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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私소설 몰려온다-노벨상 후광업고 번역書 줄이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의 노벨상 수상이후 일본소설에 대한관심이 높아지면서 잇따라 일본소설이 번역.출판되고 있다.노벨상발표직후 출간된 『성적 인간』『사육』『개인적 체험』『침묵의 외침』『세븐틴』『인생의 친척』등 겐자부로의 작품 을 비롯,무라카미 하루키의 최근작『태엽감는 새』,무라카미 류(村上龍)의 『코인라커 베이비스』등이 지난 한달새 쏟아졌다.또 이달부터 웅진출판사가 매달 2권씩 총 12권짜리『20세기 일문학의 발견』시리즈를,삼문출판사가 야마다 에이미(山 田詠美)를 비롯한 현대작가들의 선집을 내놓을 예정이다.
일본문학의 가장 중심적인 전통은 역사와 유리된 개인의 내면을천착하는 사(私)소설적 경향이다.이는 19세기말 일본의 근대문학이 싹트기 시작할 무렵 메이지유신과 함께 대두한 군국주의와 깊은 연관이 있다.
개인을 용납하지 않는 엄격한 전체주의 아래서 작가들은 시대에동원되거나 외면하는 양자택일을 할 수 밖에 없었고 대부분은 시대에 등을 돌렸다.전체주의를 증오하나 현실적으로는 대항할 수 없었던 작가들은 전체주의의 감시가 미치지 못하는 성과 심리세계로 잠복해서 암호화한 언어의 독화살을 전체주의에 퍼부었다.
자의식에 대한 병적인 집착과 해부학적인 성에 대한 탐닉은 그들에게 발언의 형식이었고 싸움의 방식이었다.가미카제가 미군 군함에 달려들 듯 작가들은 전체주의를 의식하며 그에 버금가는 엄격함을 가지고 심리와 성에 몰두했던 것이다.전체주 의로부터 에로티시즘까지 달려가는 일본문학의 형성과정은「무사」와 「창녀」의공존을 가능케하는,그러나 모성은 찾아볼 수 없는 일본적 결벽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이같은 일본문학의 특징을 평론가 에토준은「집안에 불치의 환자를 두고있는 형국」,이토 세이는「도망노예적 사상」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겐자부로.하루키.류의 경우도 사소설적 전통을 그대로 물려 받는다.겐자부로는『침묵의 외침』『성적인간』등에서 외과수술을 하듯심리세계를 파헤치는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을 선보인다.하루키의 『태엽감는 새』는 개인적인 일상을 스캐너처럼 묘사 하는 문체로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우면서 역사.민족과 같은 거창함이 중시돼온 전체주의 전통에 반기를 든다.류의『코인라커 베이비스』는사회로부터 버려진 개인이 갖는 조울증의 생태를 천착한다.
개인의 내면에 몰두하는 사소설은 민족사의 특수성을 배제하기 때문에 그 형식 자체로서 세계적 보편성을 갖는다.그러나 이들 세 작가는 이 기반위에 각기 나름대로의 전략으로 새로운 세계성을 획득하고 있다.
사르트르의 사회참여에 깊은 영향을 받은 겐자부로는 소설속의 대상을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끄집어 냄으로써 사소설의 개인문제를 보편적인 인간문제로 확장하는데 성공했다.겐자부로의 개인을 천착하는 깊이나 정치적 당파성을 띠지 않은 사회참 여는 노벨상을 결정하는 서구 지식인의 취향과도 통한다.
하루키와 류는 사소설적 전통에 대중매체의 영향을 받아 세계공통의 경향을 갖는 신세대적 취향을 결합시키고 있다.『태엽감는 새』는 무기력해 보이는 중산층 젊은부부의 생활과 의식을 꼼꼼하게 그리면서 거기서 경쟁의 논리속에 잃어버렸던 인 간적 가치를찾아낸다.작은 것이 중요한 신세대적인 생활양식에 논리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들 세 작가는 일본적인 전통위에 세계적인 조류에 맞는 포장기술을 터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이같은 경향은 다른 작가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최근 일본소설의 흐름으로 한국문학이 결여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南再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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