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지방단체장 주민소환제 남용 우려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경기도 하남시장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가 투표율 미달로 개표 없이 부결 처리됐다. 김 시장은 투표일이 확정 공고된 지난달 16일 이후 정지됐던 직무에 복귀하게 됐다. 이번 투표는 국내 첫 사례로 관심을 모아왔지만 소환의 가·부결 여부를 떠나 주민소환법의 제도적 허점과 시행상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냄으로써 많은 논란을 야기해 왔다.

 지난 7월부터 시행된 주민소환제는 지역 주민이 지방자치단체장 등 선출직 공무원의 독선과 비리·부패 등을 막아 지방자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풀뿌리 민주주의의 완결판’으로 기대를 모았었다. 비리를 저지른 단체장이라도 법원의 확정 판결이 나올 때까지 업무를 계속해 ‘옥중 행정’이라는 말이 생겨나는 폐단을 고쳐 지방행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리라 여겨졌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김 시장이 광역화장장 유치 계획을 발표한 뒤 1년2개월에 걸쳐 벌어진 소환 논란의 끝은 9억2000만원의 투표비용과 지역주민을 갈라놓은 갈등의 상처, 뿌리 깊은 지역이기주의의 재확인뿐이었다. 화장장 유치에 찬성한 지방의원 2명이 주민소환으로 의원직을 상실했지만 소환반대표가 없었다면 김 시장과 마찬가지로 투표율이 3분의 1을 넘지 못해 부결될 상황이었다.

 문제는 현행 주민소환법이 소환청구사유에 구체적 규정이 없고 청구 횟수 또한 제한이 없다는 것이다. 단체장의 비리나 위법 사항이 아닌 합법적 정책 추진이 일부 반대 세력에 의해 무한정 제동이 걸릴 수 있다. 그럴 경우 장기적 안목에 따른 단체장의 소신 있는 업무행정이 기획단계부터 좌절을 겪기 쉽다. 하남시의 경우 화장장 유치가 무산되면 함께 추진했던 지하철 연장 건설, 명품 아웃렛 단지 개발 등 지역발전을 위한 대형 사업을 벌일 재원을 확보할 통로가 막히게 된다. 결국 피해는 주민들의 몫이다. 비슷한 사유로 주민소환이 논의돼온 지자체 10여 곳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주민소환 청구 사유를 위헌·위법 등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의 입법 절차를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