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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부총리 사과는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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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신일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수능 성적 발표일을 12일에서 7일로 닷새 앞당긴다고 발표했다. 50여만 명에 달하는 수험생에게 약속했던 성적 발표일을 바꿔 수능 등급제로 인한 입시 혼란을 줄여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어 대책 중 하나로 "학교에서 무료로 교사들에게서 진학 지도를 받게 하겠다"는 당연한 얘기를 쏟아냈다.

이번 2008학년도 대입 혼란은 불확실성에 원인이 있다고 많은 수험생은 말하고 있다. 교육부가 제공하는 막연한 9등급 성적이 불확실성을 키웠다는 것이다.

20여 분 동안 지속된 이날 브리핑에서 김 부총리는 혼란을 자초한 당국자로서 책임지는 말이나 사과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 대학이 점수 위주의 선발 방식에 집착해 수험생들이 겪고 있는 혼란이 안타깝다"며 책임소재를 대학 측에 돌렸다.

김 부총리는 "수능 등급제는 수능 1, 2점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불합리를 막고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등급제를 옹호했다. 수능에서 등급만 제공해 수능의 영향력을 떨어뜨리면 자연스럽게 대학이 학생부 성적(내신) 등으로 학생을 뽑고, 사교육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존 논리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총리의 주장은 현실과 다르다. 이번 수능 이후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논술 학원에 가고, 입시 컨설팅을 받기 위해 수백만원씩을 쓰고 있다.

또한 수능 등급제는 김 부총리의 주장처럼 불합리한 점을 개선한 것도 아니다. 등급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학교와 사설학원들은 수리 '가'형의 경우 실수로 한 문제만 틀려도 1등급에서 2등급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 2점 차이로 지원할 수 있는 대학 군(群)이 바뀌는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수험생과 학부모 입장에서 수능 성적 발표를 닷새 앞당긴 것은 그만큼 시간을 벌 수 있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교육정책을 총괄하는 부총리가 잘못된 정책 때문에 생긴 혼란에 대한 책임을 남 탓으로만 돌려서도 안 된다. 지금은 수능 등급제의 불합리한 점을 고치는 방안을 찾는 게 우선이다.

강홍준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