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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아이들을 공격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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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이오주 셰이커하이츠에 있는 머서 초등학교. 오후 1시 레나 파스큐위츠 선생의 아이들이 신나는 점심시간을 기다리며 즐겁게 재잘거린다. 칼레이 레이켄(6)은 엄마가 맛있게 싸준 분홍색 헬로 키티 점심 가방을 들고 왔다.

딸기 요구르트, 기다란 스트링치즈, 몇 가지 야채, 쿠키. 그런데 아이들이 즐겨 먹는 주식이 빠졌다. 땅콩버터 젤리 샌드위치가 안 보인다. 칼레이는 생후 7개월밖에 안 됐을 무렵 땅콩과 나무 견과류 알레르기 진단을 받았다. 머서 구내식당의 이 아이 자리에서 견과류는 절대 금지다.

알레르기 없는 친구들의 합석은 허용되지만 특수함에 보관된 그들의 도시락을 교사가 꼼꼼하게 점검한 뒤에야 가능하다. 칼레이의 집도 견과류 금지구역이다. 최근 핼로윈데이를 맞아 동네를 돌아다니며 ‘과자를 안 주면 장난 치겠다’는 놀이를 할 때도 어느 의상보다 사탕이 더 무서웠다.

땅콩 잔여물에 오염됐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칼레이 말고 다른 두 자녀까지 알레르기가 있는 엄마 에리카 프리드먼에게 음식은 가끔 적군처럼 느껴진다. “모든 계획을 세운다”고 프리드먼이 말했다.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키는 게 우리 일이다. 실은 모든 사람의 일이다.”

식품 알레르기가 의학계의 관심을 못 끌었던 시절이 있었다. 현재는 미국인 약 1100만 명이 식품 알레르기로 고생하며 점차 그 수가 늘어난다고 말하는 과학자가 많다. 가장 중요한 점은 1997~2002년 다섯 살 미만의 어린이에게 무서운 알레르기 중에서 땅콩 알레르기가 두 배로 늘었다는 사실이다.

“어린이의 경우 분명 수가 늘었다”고 마운트시나이 의대(뉴욕)에서 선구적으로 식품 알레르기를 연구하는 의사 휴 샘슨이 말했다. “장차 전체적으로도 더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알레르기 전문가들은 우유와 밀가루 같은 1950년대의 주식뿐 아니라 그 뒤로 미국인 식탁에 자리 잡은 참깨와 키위 같은 세계 식품에도 이상반응을 보이는 복합 알레르기 어린이가 전에 없이 늘었다고 말했다. 어린이가 자라면서 대부분 저절로 낫는 달걀 알레르기 따위도 과거보다 더 오래가는 듯하다.

아주 어린 자녀를 둔 부모는 새 식품이 소개될 때마다 신경이 곤두선다. 발진이나 설사, 구토 등 증세의 첫 조짐이 나타나지 않나 살펴야 한다. 알레르기로 숨지는 경우는 드물지만 매우 민감한 아이가 음식에 잘못 노출되면 목구멍이 팽창하면서 완전히 막히기도 한다.

자녀에게 알레르기가 없다고 해도 자녀의 친구나 급우들에게 무심코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요즘은 유제품이 들어가지 않은 생일 케이크가 필수품이며 땅콩이 빠진 핼로윈 파티도 마찬가지다.

알레르기 환자가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 “위생설”이라는 별칭이 붙은 가장 흥미로운 이론은 우리가 지나치게 깨끗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면역체계는 기생충이나 바이러스, 감염 같은 위험한 외부 침입자와 싸우도록 설계됐다. 그런데 깨끗한 물, 항생제, 백신 등으로 몇 가지 해로운 도전자가 제거됐다.

심지어 지난 10년 동안 40% 증가한 제왕절개술로 태어난 아이가 알레르기에 걸릴 위험이 높다고 가정하는 흥미로운 연구도 있다. 아마도 엄마의 산도(産道)를 지나면서 건강한 박테리아에 노출된 적이 없기 때문일지 모른다. 심각한 적이 없기 때문에 면역체계는 대신 해롭지 않은 계란이나 밀 따위와의 전투를 시작한다는 이론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식품 알레르기의 증가에 적응해야 하는 형편이 됐다. 알레르기에 걸린 어린이는 심한 증세를 일으킬 경우 투여할 에피네프린이 든 주사 같은 휴대용 에피펜을 가지고 다닌다. 머서 초등학교 등 많은 학교가 “땅콩 금지구역”을 지정했다. 그곳에선 알레르기 학생이 마음 놓고 식사해도 된다.

