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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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떠난 자와 남은 자(61) 명국이 무겁게입을 열었다.
『화순아.네가 이러면 나는 어쩌라는 거냐?』 흘러내리는 눈물을 두 손으로 볼에 비벼대며 화순이 캄캄하게 어두워진 바다를 내려다본다.그녀는 어깨를 흔들며 흐느끼고 있었다.
『사람대접 받는다는 게 어떤 건지 아시기나 하세요,아저씨가 알기나 하냐구요? 나같은 거 누가 사람대접 해주던가요? 목숨이질겨서 살았지 사람대접 받아서 산줄 아세요?』 얼굴을 가렸던 손을 힘없이 무릎 위에 떨어뜨리면서 화순이 중얼거렸다.
『술 처먹고,울고,그러다 매맞아 멍들면서… 그러겠지요.나 같은 년이 그렇게 살아야지요.그게 아저씨가 나한테 하고 싶었던 말 아니던가요.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답니다.사내 보내놓고 나서그걸 못 이겨… 술 처먹고 울면서 마음 못잡을 거면 차라리 따라나서자.왜? 나도 사람이니까,나도 사람이라는 걸 그 남자가 가르쳤으니까,사람이니까 차라리 따라나서자,그랬던 겁니다.내 생각만,이게 내 생각만 한 건가요? 이것도 욕심인가요?』 명국이옆에 놓았던 목발 하나를 집어들어 땅에 꽂듯이 내리쳤다.어금니를 물며 그는 눈을 감았다.정이었구나.첫정이었구나.험하게 산 세월이 있으리라 짐작은 했다마는… 겨우 이제 길남이 만난 게 첫정일 줄은 몰랐구나.낡고 해져서 펄럭이 면서 여기까지 밀려와,헐벗고 산다고는 생각했다만.사내들쯤에게야 밟혀도 다시 돋는 풀인 줄 알았었다,나는 너를 말이다.우는 걸 보니 이제 알겠구나. 제 맘으로 저를 어쩌지 못하는 거 그게 정이라는 거 아니더냐. 어둠 속으로 화순의 흐느낌이 번져나갔다.
『다시는 나한테,이 복 없는 년한테 이런 남자는 없다.뭘 달라면 못 주랴.이 몸을 달라면 잘라서는 못 주랴,팔아서는 못 주랴.그런 마음을 누가 안단 말이오.내가 갈보짓을 해서라도 너만은 배추 속살처럼 살게 하리라.세상 때묻지 않게 내가 내 몸은 못해냈어도 너한테만은 해낼 거다,칠팔월 삼밭 같은 남자로 그렇게 살게 해 주마,그런 마음이었소.』 어깨를 떨면서 화순이덧붙였다.
『그러나,아저씨까지 나서서… 네가 누군데 어딜 더럽히냐 하신다면,돌아서야지요.정 그렇다면 버려야지요.난 날 버리려고,그래서 그애 한몸 세워보려고 했던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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