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칼럼>왜 산에 가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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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왜 산에 가는가.』 산사람들이 자주 받는 질문이다.축구선수나 우표수집가에게는 그 행위동기를 잘 묻지 않는다.누가 봐도 그 동기가 분명한 것이다.유독 산꾼에게 자주 그 동기를 묻게 되는 것은 전문 산행이 문외한에게 그만큼 비생산적으로 비친다는얘기다. 밥벌이가 되지 않는 산행에 왜 그토록 빠져 있느냐는 질문의 속뜻은 그러니까『혹시 당신 바보 아니오?』일 때가 많은것이다. 사실 산행은 계속하면 할수록 배가 고파지는 헝그리 스포츠의 하나임에 틀림없다.헝그리 스포츠의 대명사인 권투는 다시는 배고픔에 시달리지 않으려는 젊은이들을 사각의 정글로 내몬다. 산행과 권투는 이처럼「배고픔」이라는 공약수를 갖는 헝그리 스포츠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배고픔의 내용은 아주 다르다.산행의 끝이 배고픔인데 비해 권투는 시작이 배고픔인 차이다.배부른 친구들은 권투를 시작하지 않고,배고픈 사람치고 전문적인 산행에 입문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이다.
배부름으로 시작되는 산행은 그래서「귀족 스포츠」라는 또다른 이름을 갖게 되었다.배부른 집 자손들이 놀이 삼아 산에 다니기시작한 것은 동서양을 가릴 바 없는 진실이다.
서구 알피니즘의 선두주자들이 전문직에 종사하는 귀족계급 출신이었듯 인자요산하던 동양의 인자(仁者)도 상민으로 상상되지는 않는다.도포자락 휘날리며 명산을 소요하는 선비풍 인자에게서 가난의 얼굴을 읽어내기는 어렵다.
운동이라면 끝내주는 흑인들을 히말라야 고산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유 또한 이 산행의 본질적「배고픔」에서 찾아볼 수 있을 듯 하다.세계적인 산악인 중에는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던 식민지출신의 흑인은 한명도 찾아볼 수 없다.
이처럼 산행의 본질을 배고픔에서 찾아내게 된 그날 나는 배고픔에 몹시 시달리고 있었다.2년전 가을의 어느날이었다.설악산에혼자 갔다가 연료통을 잃어버리고 용아장성과 공룡능선에서 생쌀을씹으며 이틀을 버텼다.그때만큼 산행의 본질이 배고픔에 있음을 실감한 적은 없다.
그 굶주린 몸을 이끌고 양폭산장에 닿아서야 연료를 구할 수 있어 따뜻한 밥을 짓게 되었다.그 밥과 함께 끓어오르는 산에서의 행복감이란 겪어보지 않고서는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이런 순간만큼은 산에 다니는 이유를 확연히 밝힐 수 있 다.맛 있는한끼의 밥을 즐기기 위해 산에 가는 것이다.
산에 다니는 이유가 담긴 그 따뜻한 밥에 첫 술을 대려는 순간 낯선 사람이 말을 붙여왔다.
『숟가락 좀 빌려 주시겠습니까.』 소주병을 딸 일이 있나보다하고 숟가락을 넘겨 줬다.『감사합니다』며 숟가락을 넘겨 받은 그 중년사내는 갑작스레 코펠을 낚아채더니 얼굴을 파묻고 그 속에 나의 밥,아니 나의 산행 이유를 마구잡이로 퍼먹었다.말릴 틈도 없이 나의 산행 이유는 그 낯선 사람에 의해 순식간에 텅비어버렸다.
〈산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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