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를향한무비워>17.밀라노 "필름마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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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해마다 10월 말이면 전세계의 영화 제작.배급사들이 이탈리아 밀라노로 몰려든다.
지난해의 경우 70개국 2백54개 배급사가 밀라노에 몰려 장사진을 이루며 일대 「전쟁」을 벌였다.일명 「총성없는 전쟁터」,이곳이 바로 6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밀라노 필름마켓의 현장이다. 상품이 소비자 손에 들어가기전에 시장을 거쳐야 하듯 영화가 제작돼 수많은 대중들에게 소개되기 위해 거쳐가는 관문이라 할 이곳에는 에로영화부터 액션.애니매이션,또 수백만불짜리 고가(高價) 영화까지 총망라돼 각국에서 몰려든 수입업자들 을 유혹(?)한다.
『우리가 필름마켓을 찾는 이유는 단순히 영화를 사기 위해서가아니라 기획단계에 놓여 있는 새영화를 찾기 위해서다.완제품이 선보이는 칸영화제까지 기다리다간 모두 팔려나가 어느 것 하나 손댈 수 없다.따라서 이곳에서 새영화를 준비하고 있는 제작자를만나야 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최고의 상품은 정보다.당장의 비즈니스 보다는기존 거래관계를 유지하고 새로운 업무관계를 형성하는게 무엇보다중요하다.』 이곳에서 만난 영화배급.수입업자들의 한결같은 대답에서 이들이 해마다 밀라노 필름마켓을 찾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세계 영화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한 미국영화의 강세는 밀라노 필름마켓에서도 마찬가지.지난해 이 행사에 참가한 2백54개 회사중 절반인 1백25개사가 미국의 배급사들이었으며 영국이 31개사,이탈리아가 29개사 순이었다.
밀라노 필름마켓측은 미국 회사들의 참가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홍보담당 로베르토 베졸리는 『이는 밀라노 마켓이 세계의 주요한 마케팅 행사임을 입증한다』며 『이제 영화산업은 침체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호언장담 했다.
이에따라 지난해에는 전시장 시설부지를 확장한 것은 물론 돌비스테레오 시설이 갖춰진 16개의 시사실등 크고 작은 27개의 시사실이 마련됐다.
이탈리아측은 지난 2년동안 필름마켓의 시설확장을 위해 무려 20억원이나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탈리아가 이같이 밀라노 필름마켓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은자국 영화산업의 활성화를 위한 돌파구를 찾기 위한 것이다.지난해 필름마켓에서는 이탈리아 대형 배급사인 사치스(SACIS)社의 새로운 사업전략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그동안 주로 예술영화제작에 주력해온 사치스社는 앞으로 상업영화등 다양한 부문의 영화로 범주를 늘리겠다고 밝힌 것이다.사치스社의 책임매니저는 『현재 이탈리아 영화산업은 재정문제로 생존의 몸부림을 쳐왔다』며 『앞으로 영화법 개정으로 국가지원이 늘어날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이 이탈리아 영화산업계의 위기의식은 생각보다 심각하다.이탈리아 영화진흥협회(ANICA)회장 카르미네 치안파라니는 『이탈리아에서 영화를 제작하는 것은 마치 기둥도 없이 지붕부터 집을 짓는 일과 같다.
재정부족등 어려움이 많다』며 『멀티미디어 메이저 회사에 이탈리아 회사가 끼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따라서 이탈리아 영상산업 종사자들은 현재 추진되고 있는 영화법 개정에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행사장에서 만난 한 소규모 영화제작자는 『많은 영화제작자들은영화법 개정으로 영상산업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며 『현재의 영화법은 해적판 비디오를 규제하고 있지 못하며 이탈리아 영화수출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다』고 개탄한다.
이탈리아 영화산업은 이제 기로에 놓여있다.이탈리아 영화제작자들은 필름마켓을 활용해 활로를 모색하고 있으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영화법 개정,외국회사들과의 발전적인 협조체제,디지털시대이후의 영상기술을 어떻게 개척해나가느냐에 따라 이탈리아의 영화산업은 과거의 명성을 되찾을 수도 끝내침몰할 수도 있는 것이다.
[밀라노=李殷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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