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에디터칼럼

영화 ‘쇼생크 탈출’은 과 대선 감상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이하경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

그런데 한국의 감옥에서는 실제로 그런 상황이 두 번씩이나 벌어졌다. 주인공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와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다. 김구는 1896년 2월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에서 일본인을 살해했다. 21세 때였다. 일인들이 국모인 명성황후를 살해한 데 대한 응징이었다. 사형선고를 받은 뒤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당당하게 생활했다. 아버지가 차입해 준 대학을 늘 독송했고, 대부분 문맹인 동료 죄수들에게 글자를 가르쳤다. 황성신문에는 ‘김창수(김구의 당시 이름)가 인천옥에 들어온 후는 옥이 아니라 학교가 됐다’는 기사가 나갔다. 그는 동료 죄수들의 소장을 무료로 대신 작성해 주었다. 썼다 하면 모두 승소한다는 소문이 나 나중에는 관리들도 부탁해 왔다. 그는 못된 관리들의 해악을 상급관리에게 알려 파면시킨 일도 있었다. 사형수가 아니라 인천 지역의 지도자로 명성을 떨쳤던 것이다. 그는 같은 해 말 사형집행 직전 고종황제의 대사면령으로 목숨을 구한 뒤 1898년 3월 탈옥에 성공했다. 영화 속 앤디처럼.

젊은 시절 서구지향의 근대적 개혁가였던 이승만은 고종황제의 전제적 보수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급기야는 고종을 퇴위시키고 의화군을 새로운 왕으로 옹립하려는 쿠데타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1899년 1월 체포됐다. 25세 때였다. 얼마 후 권총을 구해 간수를 위협하고 탈옥했지만 다시 검거됐다. 경무청 감방에서 목에 무거운 칼을 쓰고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 사형선고를 기다렸다. 정말 운 좋게 종신형을 선고받고 5년7개월을 복역한 뒤 1904년 8월 고종의 특별사면으로 풀려날 수 있었다. 그는 옥중에서 한국 개신교 사상 처음으로 40여 명의 양반 출신 관료, 지식인들을 개종시켰다. 간수장을 설득해 옥중학교를 열어 한글과 한문, 영어·산수·국사 ·지리를 가르쳤다. 국내 처음으로 영한사전 편찬작업에 착수해 A부터 F까지 완성했다. 그는 선교사들이 차입해 준 425권의 책으로 옥중 도서실을 운영했다.

감옥을 아예 학교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김구와 이승만은 가상 인물 앤디보다 한 수 위의 초인(超人)들이다. 교도소의 영웅은 아니었지만 사형집행의 위기를 겪었던 지도자들도 있다. 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들이다. 박정희는 1948년 남로당 활동 혐의로 체포됐고, 김대중은 80년 내란음모 혐의로 체포돼 신군부의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두 사람도 초인적 기질과 역량을 보여 준 인물이다.

퇴임 뒤에 사형수가 된 대통령도 두 사람이나 된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김영삼 정부 시절 12·12 및 5·18사건, 그리고 비자금 사건으로 기소돼 사형을 선고받았다. 건국 이후 등장한 7명의 대통령 가운데 윤보선·김영삼·노무현을 제외한 네 사람이 사형집행의 위기를 경험한 셈이다. 파란만장한 한국 현대사의 반영이다. 만일 이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면 김구가 주도한 임시정부의 광복투쟁, 이승만에 의한 대한민국 건국, 박정희의 근대화와 산업화, 김대중의 민주화와 수평적 정권교체는 없었을 것이다.

대통령 선거를 나흘 앞둔 지금 역대 지도자들의 생애를 영화 필름처럼 되돌려 보는 것도 흥미롭다. 한국의 국가지도자가 되려면 목숨을 걸 정도로 신념에 충실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평범한 사람이 적당히 탐낼 수 있는 자리는 결코 아닌 것이다.

시대와 환경이 변한 만큼 이번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에게 똑같은 덕목을 요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한두 가지에는 목숨을 걸 정도의 각오가 돼 있다는 자세를 보여 주어야 한다. 경제도 좋고, 교육도 좋다.

한국 국민은 초인적인 의지를 가진 지도자조차 재임 기간 중 흠결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에 대해 요구하는 수준이 높고 까다롭다는 것을 12명의 후보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하경 문화스포츠부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