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엔 찬밥신세 고유명절 대보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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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국적 불명의 명절 아닌 명절「밸런타인데이」가 고유명절인 대보름을 밀어내는가.
밸런타인데이와 대보름이 겹친 14일을 앞두고 선물판매점.백화점등엔 초콜릿이 불티나듯 팔리고 은반지.무선호출기는 물론 20만~30만원대의 패션시계등 고가선물을 구입하려는 청소년들로 발디딜 틈이 없지만 보름 음식상을 준비하기 위해 재 래시장을 찾는 주부들의 발길은 예년보다 크게 줄었다.
밸런타인데이는 1천5백여년전 로마에서 순교한 성자(聖者) 밸런타인을 기리는 이탈리아의 종교 기념일.일본 초콜릿회사들이 장사속에서 남녀간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로 변형시킨 것이 몇해 전부터 국내에 전파돼「이상한 축제일」이 생겨났다.
신촌 그레이스백화점은 밸런타인데이 대목을 노려 지하에 임시 초콜렛 매장을 개설,1만원 이상하는 수입 초콜릿을 전시하고 있고 롯데백화점도 지하식품매장에 플래카드까지 내걸고 청소년들의 들뜬 심리를 부추기고 있다.
팬시점등은 또 재생 불가능한 화려한 포장지등으로 과대포장해 쓰레기종량제를 정착시키려는 사회적인 노력에도 역행하지만 청소년들은 또래끼리의 잔치분위기가 즐겁기만한 분위기다.
I대생 金모(21)양은『밸런타인데이인 14일이 대보름이라는 사실을 TV뉴스를 통해 알게됐다』고 말했다.
많은 젊은이들은 金양처럼 밸런타인데이는 알아도 대보름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이에따라 대보름을 명절로 여기는 부모세대와 문화 단절현상도 나타나고 있다.이같은 분위기에서 재래시장.슈퍼.
할인매장등은 대보름 특수가 예년같지 않아 울상이다 .
서울경동시장운영회 직원 金성호(39)씨는『보름이 다가왔는데도땅콩.호두등 부럼 매상이 늘지 않는다』며『그나마 40대이상 주부들만 얼굴을 비칠뿐 젊은 주부들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목동아파트 13단지 제과점 주인 P씨(24.여)는『밸런타인데이가 가까워오면서 선물용 초콜릿을 구입하려는 동네주부들의 전화문의가 하루 4~5통 이상 걸려온다』며『젊은 주부들은 대보름날남편에게 오곡밥을 지어주기 보다는 초콜릿을 선물 하길 더 원하는 것같다』고 말했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라는 말은 젊은 세대에겐 더이상 먹히지 않는 기성세대의 넋두리가 돼버리는 것일까.
〈表載容.張世政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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