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佛여류지성 전기.자서전 나란히 출간-시몬 베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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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프랑스와 영국 여성계 뿐만 아니라 세계 여성계의 대표적 지성인으로 손꼽히는 프랑스 정치가 시몬 베유(67)와 영국 작가 도리스 레싱(75).인권운동가이기도 한 두 지성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담은 전기와 자서전이 영국과 프랑스.미국에 서 나란히 출간됐다.프랑스의 저명한 전기작가 모리스 자프랑이 쓴 『시몬 베유:그 숙명』(원제 Simone Weil:Destin,Flammarion 刊)과 도리스 레싱이 직접 쓴『나의 속마음1』(원제 Under My Skin:Volu me 1 of My Autobiography,to1949.Harper Collins刊)이 화제의 책.시몬 베유는 2차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유대인수용소에 억류됐다 극적으로 살아남아 79년 유럽의회 의장에 당선된 여걸이며 도리스 레싱 은 한때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필명을 날렸던 소설가다.
시몬 베유 프랑스보건장관은 74년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에 의해 보건장관으로 처음 입각한 이래 프랑스 국민의 영원한 어머니상으로 추앙받을 정도로 줄곧 흐트러짐 없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5년 뒤인 79년에는 유럽의회 의장으로 선출 돼 급기야 유럽정치인으로 부상하기에 이르렀고 지난해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가 들어서면서 다시 보건장관으로 입각했다.
1927년 니스에서 태어난 그녀는 유대인이면 누구나 그러하듯부모가 유대인임을 숨기려 들지 않았기 때문에 일찍부터 자신이 유대인임을 자각했다.특히 아버지 앙드레 베유는 유대인의 문화유산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도덕문제에 대단히 엄했던 아버지와는 달리 어머니 이본은 살아있는 성인이라 불릴 정도로 자상했다고 한다.화학공부를 하던중 아버지를 만난 어머니는 그후에도 직업을 갖기 위해 계속 공부하려 했지만 네명이나 되는 자녀 때문에 포기하고 만 다.
여성으로서 짊어져야 하는 굴레로 고민하던 어머니를 보면서 베유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를 배웠다고 고백한다.그때 곁에서 본 어머니상이 너무나 깊이 각인돼 지금도 베유는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어머니를 꼽는 데 주저 하지 않는다. 베유장관이 어머니등 가족과 함께 나치에 체포된 것은 정확히1944년3월30일 일요일.그녀의 가족은 곧바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가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야 했다.그녀의 죄수번호는「78651」.
그녀의 어머니는 비록 육체적으로는 약했지만 정신력과 용기만은대단했다.수용소 내에서도 베유의 어머니는 부모를 먼저「죽음의 공장」으로 보낸 아이들을 일일이 돌봐줬다고 한다.베유의 가족은45년1월까지 기근과 추위에서도 용케 살아남아 아우슈비츠에서 그리 멀지않은 보브렉 수용소로 옮겼다가 다시 소련군에 밀려 이동한다. 베유는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혹한 속에서도 건드리면 쓰러질 정도로 허약해진 어머니를 부축하고 벨젠으로 이동했다.도중에 많은 사람이 눈위에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눈에 묻혔다.벨젠 수용소에서 그녀의 어머니는 해방을 몇 주 남겨놓고 그만 발진티푸스로 눈을 감는다.그 와중에서도 어머니와 함께 했던 안온함을 못잊어 베유장관은 결혼하면 꼭 딸을 낳겠다는 희망을 품는다.결국 아들만 셋을 두었지만.
그녀가 74년 가톨릭 교세가 강한 프랑스에서「낙태법」을 통과시키는 등 활발한 여권운동을 펼치면서도 일반인들에게 호전적인 인상을 풍기지 않는 것도 수용소 생활에서 체득한 인생관에서 비롯됐다.인간은 누구나 선과 악의 요소를 두루 지니 고 있기 때문에 중용이 최고의 미덕이라는 판단에서 그녀는 좀처럼 과격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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