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선의악용하는 사회-뺑소니가 피해자에 돈뜯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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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서울 구로구오류동에서 조그만 공장을 경영하는 유승원(柳勝元.
35)씨는 최근 승용차가 택시에 받혔는데도 오히려 뺑소니로 몰려 돈을 뜯겼다.그러고도 또다른 「피해자」가 나타나 돈을 요구하자 목격자찾기에 나서 자신의 무혐의를 입증해 내 고 누명과 피해를 벗어났다.그러나 그러기까지 보름동안 당했던 고초를 떠올리면 지금도 기가 막힌다.
자기가 사고를 내고도 허위진단서를 떼 돈을 뜯은 택시운전사,사고와 전혀 관계가 없으면서 승객이었다고 나서 돈을 뜯어내려한또다른 운전사,주먹구구인 경찰조사,멀쩡한 사람에게 전치3주 진단서를 발급한 병원의 비양심등 말로만 듣던 우리 사회의 구조적비리를 뼈저리게 확인했기 때문이다.
柳씨는 지난달 12일 새벽 승용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다 서울구로구개봉3동 철산교앞 교차로에서 택시(운전사 李은재.43)에 받혔다.
신호등 없는 교차로에서 사방을 충분히 확인한뒤 진입했지만 옆에서 쏜살같이 달려온 택시가 자신의 차 왼쪽 뒷문을 들이받은 것이다. 택시운전사는 곧바로 삿대질을 하고 욕설을 퍼부으며 뛰어나왔다.
자신이 먼저 교차로에 진입했으므로 잘못이 없다고 생각한 柳씨는 『그럼 경찰서로 가자』며 앞서 차를 몰았지만 뒤따라오던 택시는 슬며시 사라져버렸다.
柳씨는 「택시운전사가 자기과실이고 앞범퍼만 조금 찌그러졌으니그냥 간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고 이틀뒤인 14일 柳씨는 구로경찰서로부터 출두통고서를 받았다.택시운전사 李씨가 전치3주 진단을 끊어 柳씨를 뺑소니로 신고한 것이다.
입원까지 했다는 말을듣고 미안한 생각에 운전사 李씨가 입원했다는 강동구명일동 B정형외과 를 찾아갔지만 李씨는 병실에 없었고,30분쯤뒤 연락을 받고 나타나 『4백만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협상도중 두차례 더 병원을 찾아갔지만 그때마다 李씨는 병실을 비웠다가 연락을 받고야 나타났다.
옆문짝이 망가진 자기차의 수리비는 12만원이었는데 앞라이트가조금 깨진 택시수리비 견적이 14만원으로 적혀있는걸 보고 기가막혔지만 뺑소니로 몰렸고 보험도 안든데다 상대방이 입원해 있으니 柳씨는 울며 겨자먹기로 합의금 2백30만원 을 줬다.
그런데 합의가 끝나자 같은 병원에 입원해있던 한철수(韓哲洙.
46.무직)씨가 난데없이 『내가 택시에 타고있던 승객』이라며 2백만원을 요구해왔다.
柳씨는 어처구니 없었고 참다못해 20일 사고현장에 「목격자를찾는다」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이틀뒤 실제 택시승객이었던 朴모(19)군이 나타나 『택시가 잘못했고 다친데는 아무데도 없다』고 사실을 증언했다.뒤늦게 재수사가 이루어져 택시운전사 李씨와 친구 韓씨는 공갈혐의로 모두구속됐다.
그러나 어떻게 멀쩡한 사람들이 전치3주나 필요한 환자로 둔갑했을까.진단서를 발급한 B병원의사 朴모(39)씨는 『교통사고를당해 허리.목이 심하게 아프다고 했고 X레이촬영결과 목부위가 「긴장」을 받은 것으로 판단돼 진단서를 발급했다 .환자들이 입원을 원하면 어쩔수 없는것 아니냐』고 했다.
하지만 柳씨는 병원에 갈때마다 연락을 받고나타나던 운전사 李씨를 생각하면 도대체 의사들이 그렇게 무책임할수 있는건지 울화통만 치밀 뿐이다.
〈金鴻均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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