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지하철 타고 출퇴근 하는 모스크바 개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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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혼자서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다니고,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눈 언덕에서 까마귀가 미끄럼을 타고 논다’.

어린이용 만화영화에 나오는 얘기가 아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모스크바 시내에 살고 있는 동물들이 날이 갈수록 지능이 높아져 상상하기 어려운 행동이나 습관들을 보여주고 있다고 일간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가 12일 보도했다. 학자들은 지능이 높아진 동물들이 ‘저능한’ 다른 야생동물들을 죽이거나 내쫓으면서 도시 생태계가 위험에 처해 있다고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버려진 개들. 개방 이후 경제적 혼란기에 먹고 살기가 어려워진 사람들이 집에서 키우던 개들을 내다버리면서 늘어나기 시작한 ‘부랑견’들은 현재 모스크바에만 3만 마리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지상의 버스나 전차에 올라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는 것은 물론이고 지하 몇십 미터 아래에 있는 지하철 플랫폼까지 내려가 열차를 타고 역과 역 사이를 이동한다. 일정한 곳에 살면서 먹잇감이 많은 지역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승객들은 “역 이름도 알지 못하는 개들이 방향을 정확히 판단해 차에 오르고 항상 내리는 역에서 실수없이 내리는 걸 보면 신기할 뿐”이라고 놀라워 한다. 눈치도 빨라 승차를 막는 역무원이나 경찰은 용케 피해다닌다고 한다. 지상으로 올라오면 자동차로 혼잡한 도로를 좌우를 살피며 잘도 건너간다. 웬만한 어린이보다 더 민첩하다고 한다.

부랑견들은 지하철 역이나 버려진 집 등에서 몇 마리~몇십 마리씩 떼를 지어 집단 생활을 한다. 이들은 쓰레기통과 골목 구석구석을 뒤져 먹을 것을 찾아 내거나 마음씨 좋은 사람들의 ‘자선’으로 먹이를 얻기도 한다. 그도 어려울 땐 장을 봐오는 여자나 노약자들의 장바구니를 공격하기도 한다.

모스크바에는 유난히 까마귀가 많다. 200만 마리 정도가 사는 걸로 추산되는 이들의 지능도 놀라움을 자아낸다. 까마귀를 연구하는 동물학자 바실리 그라보프스키는 2년 전 연구 목적으로 모스크바 남쪽 ‘참새 언덕’에 있는 까마귀 집을 자주 관찰했다. 그가 나무를 타고 올라가 둥지로 접근하면 까마귀들이 떼를 지어 날며 울어대는 일이 반복됐다. 그 뒤론 그라보프스키가 둥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나타나기만 해도 까마귀들이 먼저 알아보고 쫓아와 울어댔다. 옷을 갈아입고 다른 모자를 쓰고 나와도 용케 알아봤다. 까마귀들은 2년이 지난 지금도 그를 보면 쫓아와 '짓는다'.

검은 새들의 지능은 놀이문화를 만들어내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모스크바 시민들은 까마귀들이 둥근 교회 지붕이나 눈 덮인 언덕, 얼어 붙은 저수지 등에서 미끄럼을 타며 노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고 한다. 그냥 한번 미끄러지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타며 놀이처럼 즐긴다는 것.

모스크바 시당국의 골칫거리인 쥐들도 영리하기는 마찬가지. 꼬리를 빨대처럼 요구르트 통에 담갔다 뺀 뒤 그 위에 묻은 내용물을 빨아 먹을 정도라고 한다. 이들은 시내의 낡은 건물 지하를 장악하고 놀라운 속도로 번식해가고 있다. 시 당국은 "이들은 웬만한 쥐약엔 면역이 생겨 박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주장한다.

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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