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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후보의 대표 논객, 시대정신을 말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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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어떤 시대든 국민 대다수가 원하는 ‘열망’이 있다. 흔히 ‘시대정신’이라고 부르는 그 열망에 가장 부응하는 인물이 대통령이 된다. 10년 전 대한민국 유권자들은 ‘정권교체’를 내건 김대중 후보를 골랐다. 다른 정당이 정권을 쥐는 첫 번째 수평적인 권력교체였다. 3김(金) 시대가 막을 내린 5년 전 우리 국민은 ‘변화’와 ‘개혁’의 새 정치를 외친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2007년 대한민국 국민의 열망은 무엇일까.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독주는 시대정신과 얼마나 관련 있을까. 숨가쁘게 추격 중인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 이회창 무소속 후보 진영이 주장하는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세 후보 진영의 대표 논객 3인에게 물어봤다.


이명박 후보 선대위 공동 부위원장 전여옥 의원
“생존에 대한 절실함 유능한 인물 갈구”

“유세 현장에 가보니 사람들이 손을 잡으면서 ‘BBK에 관련됐어도 이명박 후보를 찍어주겠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처음엔 귀를 의심했어요.”

한나라당 이 후보 선대위 공동 부위원장인 전여옥(48) 의원은 인기 연사다. 전국을 돌며 ‘민심’과 만나고 있는 그는 이 후보의 지지율 질주를 이렇게 설명했다.

“21세기 5000만 국민에게 던져진 화두는 ‘생존’이에요.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어떤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은 사람을 원했고, 어떻게 해서든 나를 먹고살게 해줄 사람, 그런 일꾼을 원하는 거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겪고 있는 생존에 대한 절실함, 이것이 2년째 이 후보의 지지율 1위를 가져왔다고 봐요.”

기업인으로서의 능력을 입증했고, 청계천 복원 등 생산적인 능력을 보여준 이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서 자신의 생존을 보장받으려는 심리가 이 후보 지지의 저변에 깔려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국민들에게 ‘도덕성’은 더 이상 최고의 가치가 아니라고 그는 주장했다. “도덕성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는 것, 도덕성이 나의 욕망과 나의 생존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고 있는 거죠. 이걸 좋은 거다, 나쁜 거다라고 말한다는 것 자체가 오만이라고 봐요.”

그는 특히 ‘40대의 변화’가 굉장히 크다고 말했다. 지금 40대 상당수는 5년 전 노무현 후보를 찍었던 ‘386’이었다. 젊은 날에 좌파가 아니면 가슴이 없는 사람이고, 나이가 들어 여전히 좌파면 머리가 없는 사람이란 말처럼 386도 변했을지 모른다. 그는 이렇게 해석했다.

“드디어 이 사람들이 생존과 생활의 정점에 서 있어요. 아이들에게 돈이 가장 많이 들어가고, 직장에선 생존의 위험을 받는 시기예요. 처절한 존재의 이유 때문에 이 후보를 선택하고 있는 거죠.”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을 묻자 그는 ‘개인적 자유의 극대화’라고 대답했다. 그는 “다니고 싶은 학교를 가고, 사고 싶은 물건을 사고, 가보고 싶은 나라를 가고, 소유하고 싶은 부(富)를 이루는 것이 지금 국민들이 바라는 개인의 자유”라고 설명했다.
또 “여고생들이 휴대전화 고리라도 명품을 가지려고 하듯 국민은 향상되고 확대되는 욕망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후보를 선택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보냐, 보수냐로 몰지 않고 보수의 가치 중에서 좋은 것과 진보의 가치 중에서 좋은 것을 갖다 쓰면서 자신들을 귀찮게 하지 않는 대통령을 국민들이 원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다른 후보들은?

-정동영 후보의 가족행복시대 주장은 어떻게 보나.

“지금 우리나라의 많은 가정은 부도난 회사 같다. 돈 때문에 제대로 모여 살지 못하는 가정이 많다. 가정도 돈이 있어야 유지된다. 가정 행복도 유능한 우파의 경제적 번영 위에서 가능하다. 10년 동안 국민의 삶을 이토록 피폐하게 만들어 놓고 가족행복이라니, 코미디다.”

