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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이명박 정부의 두 가지 고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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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새해 달력을 펼치다 보면 각별히 눈길이 가는 달이 있게 마련이다. 필자가 2008년 달력을 열면서 가장 먼저 넘겨 본 것은 4월과 11월의 달력이었다. 새롭게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의 앞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4월 9일의 총선과 11월 4일의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받은 지지를 어떻게 운용하는가 지켜보는 데 이 두 선거의 의미는 크다.
 
4월 총선에서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한나라당이 다수 의석을 얻을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관심을 갖고 지켜볼 것은 단순한 선거 결과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명박 정부가 총선 이후 더욱 커지게 될 국민의 신임을 21세기에 걸맞은 강하고 효율적인 정부의 실현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21세기의 민주화·세계화된 환경에서 ‘경제를 살리는 정부’는 군림하고 감독하고 명령하는 정부가 아니다. 첫째, 정부 스스로가 앞선 지식으로 무장하고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둘째, 기업과 노동세력이 더불어 일하는 관계를 만들어 가도록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셋째, 사회 집단들 사이의 게임의 규칙을 엄정하게 집행해야 한다.

아마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운동과 진보 시민단체, 노동단체가 전열을 정비하게 될 올봄이 이명박 정부의 능력을 검증하는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것이다. 봄의 길목에서 한·미 FTA 반대운동과 노동세력의 ‘춘투(春鬪)’가 합법과 비합법의 경계를 넘나들게 될 때, 새 정부는 실용보수의 본격적 딜레마와 마주하게 된다. 법 질서의 유지는 보수가 내세우는 강한 정부의 핵심 요소이지만, 법의 엄정한 집행만으로 복잡한 현실이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으로 노사 양측의 파울 플레이를 엄격히 제재하는 동시에 양쪽 선수들이 원활한 경기를 운영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미묘하고도 어려운 역할이 새 정부에 요구될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오직 이 두 역할의 능숙한 결합을 통해서만 새 정부는 ‘경제와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21세기 선진국가로 진입할 수 있다.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의 선봉에 서게 될 대기업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20세기의 정부가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직접 감독하고 주도하는 역할을 했다면, 21세기의 정부는 공연 매니저의 몫을 해야 한다. 21세기의 정부는 대기업과 노동세력 사이에 좋은 연주가 이뤄지도록 공연장 환경을 최적화하고, 더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바꿔 말해 며칠 전 새 당선인과 대기업 회장들의 만남에서 비쳤던 절제된 톤은 계속 유지돼야 한다.

새 정부에 중요한 두 번째 길목은 올 11월 4일로 예정된 미국 대통령 선거이다. ‘노무현-부시’ 대통령 조합이 숱한 마찰음을 내 온 데서 목격했듯 ‘이명박-미국 새 대통령’의 조합은 우리 대외정책의 성패를 가름할 것이다. 현재로서는 일방주의보다는 국제 공조를 전통으로 하는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 워싱턴에 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미국 외교의 안보 중심화 성향과 북핵 문제의 중층 구조를 생각한다면, 이명박-민주당 대통령 조합이 반드시 낙관적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힐러리든 오바마든 민주당 대통령은 한·미 간 공동 위협보다는 공동의 이익을 강조하고, 군사력과 소프트파워의 결합을 통한 한·미 동맹을 선호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북한 핵의 저지보다 월등히 어려운 북한 핵의 해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또한 전략적 유연성을 통해 한·미 동맹의 공간적 확대를 원하는 미국과 이에 대한 우리의 입장 차는 여전한 숙제이다. 결국 새 당선인의 현실주의적 접근에도 불구하고 각론으로 들어갈수록 한·미 간 입장 차는 분명 존재한다. 이 간격의 능란한 조율이 새 정부의 실용주의 외교의 최대 과제가 될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봄의 길목과 가을의 길목을 어떻게 넘는가에 따라 새 정부의 한 해가 좌우될 것이다.

장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약력=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미국 노스웨스턴대 정치학 박사, 중앙대 정외과 교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