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호날두 같은 축구영웅이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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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현지시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연습 경기장을 찾은 어린이들이 박지성(앞줄 왼쪽에서 둘째) 선수에게 사인을 받은 뒤 함께 기념 촬영을 했다. [맨U 제공]

초등학교 6학년 김창현(12·가명·경기도 고양시)군은 축구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다. 그러나 창현이는 축구를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창현이 어머니는 1998년 아버지와 이혼했다. 지체장애 4급인 어머니가 희귀질환인 다카야스 동맥염까지 앓게 되자, 가계가 기울었고 부부 사이에도 금이 갔다. 다카야스 동맥염에 걸리면 시시때때로 혈압이 오르고 호흡이 가빠져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다. 어머니는 정부 보조금 50만원으로 창현이와 동생(초등 3학년)을 키우고 있다. 그런 창현이에게도 기회가 왔다. 2년 전, 국제 구호단체 월드비전이 불우한 어린이들을 위한 축구 동아리를 고양·군산·정읍에 만든 것이다.

토요일인 지난달 17일, 평소처럼 동아리를 찾은 창현이는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박지성이 소속된 잉글랜드(영국) 프로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U)에 초청됐다는 소식이었다. 웨인 루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라이언 긱스 등 스타들이 즐비한 팀. 축구를 좋아하는 어린이들에게 맨U는 그 자체가 ‘꿈’이다.

창현이는 1일 영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인천공항행 버스에 올랐다. 창현이의 주머니에는 어머니가 준 만원짜리 지폐 3장이 들어 있었다. 창현이는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날 뻔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고양과 전라북도 군산과 정읍에서 창현이처럼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 11명이 모였다. 맨U의 타이틀 스폰서인 글로벌 보험사 AIG가 구단에 요청해 ‘한국의 날’을 지정받았고, 이날을 기념해 회사 측이 월드비전에 협조를 얻어 아이들을 초청했다. 행사는 2~3일, 이틀간이었다.

현지 시간 2일, 아이들은 구단 연습장을 찾았다. ‘영웅’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호날두, 루니 같은 수퍼스타들이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고 유니폼에 사인을 해줬다. 박지성은 따로 시간을 내 아이들을 만났다. “어떻게 하면 축구를 잘하냐”는 아이들의 질문에 박지성은 “남들보다 뚜렷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잠깐의 만남 뒤 박지성은 “나는 부족함 없이 자랐기 때문에 아이들 마음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며 “맨U 체험이 더 큰 꿈을 꿀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이라이트는 다음날인 3일 이었다. 맨U와 풀럼의 정규리그 경기에 아이들이 직접 참여하는 행사였다. 막내 김성순(9·가명)이 마스코트로 선정됐다. 이날 경기의 주장을 맡은 긱스가 성순이의 손을 잡고 경기장에 입장했다. 하프타임 행사 때는 11명 모두가 페널티킥을 찼다. 맨U 홈구장 올드 트래퍼드에 모인 7만여 관중이 아이들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경기 후 아이들은 “긱스와 잡은 손이 어느쪽 손이냐”고 물었고, 성순이는 “죽을 때까지 씻지 않을 것”이라고 호기롭게 얘기했다.

성순이 어머니는 “돈이 없어 결국 포기할텐데, 축구를 그만두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맨U 체험 소식을 듣고, “여행가려면 필요하지 않겠냐”며 작은 가방을 사줬다.

맨U 체험은 아이들만의 행사가 아니라 가족 모두의 기쁨이었다. 전라북도 정읍의 사회복지사 손상훈씨는 영국에서 돌아온 아이들 얼굴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한다.

“아이들 얼굴에서 주눅든 표정은 사라지고 자신감이 넘쳐났다. 아이들이 축구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그려본 것 같다.”

맨체스터(영국)=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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