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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제2부 불타는 땅 봄날의 달빛(15)어두컴컴한 지하실에도 밤이 왔다.작은 창으로 스며들던 빛마저 사라지고 나자,지하는 칠흑같은 어둠으로 빠져들어갔다.
맞은편 구석에서 종길이 쿨적쿨적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화순이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보소.』 사내가 코를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그만 좀 하슈.부모 상을 당했소,어린 자식을 앞세우길 했소.무슨 남자가 이만한 일에 눈물을 찔끔거리고 그러슈.』 쿨적거리던 소리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종길이 흐느끼는 소리가 이어졌다.
『조선놈 못나기는 나남이 없다니까.』 화순이 어둠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거야 밸이 있나 속이 있나.욱하고 일어서기라도 못할 바에는,죽으라면 죽는 시늉을 하며 기기라도 하든가.그도 못할 바에는 혀를 깨물고 죽기라도 하든가.중도 아니고 속도 아니니,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사람꼴은 꼴대로 대접을 못받고.
그러니까 북어하고 조선놈은 때려야 한다지.』 쿨적거리며 우는게 싫어서,종길의 화를 지르려고 일부러 한 소리였다.종길이 울먹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런 씨부랄 년.넌 뭐해 처먹던 년이여?』 『남이사.내가 뭐 틀린 말 했나?』 『그래.밸두 없구,속두 없구…혀 깨물고 죽지두 못허구 산다.그래서,우리 때문에 니가 속곳을 벗구 살었냐,아가리에 밥이 안 넘어가더냐,째진 주둥이라구 못허는 소리가없네.』 『못났으니 못났다는 거 아니오.내 말이 뭐 틀린 거 있답디까.조선 남자가 얼마요.그 떼거리가 얼만데 애매한 사람 붙들어다 반송장을 만들고 있는데도 왜 들고 일어나지도 못하느냐는 소리지.그게 틀린 말이오?』 『잘난 것덜 다 어디가서 혀가빠졌나 했더니 여기 있었구먼 그려.너도 터진 입으로 말은 잘헌다.』 화순이 어둠 속에서 슬며시 웃는다.울던 때와는 달리 종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다.길남이 말이 맞지,미워해야 한다고 했어.분노가 없어서는 못산다고 했어.
화순이 말했다.나직나직.
『내일은 차라리 거짓말이라도 하세요.그런다고 믿을 놈들도 아니지만,이놈이 더 불게 없어 아무렇게라도 줏어대는구나,그렇게는알 거 아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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