-이회창 후보는 어떤가.

“그분은 무능한 보수다. 생존하려면 유능해야 한다. 지난 10년간 두 차례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했던 분이다. 그 무능이 시대정신과 맞지 않는다.”
전 의원은 이 후보가 당선되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부자로 만드는 데 전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정당하게 땀 흘렸을 때 부자가 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을 이 후보가 많이 만들 것”이라며 “아주 현실적인 5년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전여옥 부위원장 약력 이화여대 사회학과-KBS 도쿄특파원·앵커-17대 국회의원-한나라당 최고위원

이회창 후보 정무특보 전원책 변호사
“도덕성 있는 보수가 사회 바로잡는다”

“보수가 정권을 되찾겠다고 하는데 보수가 뭡니까. 보수의 제일 큰 미덕은 도덕성입니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의 정무특보인 전원책(52) 변호사는 거침없고 직설적인 말하기로 유명한 ‘보수 논객’이다. 그는 ‘보수로의 정권교체’를 확신했다. “지난 10년간 좌파정권을 경험해 본 유권자들이 좌파들의 실체를 알았다”는 것이다. 그는 “절대로 좌파로는 정권이 안 간다”고 확언했다. 이번 대선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무소속 이회창 후보의, 보수끼리의 대결이라는 얘기였다. 그는 지금의 시대정신을 ▶경제▶안보▶도덕성▶통합 등 네 가지로 정리했다. 그중에서 특히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강조했다.

“가진 자와 배운 자가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래야 경제가 신명 나게 돌아가고 안보가 튼튼해집니다.”

이런 시대정신 구현에 무소속 이 후보가 차선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차선’이란 표현을 쓴 것은 “이 후보가 절차적 정당성에서 흠을 남겼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한나라당 경선에 참여하지 않고 대선에 출마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럼 다른 후보는?

“다른 모든 후보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너무 많은 흠을 갖고 있습니다. 이명박 후보가 집권했을 때 우리 보수세력은 자식들이나 후배들에게 ‘보수는 도덕성이 미덕’이라는 얘기를 못합니다. 두고두고 우리 보수는 구렁텅이에 빠져듭니다.”

-그렇다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 1위는 어떻게 설명되나.

“국민이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 10년에 질려 버렸다. 이명박 후보는 그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부패해도 좋다,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것 아닌가. ‘부패해도 좋다’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그 말에 두려움을 느껴야 한다.”

-‘보수 원조’ 격인 이회창 후보는 왜 그 반사이익을 가져가지 못하나.

“무소속인 우리가 돈이 있나, 조직이 있나. TV광고도 신문광고도 제대로 못한다. 그런데도 지지율이 20% 가까이 유지되는 것은 국민이 이명박 후보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는 ‘유권자 혁명’을 기대하고 있었다. “좌파가 집권할 기회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 확인이 되고, 이번 대선이 보수 대 보수의 싸움이란 사실이 완전히 확인만 되면 불과 3, 4일 사이에 엄청난 표의 대이동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유권자들은 이왕이면 정직하고 도덕적인 후보를 찍을 겁니다.”

-이명박 후보는 왜 안 되나.

“그렇게 큰 부자면서 건강보험료는 2만원도 안 되는 돈을 냈다. 나는 위장전입·위장취업·BBK보다 그 문제를 더 크게 본다. 그것은 공인의식의 문제다. 공인의식이 없으면서 대통령이 됐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스스로 편법주의에 물들어 있으면서 국민에게 어떻게 ‘정직해라’ ‘법 지켜라’ ‘세금 제대로 내라’고 이야기할 건가.”
그는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가 자꾸 경제를 살려준다고 하는데 돈이 첫째라는 그 발상부터 굉장히 의문스럽다”고 꼬집고, “경제 이전에 도덕성 있는 정부, 원칙과 법이 통하고 신뢰와 정직함을 사회에 돌려주는 정부, 겸손하고 작은 정부가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 점에 대한 인식 없이는 설령 한나라당이 집권하더라도 취약하고 위험한 정권이 될 것이다. 결국 보수는 얼굴에 똥칠을 하고 물러나게 될 것”이라고 날 선 경고를 했다.

