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중견기업] 스테인리스 강관 생산 한 우물 34년 "대기업과 경쟁 안 두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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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엄기산 성원파이프 총괄사장은 LNG선박 등에 사용되는 두께 8 이상의 고가 후육관사업 강화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진=정치호 기자]

일반인은 잘 몰라도 업계에서만 통하는 ‘고수’들이 있다. 스테인리스 강관을 만드는 성원파이프도 그런 회사다. 국내 굴지의 조선·건설업체 관계자 중엔 좋은 스테인리스 강관을 꼽으라면 세아제강·LS산전·현대하이스코 등 대기업을 제치고 이 회사를 꼽는 사람이 많다.

대기업이 즐비한 스테인리스 강관 업계에서 이 중소기업은 시장점유율 17.6%(2006년 말 기준)로 세아제강(19.8%)에 이어 2위를 달린다. 직원은 모두 96명. 1인당 매출액은 약 14억5000만원으로 포스코(약 13억2000만원)보다 많다.

1973년 서울 면목동에서 직원 18명으로 시작했던 이 회사는 설립 후 97, 98년에만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96년 전남 광양으로 공장 이전을 하면서 빌려 쓴 외화 차입금(달러화)의 환율이 급등하면서 비롯된 어려움이었다. 이때가 34년 역사 중 유일하게 어려웠던 때다. 그리고 이듬해부터는 다시 흑자로 돌아섰다.

이런 저력은 34년 동안 스테인리스 파이프라는 한 우물만 판 역사에서 나오는 것이다. 또 그 역사 동안 간단치 않은 인력에 대한 철학도 숨어 있다.

광양공장에서 일하는 현장 직원 51명의 평균 근무 연수는 14년이다. 회사 설립 당시 들어왔던 직원도 두 명이나 있다. 96년 공장이 경기도 부천에서 광양으로 이사를 갈 때 직원 60명이 모두 따라간 것도 유명하다. 이 회사의 현장 직원은 100% 정직원이다. 비정규직이나 하청 생산은 하지 않는다.

성원 출신은 경쟁사로 가지도 않고, 회사는 경쟁사 직원을 뽑아 오지도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기술력의 전수는 식구들끼리 하는 것이라는 ‘한 식구 문화’가 현장을 지배한다. 윤세창 공장장은 “끈끈한 문화 덕분에 우리 생산성은 경쟁사에 비해 15~20% 높다”고 자랑했다.

엄기산 총괄사장은 “이런 독특한 문화가 굴지의 대기업과 50여 개의 경쟁사 속에서 성원이 꿋꿋하게 시장을 지킨 비결”이라고 했다. 이 회사에 올해 변화가 생겼다. 미주제강이 성원파이프의 대주주(34.87%)가 된 것이다. 이 두 회사는 성원이 순천에 있는 부지를 미주에 공장 부지로 빌려 주면서 인연을 맺었다.

미주제강은 스테인리스 파이프 시장을 8% 정도 점유한 업체. 미주 측은 업계에서 이름난 성원과 합칠 경우 단숨에 업계 1위에 올라서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계산했다. 이에 성원의 대주주(허양엽씨 측)를 강력히 설득해 인수까지 한 것이다. 엄 총괄사장은 미주와 성원을 동시에 경영하고 있다.

엄 총괄사장은 성원의 능력과 힘은 ▶가족문화가 지배하는 조직에서 나오는 충성심 ▶성공적 중소기업의 강점인 스피드와 유연성이 적절히 결합된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 직원들은 ‘큰 것을 잡아먹는 것은 빠른 것’ ‘같은 값에 일은 대기업의 두 배로’ 같은 특유의 슬로건을 내세우고 일한다. 예컨대 이 회사엔 ‘퀵 딜리버리 시스템’ 같은 서비스가 있다. 수요자가 내일 제품이 필요하다고 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어 퀵 서비스처럼 바로 공급하는 것이다. 대기업은 흉내도 내지 못하는, 34년 된 조직문화에서 나온 생존법이다.

“수요자의 입맛에 맞춘 기술 개발도 빼놓을 수 없다”는 게 엄 촐괄사장 얘기다. 이 회사는 국내 최초로 스테인리스 강관에 대한 KS마크를 획득했다. 또 제지·석유화학·조선업계 등 업종에 따라 꼭 필요한 강관을 만들어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뛰어든 스테인리스 강관 시장에서 중소기업이면서도 강자로 살아남 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글=유상원 이코노미스트 기자, 사진=정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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