알레르기 지침을 수립하는 주도 늘어난다. 식품 제조업체는 지난해 시행된 연방법 덕분에 자사 식품 라벨에 가장 흔한 항원 여덟 가지(우유, 생선 등)를 명기한다. 승객에게 땅콩 대신 프레첼을 대접하는 항공사도 많다.

과학자들이 알레르기 발발 과정을 기본적으로 이해하기는 하지만 면역체계라는 벽 앞에서는 손을 들 수밖에 없다. 그것은 과학자들이 조종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식품 알레르기의 치료법은 없다. 일부 증세의 치료법만 있을 뿐이다. 학부모와 자녀가 취할 최선의 대책은 범인을 피해 다니는 일이다.

땅콩: 미국인 180만 명이 땅콩을 먹지 못한다. 피칸이나 아몬드 등 나무 견과류를 먹지 못하는 미국인도 180만 명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연구에 흥미로운 진전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연구원들은 급진적인 방법을 생각한다. 식품 알레르기 증세를 치료하거나 심지어 예방이 가능한지 보려고 미리 해로운 성분에 노출시킨다는 발상이다. 한 연구에서는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 어린이에게 소량의 땅콩가루를 주고 면역이 생기는지 조사했다.

국립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는 2005년 1700만 달러를 들여 5개년 계획의 ‘식품 알레르기 연구 컨소시엄’(CoFAR)을 출범시켰다.

이 컨소시엄이 지원한 또 다른 연구에서 연구진은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 성인에게 가공한 소량의 땅콩 단백질을 복용시켜 알레르기 반응을 막고 또 잘되면 문제를 제거할 생각이다. 요컨대 땅콩 알레르기 백신 개발이 궁극의 목표다. 이것을 연구하는 샘슨에게는 해법 탐구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상황이 급하다”고 그는 말했다.

땅콩버터 샌드위치, 따뜻한 초콜릿칩 쿠키, 차가운 우유 한 잔 등 어린 시절의 즐거움이 어떻게 작은 신체를 전투태세로 돌입시키는지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어떻게 한 입만 먹어도 목구멍이 가렵고 입술이 부풀며 배가 고통스러운 경련을 일으킬까?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로부터 우리를 지키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면역체계가 어떻게 건강에 좋은 영양소를 적군으로 간주할까?

레이크포레스트(일리노이)에 사는 브라이언 버닝(13)과 대니얼(11) 형제는 그렇게 당하는 기분을 잘 안다. 브라이언은 생후 6개월 무렵 우유로 만든 분유를 한 모금 먹고 몸이 저항했다. “입술이 부풀고 눈동자가 뒤집어졌다”고 엄마 드니즈가 말했다.

두 소년이 먹지 못하는 식품 목록을 보면 달걀, 나무 견과류(캐슈, 호두, 아몬드, 개암 포함), 우유, 조개나 갑각류 등이 있다. 대니얼은 지난 3월 알레르기 관련 식도병 진단을 받았다. 그래서 사과와 베이컨만 먹어야 한다. 이제는 대부분 영양소를 튜브를 통해 흡수한다.

“파티에 가면 정말 괴롭다. 친구들이 맛있다면서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먹는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고 대니얼이 말했다. “걔들이 ‘대니얼, 이거 정말 맛있어’라고 말하면 ‘난 식품 알레르기 때문에 못 먹어’라고 대답한다.”

유제품: 미국인 90만 명이유제품 알레르기 환자다. 이 알레르기는 젖당 내성 결핍과는 달리 소화기관이 아니라 면역체계에 영향을 미친다.

정확히 무엇이 식품 알레르기를 일으키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유전자 조합(알레르기는 유전성이다)과 환경이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알레르기에 걸리기 쉬운 사람이 꽃가루나 땅콩 같은 물체를 만나면 일련의 사태가 시작된다.

신체는 그것을 문제로 인식하고 1단계 공격을 시작한다. IgE(면역글로불린E)라는 항체의 생산이다. 이 분자들은 허파, 창자, 피부, 입, 코, 굴(몸속의 텅 빈 공간) 주변에 있는 비만세포에 들러붙는다.

