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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줄줄이 금융업에 진출하는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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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신동빈 롯데 부회장은 금융업에 관심이 많다. 그는 사회 첫발을 1981년 일본 노무라증권의 런던지점에서 내디뎠다. 그는 틈 날 때마다 “서비스 산업이야말로 돈이 된다”며 “계기가 되면 금융업을 크게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97년 롯데 부회장에 오른 뒤 여러 차례 금융업 진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조건이 맞지 않아 번번이 무산됐다. 그러던 중 2002년 동양카드(현 롯데카드) 인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때부터 롯데그룹의 금융업 기반이 마련됐다.

 신 부회장의 금융업 확대 구상은 그룹 내 정책본부장을 맡은 2004년부터 더 구체화했다. 그룹 내에 태스크포스(TF) 팀을 만들어 증권업 진출과 보험사 인수를 추진했다. LIG생명 인수의향서를 제출하고 랜드마크자산운용 매각 입찰에 참여하는 등 금융업 인수에 공을 들였다. 7일 대한화재 인수는 그런 노력의 결실이다. 그러나 그의 금융업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업계에선 롯데그룹의 주력에 금융이 새 축으로 자리 잡을 날이 멀지 않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잇따른 대기업의 금융업 진출, 왜?=금융사에 관심이 있는 것은 롯데뿐만이 아니다. 농심·한국야쿠르트 등 식음료 회사도 각각 농심캐피탈과 플러스자산운용사를 계열사로 편입했다. 2002년 대한생명을 인수한 한화는 그룹 매출의 절반 이상이 대한생명에서 나온다. 금융 부문이 한화 계열사 전체 매출액 21조원 중에서 12조3000억원, 순이익은 1조1000억원 가운데 4200억원을 차지한다.

 현대캐피탈·현대카드를 갖고 있지만 현대차는 추가로 국내는 물론 미국·중국 등 해외 금융업체 인수를 적극 타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현대차 그룹이 최근 매물로 떠오른 대형 증권사 인수에 뛰어들 것이라는 소문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고 전했다. 효성그룹도 올 6월 미국 론스타로부터 스타리스를 3023억원에 사들였다. 효성의 금융 사업 비중은 20% 이상으로 커졌다.

 ◆"돈 벌 곳이 없다”…금융업이 돌파구=신격호 롯데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우리 사회의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며 “핵심 사업 분야에 있어 국내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라고 말했다.

 롯데는 기존 핵심 사업 분야인 식품, 유통·서비스, 중화학·건설 3개 축 외에 최근 금융을 새 성장 축으로 넣었다. 내수 중심의 사업 구조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백화점 부문의 연간 매출 성장률은 5% 미만이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사실상 정체다. 올 3분기까지 롯데쇼핑 유통 부문은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1.5% 늘어나는 데 그쳤다. 롯데로선 해외로 적극 나가든가, 아니면 국내에서 새로운 성장산업을 찾아야 했다. 이번 롯데의 대한화재 인수에는 ‘미래의 먹거리’를 찾는 절박함이 담겨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한국경제연구원 이태규 박사는 “경쟁이 나날이 격해지는 제조업 분야는 물론 유통·건설 등도 성장이 둔화되고 있다”며 “대기업들로선 신수종 사업 발굴이 절실해진 셈”이라고 말했다.

 ◆금융사, “유통·제조사 진출 위협적”=금융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유통회사는 엄청난 고객 데이터베이스(DB)를 바탕으로 강력한 마케팅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대한화재는 당장 연간 500억원 이상의 롯데 계열사 일반보험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며 “여기에 백화점·할인점·신용카드사 등을 활용하면 곧 손보업계 하위권(지난해 점유율 2.7%)에서 5위권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수석연구원은 “아시아 금융시장이 급성장하고 제조에서 금융 쪽으로 주도권이 넘어가는 선진국형 산업 구조로 바뀌고 있다”며 “대기업의 금융업 확대 전략은 이런 추세를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표재용·이현상·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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