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봉사 송년회’ 밀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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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모항항에서 기름을 닦는 자원봉사송년회를 한 동국제강 직원들이 휴식시간에 음료수로 건배하며 방제작업이 잘 마무리 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사진=조남수 일간스포츠 기자]

21일 오후 2시 충남 태안군 모항항. 동국제강 포항제강소 직원 90여 명이 바위.암반 위에서 기름을 닦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원래 이들은 이날 오후 회사 인근에서 예년처럼 송년회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한 직원이 아이디어를 냈다. "기름 유출로 시름하는 태안 주민들을 돕는 게 더 뜻 깊지 않겠습니까."

직원들은 토론 끝에 자원봉사 송년회를 하기로 하고 이날 새벽에 집을 나섰다. 준비했던 송년회비와 직원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 1000여만원도 태안군에 기탁했다. 직원들은 봉사로 한 해를 마감하는 게 보람 있다는 데 뜻을 모았다.

◆"먹고 마시는 송년회 대신 자원봉사를"=사고 발생 15일째를 맞은 21일 태안 해안에는 곳곳에서 송년회가 열렸다. 왁자지껄하며 모여 술 마시고 밥 먹는 송년회가 아니라 해변으로 밀려온 기름을 닦는 송년회다.

회사 부서별로 적게는 10여 명에서 많게는 100여 명까지 지원자를 모집해 재난 현장을 찾은 직장인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부서원 전체가 사고 현장을 찾기도 했다. 이들은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의 희망을 기원하는 방법으로 자원봉사만큼 값진 것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동국제강 포항제강소 전무섭 차장은 "현장에서 보니 진작에 왔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우리 회사가 강판을 만드는 회사이다 보니 교육적 측면에서도 올해의 봉사 송년회는 기억이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 직원 염지인(23.여)씨는 "회식 대신 자원봉사를 하니 더 보람이 있다"며 "저녁엔 지역 음식점을 돕는 차원에서 만리포 식당에서 식사를 할 것"이라고 했다.

자갈 해변으로 유명한 학암포해수욕장에도 한국야쿠르트 직원 200여 명이 돌멩이를 닦았다. 이 회사 총무팀 신동석씨는 "오늘 참가하지 못한 부서들은 주말과 크리스마스 전후를 이용해 모두 자원봉사에 나서기로 했다"며 "평일에 송년회가 예정된 부서들은 하루 시간을 내 방제작업에 참여할 것"이라고 했다. 신씨는 "부서 대부분 오늘 송년회가 예정됐지만 회의를 거쳐 만장일치로 태안에서 송년회를 보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주말.연말에도 자원봉사=주말인 22~23일 1박2일로 태안 사고현장에서 송년회를 겸한 자원봉사를 계획 중인 직장인도 많다. 한성항공 직원 60여 명은 22일 천리포에서 방제작업을 한다. 항공회사 특성상 한자리에 모두 모이기 어려워 임직원.승무원들이 조를 나눠 태안을 찾기로 했다.

한성항공 관계자는 "비행 스케줄 때문에 자원봉사를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직원이 많았는데 이번 기회에 단합대회도 하고 봉사활동을 벌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부산에 있는 선박엔진업체 바르질라코리아도 송년파티를 취소하고 사원 280명이 26~28일 태안 방제작업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송년파티는 1997년부터 매년 열던 행사다. 이 회사 관계자는 "태안 지역 어민들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는 게 더 의미 있다고 판단했다"며 "파티 비용 1500만원은 태안군에 지원금으로 내놓기로 했다"고 말했다. 의항리 이완섭 어촌계장은 "송년회까지 반납하고 자원봉사를 해 준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봉사자들의 도움 덕분에 복구를 곧 마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글=신진호 기자, 사진=조남수 일간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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