그 사람이 다음에 꽃가루나 땅콩을 만날 경우 비만세포들이 전쟁 준비를 하면서 히스타민 같은 강력한 화학물질을 내보낸다. 그것이 재채기, 위경련, 가려움, 코막힘, 팽창, 두드러기 따위의 고약한 알레르기 증세를 일으킨다.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항원에 맞서는 반응이 갑작스럽고 격렬하면 기도가 완전히 닫히면서 혈압이 떨어지고 아나필락시스(과민증) 증세가 일어나기도 한다. 이때 기도를 열고 심장기능을 증진시키는 호르몬(에피네프린)으로 즉시 치료하지 않으면 쇼크사 하는 수가 있다.

알레르기의 원인을 알아내려는 흥미로운 연구가 진행되면서 위생설이 신빙성을 얻어간다. 연구 결과 농장에서 자란 어린이는 끊임없이 흙이나 짐승과 접촉하기 때문에 알레르기에 걸릴 가능성이 낮다. 10월 초 출간된 캐나다의 연구 결과도 농촌 어린이가 천식에 걸릴 위험이 낮음을 보여줬다.

듀크대 과학자들은 이 현상을 분자 수준에서 연구했다. 기생충과 질병에 감염된 야생 설치류 짐승과 실험실에서 자란 깨끗한 사촌들의 면역체계를 비교했다. 연구원들은 알레르기 반응을 모의실험하는 환경에서 동물의 면역세포를 페트리 접시에 담은 뒤 면역체계 자극제로 알려진 식물성 단백질을 투여하고 세포의 반응을 관찰했다.

지난해 그 결과가 발표됐다. 실험실 설치류 동물의 면역반응이 야생 친척들보다 훨씬 높았다. 실험실 동물의 면역체계는 지나치게 열심히 일했다. 자극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은 야생동물 혈액의 항체 수치는 높았다. 이미 훨씬 더 무서운 적들과 싸운 경험이 있으며 시시한 녀석은 상대하지 않는다는 증거였다.

“야생동물은 알레르기에 걸리지 않는다고 생각된다”고 조사를 지휘한 윌리엄 파커가 말했다. “무서운 간기생충과 싸우느라 꽃가루 따위에 신경 쓸 시간이 없다.” 과학자들이 치료법을 발견하는 데는 결국 기생충이 도움이 될지 모른다고 파커가 말했다.

연구 결과 과민성대장증후군이 있는 환자는 돼지편충이라는 기생충에 노출되면 증세가 개선되기도 했다. 파커는 알레르기에 걸린 어린이에게도 그 비슷하게 통제된 노출을 통해 “면역체계를 좋은 방향으로 자극하는” 방법이 통할지 알아내고 싶어 한다. 아직은 그런 연구를 한 사람이 없다. 그러나 이론적으론 “매우 유망하다”고 그가 말했다.

면역체계를 손봐서 우군과 적군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언제나 식별해내는 법을 터득하게 하는 일이 모든 면역학자의 꿈이다. 안타깝게도 연구원들이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에는 여전히 지식이 부족하다. 면역체계를 덜 민감하게 만들어 어린이가 알레르기 유발 식품을 좀 더 잘 받아들이게 하면 어떨까?

면역요법이라는 그 의술은 건초열 같은 계절성 알레르기의 표준 치료법으로 자리 잡았다. 환자는 문제를 일으키는 물질(잡초나 나무 꽃가루)을 소량 함유한 알레르기 주사를 맞으면서 양을 점차 늘려간다. 그렇게 해서 면역체계가 점점 항원에 익숙해진다.

연구원들은 식품 알레르기에도 주사를 통한 면역요법을 실험했으나 안전하지는 않았다. 환자가 두드러기나 기타 좋지 않은 반응을 일으킬 소지가 있었다. 듀크대 의사 웨슬리 벅스가 이끄는 과학자들이 주사바늘보다 경구용 면역치료법을 조심스레 실험하면서 좋은 결과를 얻기 시작했다.

‘알레르기와 임상면역학 학술지’ 1월호에 실린 소규모 연구에서 벅스와 아칸소 아동병원 의사 스테이시 존스는 달걀에 민감한 어린이의 알레르기 반응을 진정시키는 데 면역요법이 도움이 됐다고 보고했다.

소량의 계란 분말을 양을 늘려가면서 2년 동안 복용한 끝에 대다수 어린이가 아무 부작용 없이 계란 두 개에 해당하는 분량을 먹게 됐다. 10월 학술지 ‘알레르기’에 게재된 비슷한 연구에서도 어린이들이 계란 내성을 키웠다. 그러나 분말 섭취를 중단하면 그 효과도 사라졌다.

