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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를 새 정부의 국가핵심전략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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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노무현 정부 5년간 추진한 여러 정책들이 존폐의 기로에 서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통상정책에 대한 논란은 없다. 외교통상부 관리들이 고민했을 법한 통상교섭조직의 분리 문제는 인수위의 관심사도 아니다. 김대중 정부 5년간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FTA) 딱 하나만을 타결시켰던 것에 비교하면 현 정부 5년 동안의 성과는 인상적이다. 미국·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과 각각 FTA를 타결했고 EU와의 협상도 상당한 궤도에 올려 놓았다. 중국과는 협상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공동연구작업이 막바지 단계에 와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들이 모두 참여하는 다자간 협상이 그 비대한 몸집을 가누지 못해 버둥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FTA 이외에 뾰족한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협상들을 새로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가 중단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새 정부에서 FTA는 국가핵심전략으로 그 위상을 더 높여야 마땅하다.

한국의 무역 의존도 75% 가운데 수입은 반 이상을 차지한다. 수입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미국이나 일본의 전체 무역 의존도보다 높다. 새 정부의 FTA 정책은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FTA 정책을 적극 추진하기는 했지만 해외시장 개척용으로 홍보했을 뿐 국가경쟁력의 핵심전략으로 자리 매김하지는 못했다. 분배편향 집권세력은 경제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정치 논리를 내세워 농업의 구조조정과 서비스산업의 규제 개혁을 방치하거나 지연시켰다. 선출된 서슬 퍼런 권력 앞에 관료들은 손쉬운 타협을 했다. 수출은 좋고 수입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관료사회에 팽배하다. 최상품질의 서비스와 제품을 국민에게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하는 행정부처가 생산자 이익보호에만 치중한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를 살리라는 국민적 여망 속에 탄생했다. 경제성장 잠재력이 4% 안팎인데 매년 7%의 성장률을 실현하겠다는 공약은 한국 경제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이지 않으면 공염불에 그칠 우려가 크다. 산업화 시대 한국의 고도성장이 ‘더 오래, 더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가능했다면, 지식정보사회에서 한국은 ‘더 현명하게, 더 창의적으로 일하는’ 것을 요구받고 있다. 최고의 소재, 최고의 품질, 최고의 인재, 최고의 기업을 한국 내에서 발굴해 키우겠다는 발상은 역사박물관에 보내야 한다. 세계 최고의 것들이 한국에 몰려들도록 세계를 향해 개방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FTA는 외국시장을 개방하는 것 못지않게 우리의 문을 더 열어젖히는 것이 중요하다. 수입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 걸맞은 대접을 받을 때 경제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비법의 문이 열릴 것이다. 오랜 세월의 풍상 속에 굳게 닫혔던 이 문을 열려면 경제 전반의 개방과 경쟁을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개혁 청사진을 제시하고, 정권의 명운을 걸고 개혁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생산자 이익에 포획된 국내 부처들이 제각기 따로 내는 목소리를 국익의 관점에서 조정하는 역할은 더욱 강화돼야 마땅하다. 인수위의 정부조직개편이 이러한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래야만 FTA는 수출 타령만 하지 않고 수입의 효율성을 증대시켜 경제선진화를 촉진하는 진정한 국가전략으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

◆약력=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예일대 경제학박사,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