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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이제는실천이다>11.배타성 이제 버려야 할때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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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세계화를 위해서는「민족」마저 버려야 할지 모른다.
反민족적인 일을 해야한다는 것이 아니다.
「단일 민족」이라는 우리의 가치에 찌꺼기처럼 묻어 있는「배타적(排他的)동질성(同質性)」의 문화를 털어 내야만「배달 민족의세계화」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한민족과 성질이 비슷하다는 이탈리아인이 말하는 다음과 같은 충고에 한 번 귀를 기울여보자.
『한국에는 주류(主流)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획일적.집단적 문화가 있다.그런 문화는 70년대 양적 성장의 시대에 국민을 총화.단결로 몰아갈 때와는 달리 국제화의 시대에는 경제의 역동성과 개방성을 제한하는 장애가 될 수 있다.』 이탈리아 해외무역공사(ICE)의 페테리코 발마스(44)서울 지사장은 한국인들의 동질성이 「탄력적인 생산」을 제약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멋진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나도 저런옷을 입고 싶다」는 생각 대신「저것과는 다른 옷을 입어야겠다」고 생각한다.이런 문화 때문에 수요는 다양화.세분화돼 왔고 섬유.피혁등의 생산도 따라서 탄력적인 경쟁력을 갖 추게 된 것이다.』 특히 한국 자동차들은「한국적 획일성」의 굴러다니는 상징이다. 〈朴長羲기자〉 아주 최근에야 일부「튀는」색깔의 자동차들이 한국의 거리를 달리기 시작한 것이 발마스씨와 같은 외국인들의 눈에는 아주「튀어 보이는 일」인 것이다.
이같은 한국인 특유의 동질성은 그냥 우리 끼리의 동질성에 머무르지 않고 곧잘 배타적인 모습을 곳곳에서 드러낼 때가 많다.
프랑스 운송회사 SDV 서울 지점에서 일하는 프레데릭 메이어(29)는 지난 7월 한국인 배윤정(裵閏貞.28)씨와 결혼했다. 『서울 생활에 만족한다』는 그지만 결혼하기 전이나 지금이나어딜 가든 사람들의「심상찮은 눈초리」가 느껴져 마땅히 갈 곳을찾기가 수월하지 않다고 한다.
『연애할 때는 옷차림마저 조심스러웠다.대조적으로 지난 9월 휴가차 다녀 온 파리의 공기는 너무 자유롭게 느껴졌다.』 이름을 대면 금방 알만한 이른바「뼈대 있는 집안」의 딸인 裵씨의 말이다.우방법률사무소의 이원(李垣)변호사는『왜 우리는 아직도 외국「애」들이고 미국「놈」이며 일본「놈」들인가』라고 반문한다.
우리의 배타성은 과연 파란 눈의 서구인들에 대해서만 표출되는것일까.세계 각지로 퍼져나간 화교들이 유일하게 뿌리조차 내리지못한 나라가 한국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47년 통계로 국내에 거주했던 화교의 수는 약 7만명에 달했다.그러나 최근 주한 대만 대표부가 집계한 화교수는 2만2천여명이다.
재일교포에 대한 일본인들의 처우에 분개하는 한국인들이라면,화교들에 대한 우리의「텃세」가 어떠했는지도 한 번 심각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외국 기업의 대한(對韓)투자나 우리 기업의 해외 투자에 대해아직도 남아 있는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시각도 이같은 배타적인문화와 무관할 리 없을 것이다.
1875년 영국은 디즈레일리 총리의 뜻대로 수에즈 운하의 주식을 사들여 대외 진출의 거점을 마련할 수 있었다.이에는 영국이 유대인을 배척하지 않았던 덕에 유대인 거부 로스차일드의 자금력을 빌릴 수 있었다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이같은 사실은 국경 없는 경제의 시대에 더더욱 절실한 이야기가 된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존 버튼(41)서울 특파원은 한국인의 반외정서(反外情緖)가「외래의 사조가 유입되어 고유의 것을 오염시키지 않을까」하는 우려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느낀다.
그러나 그는 경제적으로도 일부 유럽 연합 소속 국가보다 더 부유하고,또 4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이 왜 자기문화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는지 의아하다고 말한다.
일본이나 태국의 경우 자신의 문화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갖고있지만 바깥 세계에 대한「유연성」또한 아울러 가지고 있더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지닌 배타성의 뿌리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사정이 있다는 지적이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때문에 우리는 그동안 과거와 미래 사이에 어정쩡하게 서서「전통문화」에 대한 일그러진 경외감을 서로에게 강요하고「피의 순수성」에 대해 맹목적인 가치 부여를 해왔던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
「세계인」이란 영어에 능숙한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뜻하지 않는다.그보다는「외래인을 포용하고 이질성을 수용하는」능력을 지닌 인물을 의미한다.
『민족의 단일성과 민족의 힘은 역비례한다.힘이 없는 사람이 단일성을 주장하면 더 취약해지며 힘이 생길수록 다원성은 증대된다.주체성을 확립할 필요 못지 않게 다원성을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한 자세가 중요하다.』 고려대 김우창(金禹昌)교수(영문학)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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