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포청천과 피에트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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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요즘 항간에선 KBS가 방영하는 대만(臺灣)의 역사드라마『판관 포청천(判官 包靑天)』이 화제다.
중국(中國)송(宋)나라때 名판관 포증의 활약을 다룬 이 드라마는 드라마 자체로 보면 그러그러한 내용에 느린 전개 등 인기를 끌만한 구석이 별로 없다.KBS내에서도 처음엔 회의적(懷疑的)의견이 많았다고 한다.그러나 결과는 대성공이어 서 평균시청률 25%(점유율 35%)라는 놀라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같은 인기의 배경은 무엇인가.혹자(或者)는 미국 TV 드라마에 식상(食傷)한 시청자들이 색다른 소재(素材),중국이라는 문화적 유사성으로 호기심을 갖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그러나 이보다는 최근 우리가 처한 시대적 상황 때문이라는 얘기가 더욱 그럴듯하다.
드라마에서 포청천은 고결(高潔)한 인격의 소유자일 뿐 아니라범법자에 대해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추상(秋霜)과 같은 판결을내린다.왕의 부마(駙馬).공신(功臣)자손 등 권력층이라도 죄가있으면 예외없이 준엄한 판결로 백성의 한(恨 )을 속시원히 풀어준다. 시청자들은 포청천의 이같은 정의로운 행동에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그것은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한 반사작용이며 대리만족(代理滿足)이라 할 수 있다.12.12사건 관련자 기소유예.성수대교붕괴.인천과 부천의 세금도둑.아현동도시가스 폭발 사건등 연이어 터지는 反상식적 사건들로 분노가 폭발직전인 요즘 상황에서 포청천이 벌이는 성역(聖域)없는 수사와 공명정대한 공직자像은 작은 위안(慰安)을 주는 것이다.
이것은 이탈리아에서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검사가 벌이는 「마니풀리테」(깨끗한 손) 캠페인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부러움과도 통하는 것이다.
우리는 포청천과 디 피에트로검사를 가질 수는 없는 것일까.우리는 언제까지 텔레비전이나 보면서 대리만족으로 「만족」해야 하는가. 연일 터지는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해보는 신세 한탄(恨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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