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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晩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조선조(朝鮮朝)중기에 대제학(大提學)을 지낸 양눌재(梁訥齋)는 당대의 제일가는 문장가였을 뿐만 아니라 정치.경제.군사등 여러 분야의 학문에 막힘이 없는 석학(碩學)이었다.그러나 그의손자인 양충의(梁忠義)는 어렸을 적부터 놀이에만 정신이 팔려 나이 40이 꽉 차도록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까막눈 신세였다.같은 또래의 친구들이 판서(判書)등 고위직에 오르는 것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낀 그는 뒤늦게 학문에 매달리기 시작했다.왼쪽주먹을 움켜쥐고 불철주야 학문에 몰두한 끝에 불과 몇년만에 그는 과거에 급제할 수 있었다.그때 그의 왼쪽 손바닥은 길게 자란 손톱에 깊게 패어 있었다고 전한다.그는 나중에 판서를 거쳐 좌찬성(左贊成)까지 지냈다.
평균수명이 50이 안되던 시절이니 그의 공부는 늦어도 한참 늦은 셈이다.더구나 나이들어 공부하는 것은 젊어서 공부하는 것보다 2배 이상의 정력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 정설이고 보면 손톱이 자라 손바닥이 파이는 것도 모르고 공 부에 매달렸다는 그의 일화도 과장은 아닌 것 같다.
학문으로 한평생을 보내겠다고 작심한 사람이 아니라면 대개는 학교를 졸업하면 공부는 끝났다고 생각한다.공부를 계속하고 싶은생각이 있다 하더라도 먹고 사는데 바빠 도무지 틈을 낼 수 없다고 변명하기도 한다.그러나 학문은 시작도 끝도 없을 뿐더러 시간이 없다는 것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이 경우에 아주 적합한명언이 있다.「배우고자 해도 틈이 없다는 사람은 틈이 있다 해도 배우지 못할 것」이라는 중국 전한(前漢)시대의 학자 회남자(淮南子)의 말이다.
어떤 분야에 종사하더라도 공부를 계속하지 않으면 머리에 녹이슬고 따라서 두뇌 회전이 제대로 되지 않아 제자리에서 맴돌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나이와 공부는 별개 문제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사회에서 왕성한 활동을 펴다가 대학에 학사편 입한 두 60대 인사의 경우는 대수로울 것이 못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경이(驚異)의 시선을 보내는 것은 그만큼 정규교육 이외의공부는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우리사회의 풍조를 반영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공부가 모자라 이런저런 잘못과 실패를 되풀이하는 정치인.경제인등 우리 지도층 인사들에게 그들의 만학(晩學)은 귀감(龜鑑)이 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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