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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朴, 35분 밀담 뒤 ‘웃으며’ 헤어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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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 03면

대통령직 인수위의 이경숙 위원장(가운데)과 김형오 부위원장(오른쪽), 백성운 행정실장(왼쪽) 등이 29일 밤 워크숍을 마치고 늦은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인수위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최정동 기자

29일 오후 3시 서울 통의동 이명박 당선자 집무실. 이 당선자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만난 지 약 6분이 흐른 순간이었다. 임태희 당선자 비서실장이 “저기하고 할까요. 그냥 하시겠어요?”라고 물었다. 기자들을 물리칠 거냐는 물음이었다. 박근혜 전 대표가 기자들 앞에서 말했다. “예. 그냥 먼저(말씀드릴게요).” 박 전 대표의 말이 이어졌다. 이 당선자를 향한 말이었다.

朴 전 대표, 취재진 앞에서 ‘정치 발전’ 등 3개항 요구 … 李 당선자 “내가 바라는 것과 똑같아”

“경제 반드시 살려주길 바라고. 또 하나는 그동안 많이 흔들렸던 나라 정체성을 바로잡아 주길 바라고요. 세 번째는 아까 말씀드렸듯이 그동안 정치 발전했지만 많은 관심을 갖고 많이 계속 발전해 나가도록 해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이 당선자가 대답했다. “예. 내가 바라는 것과 똑같습니다.”

이 당선자는 박 전 대표의 세 가지 주문에 대답했다. 이 당선자는 전날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찾아가 투자 확대를 요청한 사실과 당선 후 기자회견에서 국가 정체성을 분명히 얘기했던 사실을 거론했다. 그는 특히 “정치변화에 있어 박 전 대표가 지난번에 이미 시설을 잘 깔았고 그 점을 높이 평가한다. 나 혼자 하라고 하지 말고 (우리가) 사심없이 같이 하면…”이라고 협력을 당부했다. 박 전 대표는 이에 “그렇게 하면 훌륭한 대통령이 될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후 두 사람은 약 35분간 배석자 없이 비공개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박 전 대표가 굳이 기자들 앞에서 이 당선자에게 요청한 세 가지 중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정치 발전’이다. 용어는 원론적이지만, 내년 총선 공천 시기 연기와 물갈이 공천을 언급해 온 이 당선자 측에 대한 박 전 대표의 분명한 입장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전날 이방호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1월 말이나 2월부터 공천을 시작해도 심사엔 전혀 지장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정종복 1사무부총장도 “공천 시기가 늦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이 당선자는 27일 국회의원 및 당원협의회 위원장들 앞에서 “이제 한나라당은 정말 국민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국민을 향해 나아가는 것에는 어쩌면 개인의 희생이 좀 따른다”고 말했다. 한 의원은 “이 당선자가 말한 ‘희생’은 바로 대폭적인 물갈이를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는 이날 ‘정치발전’을 내세워 이 당선자 측의 총선 간여 가능성을 차단하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부총장 등 공천에 대해 언급할 위치에 있지 않은 인사들이 여러 이야기를 하는데 공천은 당헌·당규에 정해진 대로 하면 된다”며 “박 전 대표의 언급은 자신이 대표 시절 당 혁신위에서 57차례 회의를 거쳐 만든 당헌·당규를 무력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정치발전이 아니라 후퇴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당헌·당규는 대권·당권을 분리하고 있어 대통령 당선자 측이 총선 공천에 개입할 공간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 측근은 또 “인수위를 아무리 잘해도 공천을 잘못해 여소야대가 되면 어떡하느냐는 것이 박 전 대표의 걱정”이라고 전했다. 당선자 대변인인 주호영 의원은 “아주 유쾌하고 유익한 만남이라고 본다”며 “두분이 독대한 내용은 언론에 알릴 것이 없다고 해서 일체의 내용을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이 당선자는 회담 뒤 엘리베이터 앞까지 박 전 대표를 배웅했고, 두 사람은 ‘웃으며’ 헤어졌다.

이 당선자, ‘낮은 자세 인수위’ 강조

이 당선자는 이날 열린 인수위 첫 워크숍에서 ‘낮은 자세’를 거듭 강조했다. 특히 인수위 참여를 두고 벌어지는 경쟁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전문위원 발령에 대해 백성운 행정실장이 “일부는 오늘 오고 월요일에 전원 임명장을 수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하자 문제 제기를 시작했다. 이 당선자는 “그렇게 하면 자꾸 늦어지니까 인선은 오늘 중에 끝내야지. 인사가 늦어질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고 재차 물었다. 김형오 부위원장이 “엄선하느라 그랬다”고 답하자 이 당선자는 “각 부서에서 인수위 오길 경쟁적으로 얘기한다는데 위원이 돼서 도움되는 게 있나. 두어 달 고생만 하다가 가는데”라며 불편한 기색을 비쳤다. 뒤이어 인사말을 한 이경숙 인수위원장도 “인수위에서 일한다는 것이 출세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 개인 영달을 위한 자리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 당선자는 이날 현 정부의 업무에 선입견을 갖지 말라는 주문을 했다. 그는 “각 부처에서 나온 분들을 인수위원들이 긍정적으로 대해줬으면 좋겠다”며 “5년간 업무를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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