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한민국구석구석] 동해에서 해장하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6면

위부터 순서대로 싱싱한 자연산 섭, 섭국, 섭무침, 섭칼국수, 섭죽.

새해를 맞으러 동해 쪽으로 갈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 많을 때다. 동쪽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가슴엔 붉은 해를 볼 기대가 가득하겠지만, 머릿속은 아마도 바닷가 골목 안에 숨은 별미집 찾기로 바쁠 것이다.

 동해안 별미는 무엇보다 펄펄 뛰는 활어회다. 여기에 겨울철이면 뜨끈뜨끈한 명태찌개·곰치국·도루묵찌개·도치알탕 등이 더해진다. 그런데 요즘 외지인들이 부쩍 즐겨 찾는 신메뉴가 등장했으니 바로 ‘섭국’이다. 섭국은 영동 북부지방의 어부들이 즐겨 먹는 토종음식이다. 칼칼한 고추장 국물에 각종 채소와 수제비를 뜯어 넣고 어죽처럼 걸쭉하게 끓인다. 이 음식의 포인트는 섭.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홍합을 강원도 영동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이다. 그러나 포장마차에서 먹는 양식 홍합과는 차이가 크다. 양식 홍합은 껍데기가 얇고 계절마다 생기는 나이테(성장맥)가 없이 매끈하다. 섭은 돌로 깨야 할 정도로 굵고 단단하다. 껍데기에 해초 등이 붙어 있고 줄지은 나이테가 선명하다. 5m 정도 깊이의 바다에서 채취한 100% 자연산이기 때문이다. 속살은 더욱 다르다. 양식 홍합의 속살은 삶으면 희어지면서 맛과 향이 떨어진다. 섭의 속살은 삶아도 짙은 진홍색을 띠며 쫄깃한 맛과 향이 고스란히 남는다. ‘동해부인’이란 별명이 재미있다. 먹으면 속살이 예뻐진대서 붙은 이름이다.

 고대 의학서적인 『방약합편』에선 섭(홍합)을 ‘오래된 이질을 다스리고 허한 몸을 보충한다. 소화를 돕고 부인들에게 유익한 재료’라고 설명한다. 조선시대 요리책인 『규합총서』에는 ‘바다에서 나는 건 짜지만 유독 홍합만 싱겁다’고 평했다. 그래서 깊은 물에서 나는 채소라는 뜻으로 담채(淡菜)로도 불렀다. 홍합 속의 칼륨은 체내에 쌓인 소금 성분의 나트륨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단다. 또 비타민 C와 E, 미네랄 성분이 풍부하고 타우린 성분이 많아 숙취 해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섭을 국으로만 먹는 건 아니다. 껍질째 불 위에 올리는 섭구이, 포장마차에서처럼 맑은 국물에 삶아내는 섭탕도 있다. 메밀가루를 밀어 섭칼국수로 끓여먹기도 하고, 섭을 다져넣고 전을 부치거나 죽으로도 끓인다. 속살을 데쳐서 갖은 양념을 해 섭무침을 만들기도 한다.

 섭은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초겨울부터 꽃피기 직전 초봄까지 속살이 꽉 차 맛있다. 찬 바다의 청량한 맛이 담겨 있는 섭, 눈덮인 산을 넘어 바다를 찾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북돋워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고성에서 양양으로 이어지는 동해안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섭 요리가 맛있는 집’을 소개한다.
 

글·사진=황영철 yc1904@paran.com
 
‘섭’ 잘하는 집 5
 
 ■옛뜰=섭을 바로바로 손질해 국을 끓여 준다. 미리 삶아 두었다가 넣으면 질겨지기 때문이란다. 수족관에도 많이 보관하지 않는다. 살아 있어도 시간이 흐르면 살이 빠지고 맛이 없어진단다. 이 두 가지를 지켜 끓이는 섭국 맛이 제법이다. 큼직한 뚝배기에 고추장과 된장을 풀고, 장물이 끓기 시작하면 부추·파·미나리를 넣는다. 다 끓으면 섭살과 수제비를 넣고 한소끔 더 끓인 뒤 식탁에 올린다. 식성에 맞춰 제피가루, 다진 고추, 고추장을 넣어 먹는다. 잘잘하게 다져 넣은 섭살이 쫄깃하게 씹힌다. 어죽처럼 걸쭉한 국물이 얼큰해 겨울바다 바람에 언 속을 따뜻하게 달래준다. 7000원. 033-672-7009

