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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되돌아본 甲戌-공무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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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갑술년(甲戌年)은 여느 해보다 대형 사건.사고가 많았다.「올해의 말」도 그 사건.사고에서 많이 비롯됐다.성수대교 붕괴.유람선 사고.가스폭발 사고가 잇따르자 여당 의원의 입에서조차「무너지고,떨어지고,불타고,폭발하는 사고(事故)공화국 」이란 말이새나왔다.인천 북구청에서 출발한 조세비리는 올해 공직자 비리의새로운 유형으로 떠올라 모든 세무직 공무원에게「세도(稅盜)」의혐의를 두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했다.공무원 사회는 덧붙여「복지부동(伏地不動)의 구조적 불신의 대상 이었다.복지부동에서 파생된복지안동(伏地眼動).복지수동(伏地手動).신토불이(身土不二)등의시리즈도 잇따랐다.
[편집자註] 이 와중에 곤욕을 치른게 총리와 내각이었다.황인성(黃寅性)前총리의 쌀개방 사과를 시작으로 이회창(李會昌)前총리의「낙동강 오염사과」,이영덕(李榮德)前총리의「성수대교 사건 사과」등 총리마다『송구스럽다,죄송하다』는 사과를 연발해「사과 내각」「사과 총리」라는 별명을 얻은 한해였다.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국면 돌파를 위해 연초 밝힌「국제화」구상을「세계화」구상으로 진전시켰다.연말들어 경제기획원의 통폐합등『33년간의 개발경제정책시대를 마감』하는 대대적인 정부조직개편안을 발표했다.또『조각(組閣)차원의 개각』으로 대응했다.
카터의「특사외교」로 분단 이후 첫 정상회담이 합의돼 전 국민이 흥분했으나 북한주석 김일성(金日成)의 돌연한 사망으로 무산됐다.그 여파로 남쪽엔 우리의 이념적 좌표를 놓고「조문(弔問)논쟁」이 뜨거웠고 북한은 후계자 김정일(金正日)의 승계가 늦어지며「신병설(身病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홍(朴弘)서강대총장의 주사파(主思派) 발언도 빼놓을 수 없다.그는 문제를 두달여 줄기차게 주장해「빠콩(박홍)시리즈」를 낳았다. 이기택(李基澤)민주당대표는 세차례 영수회담에서 결과가여의치 않자「12.12장외투쟁」이라는 강수(强手)로 나섰다.그의 장외투쟁 카드는 金대통령보다 김대중(金大中)亞太평화재단이사장을 의식한「홀로서기」노력이라는 해석도 있었다.
○…金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이제 공허한 논쟁에 매달릴게 아니라 실질적인 일에서 옳은 것을 구해야 한다』며 정치가 없는한해를 선언했다.그러나 잇따른 사건.사고는 극심한 국민불안 심리를 자극해 이러한 구상의 실천을 힘들게 했다.
멀쩡하던 성수대교의 붕괴는 충격 그 자체였다.『우리가 중진국인줄 알았더니 후진국이었다』는 자탄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며칠 사이로 충주호 유람선마저 불타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여론은「국가 관리능력의 부재」를 질타했다.지하철 분당선과 일산선,1.2호선에 크고 작은 사고가 계속되고 한강교량 보수공사가본격화되면서 서울시내에는「교통대란(大亂)」이 도래했다.시민들은『택시를 타자니 온보현이 무섭고 버스를 타자니 성수대교가 무섭고 지하철을 타자니 무너져내릴까 무 섭다』며 불신감을 드러냈다. 세도(稅盜)사건이 터지자 세금도 못내겠다는 소리가 높았다.
야당은 잇따른 사고와 일관성없는 북핵협상 자세를 묶어 2不.2無.2失정권(崔在昇의원.민주.익산)이라며 기세를 올렸다.통치철학 부재.국정 수행능력 부족,무책임.무소신,개혁의지 실종.도덕성 상실의 정권이라는 주장이었다.
金대통령은『한강대교 부실문제가 거론될 때 철저점검 지시를 내렸는데,정부에 대한 질책과 비판의 소리를 들으면서 대통령으로서부덕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고 담화를 발표했다.취임초부터 나온『우째 이런 일이…』계속돼 대통령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기도 했다.이런 와중에 나온 얘기가 청와대 불상 훼손론.결국 불교계가 직접 현장을 검증하는 웃지못할 소동까지 겪었던 한해였다. 사고가 잠잠해질만 하자 다시 아현동 가스폭발사고가 발생했다.『기본적 사고로부터도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정부』(朴智元민주대변인)라는 지적이 나왔다.
지존파 살인마들이 무고한 사람을 몇명씩 죽이고도『압구정동 야타족등 돈있는 사람을 다 죽이지 못해 억울하고 한스럽다』고 악을 써 많은 사람을 몸서리치게 했다.이처럼 살인범들이 오히려 큰소리치는 것은 택시 운전사 온보현사건과 배병수( 裵昺洙)씨 살해범들도 마찬가지였다.
○…공무원들의 복지부동과 조세비리문제도 올 한해를 강타했다.
특히 지방세를 징수하는 구청 공무원들이 수십억원의 세금을 횡령한 것으로 드러나자 국민적 분노는 극에 달했다.「탁 치니 억하며 죽더라」가 아니라 먹었다 하면「億인 세태」가 여과없이 노출됐다.金대통령은 이「총체적 비리구조」에 대해『로마는 외침(外侵)이 아니라 내부 부패로 망했다』며 엄벌을 지시했으나 사건은 계속 확산됐다.
金대통령은 특히 이러한 사건.사고를 놓고『부실기업을 인수 받은 것 같다』는 한탄을 해 화제가 됐다.
이에 대한 책임논쟁도 치열했다.최형우(崔炯佑)前내무장관은 인천 세무비리때『前정권 시절의 비리』라고 주장했으나 조사결과 문민정부 출범이후에도 상당한 비리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나 곤욕을치렀다.책임논쟁 2라운드는 성수대교 붕괴때.『과 거 정부의 부실시공 때문이냐,현 정부의 보수유지능력 미흡 때문이냐』를 놓고설전이 치열했다.
한편 李前총리의 전격해임은 화제를 뿌렸다.李前총리는『정부 정책은 내각의 논의과정을 거쳐 입안.결정돼야 한다』며 통일안보정책회의의 구성을 문제삼았다가 그 직후 경질됐다.야당은 李총리의원론 강조를『金대통령의 인치(人治)에 대한 李총 리의 법치(法治)요구』로 해석하며「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총리」를 반겼다.반면 민자당은『어설픈 스타플레이어가 게임을 망친다』(文正秀사무총장)며 이를「통치권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하며 대통령을엄호했다.이 논쟁은 부수적으로 총리 의 내각 통괄 권한범위가 어디까지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했다.민자당은 이때『총리는 2院6處를 직접 통괄한다』는 내부문건을 만들었다가 잡음만 빚자 황급히 없애버렸다.
이런 가운데 새 서울시장에 임명된 최병렬(崔秉烈)시장은『접시를 닦다 깨뜨리는 공무원이 뒷짐지고 있는 것 보다 낫다』는 취지의 접시論을 제기해 복지부동 공무원에 일침을 가했다.
방위병들이 소대장과 고참병을 구타해 나타난 소대장의 탈영사건은「소대장 길들이기」라는 하극상의 세태를 여과없이 보여줘 큰 충격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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