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배명복시시각각

국민을 섬기는 리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하지만 영국 신문 파이낸셜 타임스(FT)의 눈에는 여전히 미덥지 못한 모양이다. FT는 사르코지와 메르켈에게 보다 과감한 개혁을 촉구하는 것으로 새해 첫 사설의 포문을 열었다. 두 사람 다 개혁을 외치고 있고, 개혁을 통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정도로는 아직 멀었다는 것이다.  
 
‘늙은 병자’를 ‘멋진 청년’으로 바꿔놓은 영국 개혁의 첨병 역할을 해 온 FT가 보기에 가장 시급한 것은 네 가지다. 첫째, 노동시장 개혁이다. 쉽게 해고하고, 쉽게 채용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더 높이라는 것이다. 둘째, 정부 개혁. 정부 운영을 효율적으로 바꿔 공공 부문의 생산성을 높이라는 주문이다. 셋째는 규제 개혁. 기업 활동과 관련한 행정 절차를 대폭 간소화해 기업의 비용 부담을 덜어주라는 것이다. 마지막이 대학 개혁. 자율성을 높여 대학을 지식경제의 신형 엔진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요컨대 민간 부문이 마음껏 능력과 끼를 발산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는 것이 독일과 프랑스가 추진해야 할 개혁의 핵심 과제란 얘기다.
 
이명박 당선인은 지난해 6월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책에 추천사를 쓰면서 “모두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서로에게 힘을 실어주는 리더십이 해결책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힘이 난다”고 썼다. 평생을 리더십 연구에 바친 미국의 정치학자 겸 역사학자 제임스 맥그리거 번스 교수(윌리엄스대)가 쓴 『변혁적 리더십(Transforming Leadership)』(국내에선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으로 출간)을 그가 “마음에 와닿는 책”이라며 추천한 것이다. 집무실 서가에서 이 책을 뽑아 든 당선인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면서 화제가 된 책이기도 하다.
 
번스 교수는 변혁적 리더십의 요체는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의지에 불을 지피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세상을 변혁하는 잠재력은 대중의 행복 추구에 있으며, 대중 스스로 행복을 추구하는 데 필요한 능력의 고삐를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리더라는 것이다. 희망이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체념에서 벗어나 대중이 각자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를 창조하고 확장하는 것이 바로 리더의 역할이라는 얘기다.

힘을 실어준다는 것은 기를 살리고, 의욕을 북돋아주는 것이다. 근로자들에게는 근로 의욕을, 기업인들에게는 투자 의욕을, 또 학생들에게는 학업 의욕을 북돋아주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개혁도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볼 때 독일과 프랑스를 겨냥한 FT의 사설은 그대로 우리를 겨냥한 사설이기도 하다.  
 
리더의 역할은 사회가 활력을 되찾고, 역동적이 될 수 있도록 부추기고 바람을 잡는 것이어야 한다. 제멋대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감을 갖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밀어주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을 따라가야 한다. 나는 그들의 리더가 아닌가”라고 한 사람은 19세기 영국 총리였던 벤저민 디즈레일리였다. 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이끌고 싶다면 그들의 뒤를 따르라”고 했다.

번스 교수는 “변혁은 단칼에 역사를 만드는 위인의 과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국민의 집단적 성취에서 나온다”고 강조한다. 그래서일까. 당선인은 툭하면 ‘위대한 국민’을 내세우며 “국민을 섬기겠다”고 말한다. “주인이 되려면 머슴처럼 보이라”는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의 간계(奸計)를 체득한 결과인지, 아니면 “고귀한 노예의 신분이 바로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다”는 앤드루 잭슨(미 7대 대통령)의 체험적 성찰을 간파했기 때문인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