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작은 정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1935년 372명이던 영국 식민부의 직원 수는 20년 만에 1661명으로 늘었다. 그동안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식민지가 대거 독립해 부처가 없어져도 될 판인데 정원이 네 배 이상이 된 것이다. 앞서 1차 대전을 거치면서 영국 군함과 해군 병력은 절반 정도로 줄었지만 해군부의 공무원 수는 두 배 가까이 됐다. 공조직은 일단 생기면 잘 없어지지 않을뿐더러 저절로 커지는 경향이 있다는 ‘파킨슨의 법칙’은 이런 역사적 통계에서 출발했다.
 
둘러보면 유능하고 사명감에 불타는 젊은 공무원이 눈에 많이 띈다. 하지만 공조직에 오래 몸담다 보면 의욕적인 사람도 무사안일에, 합리적인 인물도 독선에 빠지는 경우를 흔히 본다. 위대한 대통령의 경구 중에는 ‘군림의 유혹’을 경계하는 것들이 적잖다. “남을 다스릴 만큼 선량한 사람은 드물다”(링컨)든가, “치즈의 종류가 246가지나 되는 나라를 어떻게 다스리겠는가”(드골) 하는 지적이다. 자유주의 경제학의 대부 프리드먼의 표현을 빌리면 정부의 ‘화려한 약속’은 ‘우울한 성과’를 내기 일쑤였다.

공무원 선서를 하면 누구나 ‘공복(公僕)’을 자임한다. ‘Public servant’, 국민의 시종으로 부려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관청 문턱 넘어 인허가 도장 한번이라도 받아 본 이라면 상전도 이런 상전이 없다는 걸 금세 알아차린다.
 
중국이 ‘작은 정부’를 향한 대장정에 나섰다. 28개 부(部)의 통폐합 작업을 내년 3월까지 밀어붙인다는 소식이다. 미국(13개)이나 일본(12개)보다 훨씬 많은 부처 수를 줄이는 데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힘을 바짝 실어 줬다. 무소불위의 절대주의 체제가 뿌리 깊은 중국이기에 ‘작은 정부론 ’은 더욱 신선해 보인다. ‘천둥번개 내리치는 하늘은 높을수록 좋듯이, 백성을 못살게 구는 황제는 멀리 있을수록 좋다(天高皇帝遠)’는 진시황 대 민초의 피해의식이다. 덩샤오핑 이후 경제개혁을 주도해 온 중앙집권적 중국 관료 시스템은 이제 공공개혁 면에서도 우물쭈물하는 한국을 앞지르려 한다.
 
이 순간에도 우리 정부의 몸집은 커지고 있다. 조만간 공무원 100만 명 시대에 돌입할 전망이다. 특검이다 뭐다 해서 막판까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유권자들은 대선 투표소에 가기 전에 적어도 후보들의 ‘작은 정부’ 공약을 한번 살펴봤으면 한다. ‘이것저것 하겠다’는 요란한 구호보다 ‘이것만은 하지 않겠다’는 차분한 약속이 들어 있는지 따져보자.
 

홍승일 경제부문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