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워치] 한·중 원조 논쟁 … “민족 감정 버려야 풀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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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중 전통문화 ‘원조(元祖)’ 논쟁이 한창이다. 단오와 한의학은 물론 한자와 신화에 이르기까지 전통문화 각 분야에서 한·중 간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누가 먼저냐’는 원조 논쟁의 성격을 띤다. 건설적 학술 논쟁이야 문제될 것 없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걸러지지 않은 네티즌들의 과도한 민족주의 정서가 개입되며 감정싸움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원조 논쟁의 실태와 그 해결책을 모색해 본다.

‘가장 싫어하는 드라마 조사에서 대장금이 선두를 달린다’. 8일 중국청년보의 보도다. 13억 중국을 열광시켰던 대장금이 어떻게 이런 수모를 당하고 있을까. 2년 전만 해도 주인공 이영애의 이름을 딴 학교가 세워지던 중국에서 말이다.

 한·중 전통문화 논쟁의 유탄을 맞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장금에 나오는 한의(韓醫)가 중의(中醫)의 원조처럼 비춰질 수 있다는 우려가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 팽배한 까닭이다.

지난해 말 중국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가장 싫어하는 국가로 한국이 첫손가락에 꼽힌 것도 중국에 이는 ‘혐한류(嫌韓流)’ 바람과 무관치 않다. 한국도 상황은 비슷하다. 한 언론의 조사 결과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2005년 65.3%에서 3년 연속 떨어져 지난해엔 44%에 그쳤다.

 ◆논쟁의 배경=197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79년 북한은 주체사상 확립을 위해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강조한 조선전사를 발행한다.

자극을 받은 중국은 80년대부터 대응연구에 착수한다. 2001년 북한이 고구려 벽화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신청하자 중국은 본격적인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시작한다. ‘고구려=중국’ 등식이 성립하는 연구다. 한국은 2003년 동북공정의 존재를 파악하면서 반발한다. 문화갈등의 1라운드는 ‘역사논쟁’이었다. 이것이 현재 한·중 전통문화 원조 논쟁의 커다란 배경이 되고 있다.

 ◆무엇이 논쟁에 올랐나=2005년 강릉단오제의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 등재는 본격적인 한·중 전통문화 논쟁의 2라운드를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일부 중국 언론은 한국이 중국 전통유산을 ‘강탈’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통문화의 중요성을 깨달은 중국은 올해 청명절·단오절·중추절을 공휴일로 선포했다.

 1년 후 한의·중의 논쟁이 벌어진다. 86년 ‘한(漢)의학’을 ‘한(韓)의학’으로 명칭을 개정한 한국은 2006년 9월 동의보감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신청을 고려한다. 중국 언론은 한국이 중의를 한의로 바꿔 세계무형유산에 등록하려 한다고 잘못 보도하고, 이를 계기로 한의·중의 원조 논쟁은 격화된다.

 신화도 원조 논쟁에 부닥쳤다. 지난해 8월 예수셴(葉舒憲) 중국신화학회 회장은 저서에서 “황제집단의 곰토템이 단군신화의 뿌리”라고 주장했다. 반면 11월 초 서울에서 열린 한 학술대회에서 정재서 이화여대 교수는 ‘중국 고대 지리서 산해경(山海經) 속의 염제(炎帝)와 치우(蚩尤) 등 동이(東夷)계 신들이 고구려 고분벽화에 빈번하게 나타나는 것은 한국신화가 중국신화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는 증거’라는 주장을 펼쳤다.

 ◆논쟁은 이렇게 비화된다=학술 논쟁은 양국 언론의 민족성향 보도와 네티즌들의 격렬한 반응이 더해지면서 감정적 원조 논쟁으로 비화된다. 한자 논쟁을 예로 보자. 지난해 10월 말 중국 촨메이(傳媒)대학에서 한·중·일·대만 전문가 70여 명이 참가한 국제한자회의가 열렸다.

한자 사용 국가 간의 자형(字形) 통일, 즉 표준화 문제가 논의됐다. 11월 3일 국내 한 신문이 이 소식을 전하며 중국어로도 번역해 인터넷에 올렸다. 이를 본 중국언론의 보도가 시작된다. ‘한자를 통일한다고? 정말 가소롭군.’ 한 중국 신문의 제목이다. 자형 통일에 왜 한국이 참견하느냐는 내용이다. ‘한국이 한자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하려 한다’는 중국 보도도 이어진다. 중국 네티즌들의 분노에 찬 댓글 ‘폭격’이 시작된다. 한국 언론도 대응한다. ‘한국의 한자 세계유산 신청설에 중국 네티즌 발끈’이란 통신 기사가 포털에 실린다. 한국 네티즌 역시 험악한 댓글로 ‘화답’한다.

 ◆논쟁이 악화되는 배경은 무언가=한·중 양국의 강한 민족감정과 서로에 대한 의구심이 작용한다. 김광억 서울대 교수는 “민족주의를 고취시키는 양국 학자의 글쓰기와 언론의 선정적 보도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정재서 교수는 “중국은 주변 문화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부족해 주변 국가의 독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반면 덩치가 작은 한국은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위기 의식이 강하며, 이런 위기감이 곧잘 과잉 민족주의로 표출되곤 한다”고 말한다. 그는 “양국은 오랜 세월 문화를 공유했다. 그러나 ‘상상의 공동체’일 뿐인 근대 국민국가 개념이 등장하면서 문화에 속지주의와 국경이 생겨났고, 이에 따라 배타적 문화사관이 등장하면서 논쟁의 양상으로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소모적인 논쟁 종식 해결책은=김광억 교수는 “전문가들이 냉철하게 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상대 입장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구범진 서울대 교수는 “국가를 기반으로 하는 민족주의에서 벗어나지 않고선 해결하기 힘든 문제”라고 설명한다. 정재서 교수도 비슷하다. “근대 이후 등장한 국민국가 개념에서 탈피해야 한다. ‘동아시아 문화권’이란 개념을 만들어야 한다. 문화를 호혜적으로 봐야지, 배타적 시각으론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중국 언론도 해결책 찾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한자 논쟁이 한창일 때 환구시보(環球時報)는 ‘한국의 한자 세계유산 신청사건 조사:논쟁 제기자는 극소수’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일부 중국 매체의 보도가 사실과 달리 과장됐다고 지적하며 양국 국민이 관용과 자제로 민족주의 정서를 줄여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결국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조화를 찾는 화이부동(和而不同),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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