벅스는 같은 방법으로 땅콩을 사용한다.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 어린이에게 소량의 땅콩 단백질이 든 특수 가루를 조금씩 늘려가면서 복용시켰다. 최초 용량은 땅콩 한 개의 1000분의 1이다. 아이들은 천천히 하루 땅콩 한 개로 적응해갔다.

실험 초기에 피험자 노아 셰퍼(7)는 땅콩 한 개의 약 12분의 1에 불과한 땅콩 단백질 겨우 25㎎을 먹고는 바로 토해버렸다. 그러나 지난 5월의 식품 유발검사에서 그 소년은 아무 문제 없이 땅콩 13개 분량을 먹었다.

벅스는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노아가 이제 스니커바를 실컷 먹어도 된다는 소리는 아니라고 말했다. 천만의 말씀이다. 그러나 우연히 한 입 먹었을 경우 새로 생긴 내성이 지켜줄지 모른다. 노아의 엄마 로빈 스미스는 이젠 끔찍한 일이 일어날까 봐 걱정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 두려움은 완전히 덜었다.”

벅스의 땅콩 가루는 연구원들이 미래에 개발코자 하는 땅콩 백신의 선배 격인 셈이다. 벅스와 샘슨은 힘을 합쳐 땅콩처럼 생겼지만 실은 땅콩처럼 강력하지 않게 만들어진 단백질이 든, 따라서 환자의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할 가능성이 낮은 물질을 개발했다. 지금까지는 그 제제를 생쥐에게 실험해 성공했다. “사람에게도 통하면 알레르기 반응을 봉쇄할 희망이 생긴다”고 샘슨은 말했다.

알레르기가 어떤 경로로 시작되고, 때로는 왜 그냥 사라지는지 등 여전히 신비한 점이 많다. 연구원들은 계란이나 우유 알레르기가 있고 피부염을 앓는 아기는 나중에 자라 다른 알레르기성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안다.

달걀: 대다수 어린이는 다섯 살쯤 되면 달걀(대체로 흰자위) 알레르기에서 저절로 낫는다. 그래도 이 알레르기에 걸린 미국인은 60만 명이다.

에밀리 고드윈을 보자. 부모는 모두 식품 알레르기가 없지만 에밀리는 생후 3개월 때 피부염에 걸렸다. 다섯 달 뒤 의사들은 식품 알레르기 진단을 내렸다. 이제 여섯 살인 에밀리는 계란, 밀, 나무 견과류, 포도를 못 먹는다.

그러나 최근에 우유 알레르기에서 벗어났다. 실은 많은 어린이가 우유와 달걀 알레르기를 자연적으로 극복한다. 이것 역시 의사들이 이해 못하는 신비다. 마운트시나이와 CoFAR이 지원하는 다른 네 곳의 연구진은 현재 우유나 계란 알레르기가 있는 유아 400명을 모집 중이다.

이 유아들은 앞으로 5년에 걸쳐 몇 명이 땅콩 알레르기에 걸리고, 몇 명이 우유나 계란 알레르기를 저절로 고치는지 조사받게 된다. 이 연구의 목표는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원인과 사라지게 만드는 원인을 분자 수준에서 좀 더 잘 이해하자는 것이다. 결국 그 지식이 치료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최종 목표는 역시 애초 알레르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일이다. 킹스칼리지 런던의 기디언 랙 교수는 세계 전역의 알레르기 사례를 연구한 끝에 흥미로운 역설을 발견했다. 미국처럼 어릴 때 땅콩을 기피하도록 가르치는 나라에서 땅콩 알레르기가 가장 많이 늘어난 현상이다. 한편 어린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각종 땅콩 제품을 먹는 일부 아시아·아프리카 국가에서는 땅콩 알레르기가 훨씬 적었다.

이제 랙 교수는 피부염이나 계란 알레르기가 있지만 땅콩 알레르기가 없다고 알려진 아기 200명 이상을 모아 획기적인 실험을 실시한다. 한쪽 집단에는 땅콩이 들어간 과자를 주고, 다른 집단에는 땅콩을 주지 않는다.

