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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호의 컴퓨터 이야기] 장애우를 돕는 컴퓨터 기술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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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 27면

20년 전 대학생 때 이야기다. 선교단체에서 컴퓨터와 기본적인 컴퓨터프로그램을 가르쳐 달라고 해 선뜻 동의했다. 하지만 대상이 시각장애우였다. 순간 당황해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막막했다. 궁금증도 생겼다. 이 사람은 앞이 보이지 않는데 왜 컴퓨터를 배우려 할까?

“컴퓨터는 문명의 이기입니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리가 없다고 차를 운전할 수 없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의 답변에 순간 부끄러워졌다. 시각장애우도 컴퓨터를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한 것이다. 지난달 MS사 초청 소프트웨어 토론회에서 눈밖에 움직일 수 없는 장애우를 둔 한 어머니가 애처롭게 질문을 했다.

“MS사는 장애인을 위해 무엇을 해주었나요. 또 무엇을 해줄 수 있나요.”

그림=인태환

돌아오는 동안 머릿속엔 이 질문이 뱅뱅 돌았다. 나는 컴퓨터 학자로 장애우를 위해 뭘 했을까. 해서 지금까지 개발됐거나, 진행 중인 장애우 관련 컴퓨터 기술을 알아 보았다.

우선 신체 내장형이다. 현대 의학이 발달함에 따라 의료보조기(보조 다리·손·팔·손가락)가 널리 쓰이고 있다. 작은 칩 크기의 컴퓨터가 의료보조기 안에 내장돼 사람의 움직임을 더욱 자연스럽게 제어한다. 예를 들면 걸을 때와 뛸 때 무릎 관절이 벌어지는 각도를 구별해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의족이 개발돼 있다. 이런 의족을 끼면 움직임이 진짜 다리로 걷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눈·귀에 이상이 있지만 신경만 살아있는 장애우에게는 작은 카메라(인공 눈)와 스피커(인공 귀)가 도움을 줄 것이다.

이들 인공기구가 전기신호를 생체신호로 바꿔 신경과 연결해주기 때문에 어렴풋이 보고 들을 수 있다. 인공 눈의 경우 아직은 흑백으로 보이고 물체 형태나 겨우 알아볼 정도이지만 바이오칩이 더 발달된다면 사이보그 수준까지 발전할 것이다.

환경 지원형도 있다. 미국 영화에서나 보던 전동휠체어가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보편화됐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눈의 움직임을 파악하여 몸을 전후좌우로 조절할 수 있는 기술까지 개발됐다. 눈조차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하는 근전도나 또는 뇌파를 측정해 기구를 조절하는 방법에 기대를 걸어봐도 좋다. 치매 환자에게 특수장치가 달린 손목시계나 목걸이를 부착해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장치는 이미 상용화됐다. 일본에서는 더 진전된 유비쿼터스 기술이 시범 운용되고 있다. 보도블록에 설치된 전자식별장치가 시각장애우의 지팡이에 보낸 무선신호가 다시 지팡이에 연결된 이어폰으로 전해져 길안내를 하는 식이다. 애완용 강아지로봇이 장애인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도우미가 될 날이 곧 오지 않을까 한다.

정보를 다양한 입출력 형태로 바꿔주는 연구도 있다. 글을 자동으로 읽어주는 시각인식 기술과 음성합성 기술은 시각장애우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것이다. 변하는 그림을 만질 수 있는 감각 모니터(Touchable Monitor) 기술은 기존의 점자 책을 대체할 전망이다.

컴퓨터는 분명 문명의 이기다. 누구나 이를 쉽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장애가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게 하는 컴퓨터기술이 만들어져야 한다. 누구나 장애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이 좀 더 큰 관심을 갖고 장애우와 그 가족들을 위해 컴퓨터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정부도 연구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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