 ■담치마을=양양에서 가장 먼저 섭국을 상품화한 집. 섭 삶은 물에 무·건새우·대파·양파를 넣고 따로 육수를 만들어 섭국을 끓인다. 소금 대신 고추장과 된장으로 간을 맞추고, 고춧가루를 기본양념으로 쓴다. 얼큰한 맛이 강하게 남으면서도 뒤끝이 없는 게 특징. 자극적인 맛을 싫어하는 사람이나 노년층과 아이들도 도전해 볼 만하다. 짙은 선홍색의 쫄깃하고 담백한 육질이 그대로 살아 있다. 섭과 새우·조갯살을 다지고 대파와 고추를 넣어 두툼하게 부쳐 낸 섭해물파전도 인기. 섭살만 떼어내 급속 동결해 두어 제철이 아닌 때도 맛볼 수 있다. 섭국 7000원, 섭해물파전 1만2000원. 033-673-0012.   

■도원촌=메밀섭장칼국수로 유명한 집이다. 고추장 장물에 다지지 않은 통섭살과 메밀칼국수·통감자를 넣고 끓인다. 굵직굵직하게 들어간 재료가 투박하지만 토속적인 맛은 ‘지대로’다. 미리 주문해 놓고 가는 게 좋다. 주문을 받고 생 재료로 조리하기 때문에 15분 정도는 족히 걸린다. 메밀칼국수로 섭을 감싸 입에 넣고 통감자를 으깬 국물을 떠먹는 게 순서다. 걸쭉한 국물을 얕보다간 큰일난다. 입안을 훌렁 벗겨낼 만큼 뜨거워서다. 김이 나지 않더라도 호호 불어서 조심스럽게 입으로 가져가야 한다. 6000원. 033-672-8957.   

 ■수산횟집=‘섭백숙’을 잘하는 곳. 섭백숙이라고 해서 섭에다 닭을 넣고 끓인 건 아니
다. 섭을 넣고 쑨 죽, 즉 섭죽을 하얗게(白) 끓였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란다. 물기가 많은 일반적인 죽과 달리 진밥처럼 물기가 적은 게 특징이다. 찰기를 주기 위해 멥쌀에 찹쌀을 섞어서 쑨다. 또 씹는 맛을 남기기 위해 너무 오래 끓이지 않는다. 섭을 기름에 볶지 않아 느끼하지 않다. 잘게 다진 섭살에 당근·오이·양파·호박·표고버섯과 함께 끓여낸다. 한 끼 식사로 부족하지 않을 만큼 푸짐하다. 소화에 좋은 미역국이 함께 나와 탈 날 걱정도 없다. 1만원. 033-671-1580.  

 ■오산횟집=섭무침이 으뜸 메뉴다. 섭무침은 삶은 섭살에 부추·미나리·양파·당근·양배추를 채 썰어 넣고 초장에 버무려 낸다. 언뜻 쉬워 보여도 매콤·새콤·달콤의 삼박자 맛이 맞아 떨어져야 한다. 한 입 씹으니 세 가지 맛의 하모니가 절묘하다. 뻘겋게 버무린 각종 채소 위에 통째로 올라간 섭살이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다. 아삭아삭하게 씹히는 채소와 통통 뛰는 듯한 섭살 맛은 아이들도 좋아할 만하다. 무침을 먹고 난 후 남은 양념에 비벼 먹 는 밥맛도 특별하다. 어른 4명이 먹기에 충분한 양으로 값은 3만원. 033-672-4168.

섭 요리 이외의 동해안 별미집

▶양양(033)
구방마루 - 약선구방닭(673-1333)
송월메밀국수 - 메밀국수(672-3696)
동일식당 - 곰치국(672-1563)

▶속초(033)
야삼정식당 - 장치찜(632-7003)
단천식당 - 가자미회냉면(632-7828)
만석봉순두부 - 순두부(631-4055)

▶고성(033)
성진식당 - 도치알탕(682-1040)
소영횟집 - 명태찌개(682-1929)
수성반점 - 해물짬뽕(631-1492)

■황영철(40·사진)씨는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난 여행전문가 겸 음식 칼럼니스트다. 고향의 여행지와 맛집을 소개하는 계간지 '맛있는 동해안'을 발행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