그런 다음 다섯 살이 될 때까지 관찰하면서 땅콩 알레르기가 뿌리 내리기 전에 막았는지 알아볼 생각이다. “생애 첫해에 개입을 시도할 생각”이라고 랙이 말했다. 땅콩으로 성공을 거두면 다른 식품으로 확대할 여지도 있다.

랙은 섣부른 예측을 하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회피와 노출 중 어느 방법이 최선책으로 밝혀질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땅콩을 먹이는 방법이 땅콩 알레르기를 예방하는 안전한 길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사실 모르기 때문이다.”

부모가 집에서 일찌감치 땅콩을 먹이려고 들면 “위험 소지가 있다”고 그가 말했다. 이 연구가 성공하면 의학적 조언의 일대 방향전환이 예상된다.

현재로선 부모가 극히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그들은 늘 계란을 밟는 기분”이라고 연방 라벨법을 발의한 니타 로위 하원의원이 말했다. 과학자가 아니라 일반 소비자가 쉽게 알아보게 성분을 분명히 명시(“카세인”이라는 전문용어 대신 “우유”로)하도록 요구한 라벨은 도움이 된다.

푸드 알레르기&아나필락시스 네트워크(FAAN) 같은 단체는 그 조치에 박수를 보냈다. 비영리 시민단체인 FAAN은 숨은 위협을 여전히 걱정한다. 학교들은 때때로 먹고 난 땅콩버터 통에 크레용을 저장한다. 특정한 페인트에는 계란 성분이 들었다.

전자레인지 팝콘 라벨에 우유, 달걀, 생선이 함유됐다고 쓰였더라도 그것을 꼼꼼히 읽지 않는 알레르기 증세 어린이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집에서는 엄마·아빠가 자녀의 음식을 관리한다. 문제는 집 밖에서의 식품 안전이다. 브레버드(노스캐롤라이나)에서 귄밸리 캠프를 운영하는 앤 불러드는 걱정 없던 지난날을 회상했다. “20년 전에는 아무나 먹으라고 식당에 땅콩버터를 내다 놨다. 이제는 그러면 안 된다.”

조개와 갑각류: 흔한 식품 알레르기로 미국 국민의 2%에 해당하는 600만 명이 걸렸다. 그 외 120만 명이 생선 알레르기 환자다.

요즘은 캠프에 오는 어린이 1050명 중 단 1%만 식품 알레르기가 있어도 식당에서 견과류가 들어가지 않은 제품을 이용한다. 저녁에 마카로니치즈를 먹는 날에는 유제품을 먹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유제품이 들어가지 않은 대안식품을 갖다 놓는다.

알레르기 대처 방식은 학교마다 다르다. 월드윅(뉴저지)에 사는 줄리 포레스트는 땅콩과 나무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는 일곱 살배기 아들을 전학시켰다. 다니던 학교의 교장선생에게서 아이의 안전을 보장 못한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10월 발표된 한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학교의 3분의 2가 알레르기 비상계획을 세워뒀다. 그러나 대다수 대책에 비상연락처나 학생의 병력(病歷) 파일 등 기본적인 “필수 요소가 빠진 상태”다. 학교만 그렇게 허술하지는 않다.

일부 식당체인은 견과류 제품을 쓰지 않으려고 애쓰지만(버거킹은 견과류가 들어간 파이를 가끔씩만 파는데 밀폐상자에 담겨 도착한다), 다른 체인들은 그렇게 신경 쓰지 않는다. 지난 7월 발표된 또 다른 연구에서는 심지어 알레르기 있는 자녀를 둔 부모들조차 “포함됐을지 모른다”는 라벨을 점점 무시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수퍼마켓에서 라벨을 읽어본다는 부모는 75%로 2003년의 85%와 대비됐다. 이제는 경고가 워낙 흔하기 때문에 다른 문제가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라벨이 붙은 식품이 너무 많아 어떤 게 위험한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느닷없이 이런 말이 나온다. ‘땅콩 만드는 데 사용된 장비로 제조됐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이 있나?” 휴스턴에 사는 마이크 레이드의 말이다. 그의 아들 앤드루(7)는 땅콩을 먹지 못한다. “ ‘있을지도 모르고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분명한 마흔 가지 표현 대신 균일한 표준이 필요하다.”

그래도 알레르기 반응과의 싸움에 크게 기여하는 사람들이 있다. 땅콩 반입을 일절 금하는 학교가 2005년의 13%에서 18%로 늘었다.

