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시대>9.찾아가서 하는행정-행동하는 公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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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바다를 터전 삼아 하루하루를 연명해온 강원도 삼척군 군덕면 덕산리 덕산항 어민들은 요즘 모처럼 활기에 차 있다.
삼척군 수산과 직원들이 잡아온 어패류의 판로를 열어주는가 하면 세상물정에 어두운 이들에게 세상사는 얘기도 해주고 고민도 앞장서 해결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덕산항은 동해안 오지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포구다.고작 80여명의 어민들이 낡은 40척의 소형어선에 내일을 걸고「호구지책(糊口之策)」을 꾸려왔다.
이런 어촌이 요즘 활력에 넘치고 변화를 맞고있는 것은 바로 지난 8월부터 시작된「1일 공무원승선제」덕분이다.
삼척군이 어민들에게 한걸음이라도 가까이 다가서려고 머리를 맞대고 짜낸 회심의 아이디어다.
어민들은 이 제도가 실시된 이후 그동안「바람」과는 거리가 멀었던 포구에도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다.
덕산항 어촌계장 김재열(金在烈.43)씨는『삼척군의 수산과 직원들이 어민들과 함께 배를 타며 애로사항을 파악하고 있다』면서『판로는 물론 낡은 어구(魚具)까지 해결해줘 어민들이 공무원들을 멀리하고 불신하던 시대는 이제 옛말이 되었다』 고 말했다.
이 공무원승선제로 지방공직자 사회에 변혁을 몰고온 삼척군 수산과직원 12명의 구호는「행동하는 공복」이다.
「어민을 위한 공복으로서 말을 조심한다.」「어민의 입장에서 애로사항을 진지하게 청취한다.」 이 행동하는 공복들은 탁상행정을 떨쳐버리고 몸소 「현장행정」「주민을 위한 행정」을 실천하기위해 이같은 수칙까지 만들었다.
이른바「찾아가는 행정」의 전형이다.
과거 신사복과 넥타이 차림으로「신분」을 과시하던 이들은 작업복과 구명동의(救命胴衣)차림으로 거듭 태어나 거추장스런 권위를벗어던졌고 이제 수온계.도시락.카메라를 필수품으로 여기고 있다. 심완섭(沈完燮)수산과장.강연환(姜縯煥)어로계장등 수산과직원12명은 덕산항을 비롯한 임원.장호항등 삼척군 주요항구에서 매주 3명이 한조가 돼 어선을 타고 있다.
『처음에 공무원들이 배를 타려하자 어민들의 반발이 심했습니다. 과거에「이런 고기는 잡지말라」「쓰레기를 바다에 버리지 말라」등 간섭만 해온 공무원들이 이번에는 배를 타고 직접 어민들을감시한다고 생각한거지요.
그러나 공무원들이 어민들과 함께 밤을 새며 대화하고 현장의 어려움을 해결해주자 공무원들을 대하는 어민들의 태도가 달라지기시작했습니다.』 沈과장은『과거 정부방침에 마지못해 따라만 오던어민들이 이제는 스스로 어족자원을 보호하는 등 바다를 지키려는의식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자치의식에 눈뜨기 얼마전까지만 해도 수산행정은 그야말로 눈가림이었다.
농민과 달리 어민은 새벽에 바다로 나가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어민들과 만날 시간이 없었다.
담당공무원들이 지역어민 대표들이나 어촌계장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전부고 이 때문에 현장이 행정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어민들은 어두운 세상물정에 소외감은 깊어지고 공무원에 대한 불신은 커질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어촌에 변화를 몰고온 공무원 승선제는 강원도가 참신한 아이디어로 채택하면서 강원도 전 시.군으로 파급되고 있다.
광주시 서구청이 지난해 3월부터 추진하고 있는 민원집배제도「찾아가는 현장행정」의 또다른 성공사례다.
서구청은 광주은행 21개 지점과 아파트단지등에 민원집배소를 설치하고 민원서류를 떼어주고 있다.
민원인들이 관공서를 드나들지 않아도 되도록 한 것이다.
「아쉬우면 찾아오라」는 고압적인 관(官)의 장벽을 깬 발상의대전환이었다.
서구 봉선동 무등파크 3차아파트단지의 경우 집배소가 관리사무소에 설치되어 있어 주민들이 아침에 출근하다 서류를 신청하면 봉선동사무소가 순회차량으로 신청서를 접수해 민원인들이 퇴근하기전에 서류를 갖다줘 호평을 받고 있다.
부인과 맞벌이하는 김은철(金銀喆.43.회사원)씨는『과거에는 민원서류를 떼러 간신히 짬을 내 구청이나 동사무소를 찾았으나 이제는 민원집배제로 이같은 불편이 없어졌다』고 반겼다.
서구청 시민과의 김영래(金永來.38)씨는『시민들이 민원 때문에 구청이나 동사무소를 직접 찾아오기 전에 주민을 찾아 갈 수있는 방안을 강구한 끝에 민원집배소를 설치하게 됐다』면서『반응이 매우 좋아 6월부터 2백가구 이상이 있는 아 파트단지에 집배소를 모두 설치했다』고 밝혔다.
또 광산구는 금호타이어등 일반 기업체 9곳에도 민원집배제를 설치해 바쁜 직장인들로부터 호응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민원집배제로 처리된 것은 동구.서구.북구.광산구등 광주 4개구에서 호적 5백34건,건축관련 5백11건,세무 7백70건,지적 3백67건,주민등록 6천3백39건등 17종의 민원서류 9천여건에 달한다.
경남 남해군의 배달민원처리제는 요즘같은 농번기에 한몫 톡톡히하고 있다.
농촌에서 민원서류를 떼려고 군청을 찾다보면 하루해를 넘기기 일쑤였으나 이 제도가 생기면서 농촌일손이 한결 가벼워졌다.
전화로 서류를 신청하면 공무원들이 서류를 떼서 직접 농촌들녁까지 배달해주는,선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파격적인「행정혁명」이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서 공무원들은 농가에서 신뢰를 얻고 농촌은 일손을 덜고 있다.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이웃처럼 가까워진 官 6월에 시작한 이후 하루 50~60여건씩,지금까지 1천2백여건이 처리됐다.남해읍 임현리에 사는姜한두(50)씨는『서울에 있는 자식들이 주민등록을 보내달라고 해 우편료와 인지대조로 2백30원을 주고 서류를 부탁했더니 공무원이 출장와 서 접수 받은 뒤 서류를 서울까지 보내줬다』며『관공서가 이웃사촌처럼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이조헌(李祖憲)남해군수는『농사철에 농민에 다가가 일손부족을 덜어 줄 수있는 방법은 없을까 궁리하다 배달민원제를 시작했다』면서『반응이 좋아 다른 민원에도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方元錫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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