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드는 섭섭함에 다부진 말대꾸 한 토막 얹으려는데 등을 돌린 채 한사코 시선을 맞추지 않는 이씨. 날이 저물어 사람들이 모두 떠나가는데도 일어설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그였다.
이 - 그러지 말고 조금만 더 수고 하십시다. 보름간 애썼는데 보시다시피 아직도 시커멓잖아요. 봉사자들이 계속 오고 있는데도 통솔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 우왕좌왕 하다가 가는 사람들도 많고 능률이 좀 떨어지는군요. 사실 이 시간에 자리를 뜨면 안 됩니다. 퍼져 있던 기름띠들이 뭍으로 올라오는 시간인데…. 이 시간을 놓치면 기껏 밀려온 기름띠들이 다시 썰물 따라 휩쓸려 갑니다. 기름띠가 밀려오는 시간을 놓치지 말고 집중적으로 달라붙어야 하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순간에 모두 가버리니 답답하군요.
이 -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들이 다녀간 곳은 피해지역의 일부일 뿐입니다. 아직도 방치된 채 사람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섬들이 수십 군데가 있어요. 자원봉사자들이 자갈을 파내면서 원유를 떠 담고 있는 상황인데 기름 제거 작업을 끝내라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기름띠가 사라진 것은 순수한 호전현상이 아닙니다. 방제당국에서 엄청난 양의 유화제를 뿌려댄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유화제는 기름 덩어리를 미세한 입자로 만들어버립니다. 이게 바다 밑으로 침전돼 돌아다니면 더 치명적일 수 있어요.
이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짓 밖에 더 됩니까. 유화 처리를 해버리면 육안으로 확인도 안 되고 흡착포를 사용할 수도 없어요. 양동이로 퍼 담던 어마어마한 기름 위로 유화제를 쏟아 붓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좀 더 많은 인력이 집중적으로 투입돼서 바다 오염과 유화제 남용을 최대한 막아야 해요. 잘잘못을 따질 사람들은 공정하고 치열하게 따지시고 자원봉사에 뜻이 있으신 분들은 최대한 능률적으로 움직여주셨음 합니다.
그리고 외국 전문가들의 쓸 만한 조언은 귀 담아 들어야 해요. 그들이 이곳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하니 정확한 진단 또한 어려울 것 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방제전문가들이니만큼 중요한 조언은 염두에 둬야죠. 갯벌을 밟는 것이 바다환경에 더욱 치명적이라고 한다면, 최대한 밟지 않고 기름을 걷어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알아보면 분명히 기름제거 도구 같은 것이 있을 텐데 당국의 대처가 아직도 미비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희망이 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을 좀 보세요. 한국 사람들의 투지와 인정은 참 못 말리겠습니다. 작업이 좀 더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네요.
이 - 자원봉사자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각자의 준비물을 잘 챙겨오는 것입니다. 동호회나 카페를 통해 움직이는 분들은 공지사항을 잘 숙지하시고 단독으로 움직이는 분들은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봉사를 할 것인지 사전에 잘 알아보고 준비물을 챙기세요. 작업의 진전에 따라서 바가지 양동이 호미 작업복 등등 준비물의 구성이 약간씩 다릅니다. 물품 준비가 완벽히 돼 있는 곳과 그렇지 못한 곳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알아보고 움직이면 쓸모없는 물자 낭비를 줄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작업장 내부를 통솔하는 인력이 좀 더 안정적으로 정비돼야 합니다.
일단 어른들이 해야 할 일과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해서 해야죠. 제가 보름간 작업해보니까 일하다가 목이 마르면 난감하거든요. 물통을 갖고 다녔었는데 고무장갑과 면장갑을 벗었다 꼈다 하려니 그게 너무 번거로웠어요. 그런데 그저께부터 초등학생 아이들이 생수병을 들고 다니면서 갈증 나는 사람들은 새끼 새처럼 입을 벌리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아이들이 계속 돌아다녀 주니까 일 하기가 훨씬 수월했어요. 기름 범벅된 고무장갑이며 마스크를 벗지 않아도 아이들이 목을 축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얼마나 능률적이에요? 쓰레기 분류 작업도 다시 쓸 수 있는 깨끗한 것들은 청소년들에게 시키고 무겁고 힘든 일은 어른들이 맡아야죠. 최전방 작업 전선에 투입할 인력에서부터 쓰레기 분류 수거를 할 만한 인력까지 자원봉사자들을 좀 더 효과적으로 배치해야 됩니다.
이 - 이 근처 여관 가보세요. 모두 텅텅 비었습니다. 기왕 돕는 거 일박 이일 정도로 해서 효율성을 좀 더 높였으면 좋겠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전에 왔다가 오후에 떠납니다. 환경단체 같은 곳에서 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 연속성이 없다 보면 늘 새롭게 오는 사람들이 늘 새롭게 헤맨다는 문제점이 발생합니다. 저녁 만조 시간은 여섯시 이후인데 겨울이라 해가 빨리 떨어지니 사람들의 발목을 붙들기가 힘듭니다. 이런 내용을 방송이나 언론에서 많이 좀 퍼뜨려 주세요. 60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가 태안을 다녀갔는데 그 엄청난 인력을 최대한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 중앙에서는 여러 단체의 움직임이 있고 방송언론의 참여도도 높은 편인데 지방 자치단체에서는 좀 소극적입니다. 자원봉사에 뜻이 있어도 차편이 마련되지 않아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오늘도 몇몇 단체에서 차량제공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의 신청이 물밀 듯 하는데도 차량제공이 되지 않아 일손들이 발만 구르고 있다니 참으로 답답한 일입니다. 서울에서 이곳까지 걸어서 온 사람은 아마 저 밖에 없을 걸요. (웃음)
이 사태를 태안의 일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우리 국토와 자연을 살리는 일이라 생각하고 다들 꾸준히 동참해 주셨으면 합니다. 기름 방제작업은 초기작업이 가장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기름의 휘발성 성분이 날아간 다음에는 그것이 바다 아래로 가라앉기 때문입니다. 기름이 땅 속에 스며들거나 썰물에 휩쓸려서 바다로 떠내려가면 치명적인 생태계 오염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바다가 아프면 인간도 어쩔 수 없이 같이 아파야 하는 이치인데도 남의 일인 양 딴청을 피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것이 가라앉아서 땅 속으로 스며들고 바다로 떠내려가기 전에 기름 제거 작업을 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만원씩 걷어서 빌린 차량으로 태안으로 향한다는데 그 모습들이 얼마나 대견합니까. 학생들에게 이는 참으로 큰 산교육이 될 것입니다. 성인들도 환경단체나 자원봉사 블로그를 통해서 함께 움직이면 일이만원 정도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힘을 모아서 태안을 살려봅시다.
객원기자 설은영 skrn77@joins.com
http://kfem.or.kr/ 환경운동연합 - 시민기자와 봉사자 모집
http://cafe.naver.com/greesea 태안반도 자원봉사 카페
http://www.taean.go.kr/ 태안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