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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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떠난 자와 남은 자(59)『신발 속에 똥담고 다니는듯이 그저 키도 부쩍부쩍 크고 그래.밥값은 해야 할거 아닌가.
충청도집 아저씨가 화순이를 데리고 온 후 했던 말처럼 그녀는나이에 비해 키가 일찍 자랐다.다만 몸에 살이 붙지 않아서 칠성댁은 혀를 차곤 했다.
『넌 어쩌다가 하늘 높은 줄만 아냐.땅 넓은 줄도 좀 알아서옆으로도 좀 퍼져야 할 거 아니더냐.』 『아줌마처럼요.』 『이년아,나야 쉰내가 풀풀 나는 사람이니까 아무려면 어떻냐만,무슨애가 그렇게 배배 꼬여서 위로만 크니까 하는 얘기지.』 『드문드문 걸어도 황소 걸음이래요.』 『뭐 어째,이게 말하는 것 좀봐.』 『듣기 좋은 육자배기도 한두번이지,아줌마는 할 말 없으면 나 보고 살쪄라 살쪄라 하니까 그렇지요.건데기 먹은 사람이나 국물 먹은 사람이나 때되면 배 고프기는 마찬가지래요.』 『그건 또 무슨 소리?』 『소장수 다닌다던 아저씨,그 텁석부리 아저씨가 그러던데요.』 『그 흉하게 생긴 놈은 애 데리고 별소릴 다 하네.그건 그렇다 치고,그게 너 비썩 마른거 하고 무슨상관이라든?』 『제 복 제가 타고 나는 거고요,사람은 다 제 갈길이 있대요.』 『그 흉헌 놈이? 허이구,말은 좋아.그런 놈이 왜 변호사 안하고 소장수를 헌다든.』 김을 뿜어올리며 국이끓고 있는 무쇠가마를 한번 들여다보던 칠성댁이,갑자기 정색을 하며 화순이에게 몸을 돌렸다.요년이 어린 나이에 벌써 달마다 이슬을 안 하나…눈꼬리 돌리는 게 만만치가 않네.혼자 생각을 곱씹으며 칠성댁이 말했다.
『너 이년 팔뚝만 한 게 벌써부터 손님들하고 말대거리하고 그러지 말어.요즘은 하는 일도 보면 꼭,풀베기 싫은 놈 단 수만센다더니 네 꼴이 바로 그 꼴이야.그리고,투덕투덕 계집이라는 게 살도 붙고 그래야 복도 붙는 거지,그렇게 배 배 꼬여가지고거기 뭐가 거느릴 게 있겠니.』 히히거리며 화순이 웃었다.
『크면 태가 좋을 거라던데요.』 『뭐야? 태? 아이구 이 일을 어째.서방 만나서 살면 되는 게 계집 팔자지,쥐방울만한게 태는 무슨 얼어죽을 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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