전원책 특보 약력 경희대 법대-군법무관-경희대 겸임교수-전원책 법률사무소 변호사

정동영 후보 공동 선대위원장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부패 청산해야 경제 성장도 가능”

“대선 때마다 준사법기관인 검찰이 판정을 내려야만 하는 상황 자체가 불행한 거예요.”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측 공동선대위원장인 강금실(50) 전 법무부 장관은 “다음 대선에선 정말 검찰 수사가 필요없었으면 좋겠다”고 거듭 말했다. “외신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겠느냐”는 것이다. 강 전 장관은 이번 대선의 키워드로 경제·반부패·평화 세 가지를 꼽았다. 법무장관 출신답게 특히 반부패 쪽에 말의 무게를 실었다.

“국민이 가장 원하는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부패를 철저하게 청산해야 돼요. 공적 영역을 투명하게 하지 못하면 경제 성장을 이끌어낼 주체를 제대로 만들 수가 없어요.”

그는 2002년 대선의 시대정신으로 ‘민주 개혁’을 꼽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에 권력기관 개혁과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대선자금 수사를 통해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도 했다. 강 전 장관은 “그런 측면에서 거의 1년 동안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 문제가 계속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 매우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그것도 본선에서 다른 정치세력이 들고 나온 것이 아니라 이미 한나라당 경선 초기부터 의문이 제기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이 후보의 지지율 고공 행진을 어떻게 설명할까. “이 후보가 경제 이미지를 심는 데 일정 부분 성공한 게 사실이죠. 그러나 참여정부에 대해 돌아선 국민의 마음이 후보들의 개별 경쟁력을 보지 않도록 만든 측면이 더 크다고 봐요.”

그는 이 후보에 대한 지지는 시대정신 보다는 과거에 대한 평가가 만든 지지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선은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선거’라는 것이다. 누굴 찍어야 할지 고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이 후보에 대해 “공적·사적 영역을 혼동하는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기업에서처럼 명령하는 방식으론 조정·통합의 리더십을 이룰 수 없다”는 공격도 했다. 그는 이어 “지금 나온 후보 중에서는 정 후보가
세 가지 시대정신에 가장 맞는 후보”라고 주장했다.

반부패·평화는 그렇다 치더라도 경제에서까지 정 후보가 시대정신이라고 말하는 근거가 궁금했다. 그는 “참여정부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이번 대선에 지배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이것이 정 후보에 대한 평가로 이어지는 측면이 강하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국민의 구체적인 삶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선 이제 양적인 경제 성장만 가지고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과거엔 출산·보육·주거·노후 문제 등을 가족 내부에서 해결했지만 지금은 정부·사회가 많은 부분에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성 강화란 측면에서 한나라당 소속의 이 후보보다는 신당의 정 후보가 적합하다는 주장인 셈이다.

그의 말처럼 정 후보가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후보라면 그의 지지율은 왜 그렇게 오르지 않는 것일까. “우선 참여정부 심판론을 극복해야죠. 또 신당은 열린우리당·한나라당·민주당·시민사회 출신이 모여 8월에 만든 정당이에요. 대선 후보 경선은 10월에야 끝났죠. 개인이 새로 가정을 꾸리더라도 일체감을 갖는 데 시간이 필요한데, 물리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에요.”

강 전 장관은 3일 뒤늦게 정 후보 선대위에 합류했다. 그는 “그동안 범여권 후보 단일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며 “더 이상 시간을 늦춰선 안 된다는 생각에 합류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강금실 위원장 약력 서울대 법대-법무부 장관-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법무법인 우일아이비씨 고문변호사

이상렬·김선하 기자 isang@joongang.co.kr, 사진= 신동연·최정동·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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