바라다본 칼스텐츠는 장관이었다.이렇게더운 적도에 어떻게 만년설이 있을 수 있을까.경 이로웠다.
1시간 정도 지나 비행기는 일리가의 경사진 언덕에 내려 앉았다. 일리가는 해발 2천3백m쯤에 있는 분지.정글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비행기만이 유일한 교통수단이다.원주민들은 이곳에서고구마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일리가는 자연 그대로였다.아마도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은 것이 주요한 원인일 것이다.원주민들의 튼튼한 다리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일리가를 떠나면 칼스텐츠 정상까지 6일간 정글을 뚫고 걸어가야 한다.포터 35명을 고용했다.포터들이 지는 짐 무게는 15㎏.네팔에서는 포터들이 30㎏의 짐을 지는데 이곳 포터들은 너무 적게 메는 것 같다.우리가 오히려 포터들이 먹을 식량 일부를 짊어져야 했다.
주식량은 고구마.원정대와 포터 35명이 먹을 고구마를 모아야하는데 예상과는 달리 쉽지 않았다.칼스텐츠는 바로 앞에서 우리를 보고 빨리 오라며 손짓하고 있는데 고구마 때문에 지체해야 한다니….
원주민들은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 텐트를 들여다보면서 재미있어 했다.이들은 특히 우리가 고구마를 잘 먹는 것을 보고는무척이나 신기해 했다.포터들과는 영어는 물론 인도네시아語도 통하지 않았다.
손짓 발짓과 그림을 그려서 의사소통을 해야 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석기시대의 순수성 그대로 살아가는 원주민들에게는 굳이 말이 필요하지 않은 모양이다.환하게 웃는 그 모습을 보면 문명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