칼레이 레이켄과 다른 학생 열한 명이 심한 식품 알레르기를 앓는 머서 초등학교에서는 교사와 버스 기사들이 에피펜 사용법을 훈련 받았고, 교사들은 알레르기를 앓는 학생뿐 아니라 전교생에게 알레르기를 설명한다.

코네티컷에서는 그것이 법이다. 이 주에서 정한 학원지침에 따르면 교사는 학생들에게 알레르기를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예컨대 구운 치즈 샌드위치를 먹지 못하는 급우를 괴롭히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매사추세츠, 버몬트, 테네시 역시 알레르기 관련 학원지침이 있다.

올해에는 뉴욕과 뉴저지가 자체 지침을 만들기 시작했다. 준비 중인 연방법안은 이것을 더욱 확대해 각 학교에 최대 5만 달러를 지원하고 자발적으로 균일한 지침을 시행하도록 해 학생이 졸업하거나 다른 주로 이사 갈 때 부모가 교육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아도 되게 하려 한다.

인식이 높아지면서 혹시 식품 알레르기가 과장되지는 않았는지 의문을 품는 사람도 나온다. 알레르기가 있는 어린이는 꽤 많지만 5세 미만 중 땅콩 알레르기에 걸린 아이는 1%가 채 안 되며 심한 부작용으로 숨지는 사람은 연간 100~200명 선이다.

소아과 의사에게서 자녀가 견과류와 계란을 먹지 못하게 주의하라는 과민한 당부를 받는 데 익숙해진 부모가 불필요하게 겁을 먹는지도 모른다. 점심 먹고 두드러기가 돋거나 배가 아프다고 해서 반드시 알레르기는 아니다.

예컨대 우유의 주요 당분인 젖당 내성이 없는 사람은 젖당을 소화시키지 못하며 경련을 일으키거나 뱃속에 가스가 차게 된다. 한편 우유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면역체계가 유단백을 위험인자로 파악하고 대항한다.

알레르기 전문가들은 알레르기를 일으키지 않는 식품까지 멀리하라는 말을 듣는 어린이가 꽤 많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 최다 25%의 부모가 자기 자식이 식품 알레르기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고 국립유대의료연구센터(덴버)의 의사 데이비드 플라이셔가 말했다. “그러나 사실로 확인된 경우는 약 8%뿐이다.”

정확한 진단을 하려면 시간, 기술, 인내가 필요하다. 알레르기의 피부 테스트는 극히 민감하다. 60% 정도는 반응이 나올 사람을 지나치게 많이 예상한다. 혈액검사와 아울러 꼼꼼하게 적은 증세 기록을 이용하면 더욱 좋다.

의사가 혈액 속에 특정 식품 항원에 맞서는 항체가 얼마나 많이 생겼는지를 보면 어린이가 알레르기에 걸릴 위험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알레르기를 확실하게 진단하는 유일한 방법은 식품 유발검사다. 환자에게 의심되는 계란이나 밀, 또는 해산물을 소량 복용시키고 의사가 예의 주시하면서 반응을 점검한다.

알레르기가 있는지를 미리 알면 부모나 아이의 부담을 다 같이 덜게 된다. “어떤 식품을 외면할 필요가 없다면 가족들로선 생활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된다”고 플라이셔가 말했다.

과학이 성공하면 언젠가는 그 정상이라는 현실이 어린이 알레르기 환자에게 찾아올지모른다. 지난해 국립유대의료연구센터 연구진은 심각한 피부 알레르기 반응으로부터 생쥐를 지켜주는 유전자를 규명했다고 발표했다.

마운트시나이의 연구원들은 생약 제제로 생쥐 수명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6개월 동안 알레르기 반응을 차단했다. 이제 인간을 대상으로 시험할 생각이다. 언젠가는 어린이의 유전자를 심사해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면 가려움이나 재채기가 시작되기 전에 개입하는 일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고 샘슨이 내다봤다.

그러나 현재로선 그림의 떡이다. 브라이언 버닝의 소망은 그처럼 거창하지 않다. 빨리 커서 달걀 알레르기가 사라지면 “뭐든 단것”을 실컷 먹고 싶다. 가장 먹고 싶은 것 중에 생일 케이크가 있다. 그 고생을 했으니 케이크 정도야 얼마든지 먹게 해줄 만하다.

With KAREN SPRINGEN, JOAN RAYMOND in Shaker Heights and MARY CARMICHAEL

CLAUDIA KAL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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