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평점보다 입맛 맞는 품종이 중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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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고 경영자 (CEO)의 80%가량이 포도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이원복(61·사진) 덕성여대 교수가 한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와인 스트레스’는 반드시 깨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21일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와인 입문 만화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김영사)의 출판 설명회에서다.

수도원이 와인 생산의 본거지가 된 역사적 배경, 와인이 신대륙 발견을 재촉한 까닭 등 에피소드를 들어가며 와인사를 추적했다. 이번에 1권 『와인의 세계』편이 나왔고, 내년 봄 『세계의 와인』편이 나올 예정이다.

만화 역사책 『먼 나라 이웃 나라』와 본지에 연재 중인 ‘세계사 산책’ 등을 통해 세계사를 만화로 그려온 그에겐 일종의 ‘외도’인 셈이다. 그는 “행복한 외도였다”고 말했다. 자료를 수집하느라 ‘꿈의 와인’이라고 불리는 프랑스 ‘로마네 콩티’ 본사 지하 저장고에서 와인을 맛보는 사치도 누렸단다.

술을 질보다는 양으로 즐기던 이 교수가 와인을 찾기 시작한 건 6~7년 전이다. 곧바로 취하는 위스키에서 홀짝이며 오랜 시간 향과 맛을 즐길 수 있는 와인으로 마음이 기울었기 때문이란다.

실제 이 교수는 집에 와인 바를 만들어 놓고 수백 종의 와인을 소장하고 있는 와인 매니어로도 유명하다. 와인을 아예 만화로 그려보자고 마음 먹은 건 2~3년 전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을 보고서라고 말했다.

“와인 한 모금에 감동해 눈물 흘리는 게 정상입니까. 아무리 만화라지만 과장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양 문화를 들여온 뒤 그것을 연구해 서양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는 일본 문화의 전형이죠.”

그는 우리나라의 와인 문화가 일본식으로 왜곡됐다고 주장한다.

“와인과 연관된 대부분의 형식은 프랑스에서 와인을 수입해서 즐기던 19세기 영국에서 나온 겁니다. 잘못 따라하다간 이상한 사람 취급 받을 수도 있어요.”

일례로 와인 코르크를 열고 2시간을 세워둬야 공기와 접촉해 향이 좋아진다는 형식이 그렇단다. 과학적으론 와인이 공기와 닿는 면적이 3㎠에 지나지 않아 효과가 없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한다.

수입 과정에서 와인이 흔들리면서 섞여 있던 불순물을 가라앉히기 위해 병을 한동안 세워둔 데서 유래한 습관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체온 때문에 포도주 맛이 변하다며 와인대(스템)를 잡는 것도 정답은 아니란다.

“세계 최고급 와인잔 제조업체인 리델사 매출의 30%를 차지하는 건 스템이 없는 둥근 모양의 O(오) 시리즈입니다. 잡고 싶은 대로 잡아도 포도주 맛은 그대로라는 이유에서죠.”

이 교수는 와인평점도 절대적인 평가기준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와인 제조업자들의 장삿속에 일부 평론가들이 가세해 거품이 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평론가보다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와인이 정말 좋은 겁니다. 좋아하는 품종만 찾아내면 와인 선택에서 실패할 확률은 적어요.”

와인 겉치레를 깨뜨리자는 그는 과연 어떤 와인을 좋아할지 궁금했다.

“뉴질랜드산 피노누아 품종을 즐깁니다. 빈티지(포도주 생산연도)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포도주 재배와 양조법이 발달한 요즘에 작황이 맛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거든요.”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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